[공창제 논란] 매춘, 양지로 끌어낼 것인가?

공창제 허용여부 놓고 뜨거운 찬반 논쟁

매춘(賣春)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다. 인류학자들은 매춘이 동물과 달리 발정기가 따로 없어 욕망에 따라 성행위가 이뤄지는 인간 사회에서 사라질 수 없는 필연적인 산물이라고 말한다.

유사 이래 여러 시대, 여러 국가에서 매춘을 없애려는 노력을 경주해 왔지만 근절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 만큼 매춘은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인 욕구 배출의 수단이자, 가장 손쉬운 생계의 방편중 하나 였다.

때 아닌 공창(公娼)제 논란으로 장안이 떠들썩하다. 이 뜨거운 화두를 던진 사람은 서울경찰청 김강자(전 종암경찰서장ㆍ여)방범과장.

지난해 미아리 텍사스촌에서 ‘매매춘과의 전쟁’을 벌여 주목 받았던 김 전서장은 6월 11일 연세대에서 있었던 특강에서 공창 제도의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지난해 7월 자신의 저서 ‘나는 대한민국 경찰이다’에서 공창 문제를 제기한 이후 첫 공개적인 언급이었다.

김 전서장의 발언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현역 경찰이, 그것도 여성 경찰 간부가, 더구나 최일선에서 매매춘과의 전쟁을 치루었던 지휘자가 공개적으로 공창제 도입을 주장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김 전서장의 주장은 최근 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 고조와 맞물려 국내 매매춘 문제에 대한 논쟁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남ㆍ여ㆍ세대별로 큰 차이

공창제 도입 주장은 여성단체를 비롯해 그간 청소년 계도에 앞장서 왔던 제도권 인사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공창제 반대론을 펴는 이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 범죄의 근본 원인은 남성의 욕구 배설의 장소문제가 아니라 본능적 욕구를 사회 규범에 따라 해소할 수 있는 성문화가 정착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성문화가 정착되지않은 상황에서 공창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국가가 성(性)을 돈으로 사고 파는 것을 공인해 주는 것일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 되는 근시안적인 발상이라는주장이다.

국민 여론도 엇갈리고 있다. 아직 광범위한 여론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인터넷 사이트 등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20~30대 젊은 층은 공창제에 대해 긍정적인 반면, 40~60대중ㆍ장년층은 다소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고 있다.

국내 언론사중 인터넷 조회수 1위를 달리고 있는 한국i닷컴이 6월 14일부터 3일간 실시한 공창제도입에 대한 찬반 투표에서 응답자 9만9,268명중 89.88%인 8만9,223명이 찬성 의사를 표시했다.

반대한 응답자는 7.83%인7,774명에 불과했다. ‘모르겠다’고 응답한 네티즌은 2.29%인2,271명이 었다.

또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야후(kr.yahoo.com)에서 ‘공창제 설립이 성범죄 척결에 기여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42%가 ‘척결될 수 있다’고 답했으며 ‘성범죄를 더 부추기는 행위다’라는 의견이 8% 였다.

‘성범죄와 관계없다’는 응답이 44%로 가장 많았다. 이조사는 인터넷을 주로 사용하는 네티즌을 상대로 한 것이어서 국민 전체 의견을 대변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전과 달리 공창제에 대한 국민의 생각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합법적 윤락, 인권보호에 도움”

공창제라는 화두가 힘을 얻게 된것은 군산 부산 등 최근 일련의 윤락가 화재 사건으로 매춘 여성들의 인권 침해 사례들이 잇달아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과도 연관이 깊다.

이런 사회정서와 맞물려 ‘사문화(死文化)된 현재의 법체계를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정부가 매매춘을 관리함으로써 노예 윤락으로 전락한 윤락녀들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김강자 전서장의 주장이 공감을 얻은 것이다.

김 전서장은 “매매춘이 현행 법상으로는 불법이지만 돈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지 남녀의 성을 살 수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현실과 괴리된 법으로 인해 매매춘은 더욱 음성화 했고 그로 인해 성인은 물론 미성년 매춘녀들이 업주들의 폭행 감금 등의 고통에 시달리는 준노예 상태에서 성을 착취 당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차라리 현실적으로 남성들의 합법적인 성욕 배출 장소를 만들어 주는 대신 이 지역을 철저히 관리하면 윤락녀에 대한 부당한 인권 침해는 물론 전체적인 매춘업도 위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락행위 등 방지법에 따르면 성을 사고 파는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다. 하지만 당국은 그간 서울의 미아리 텍사스, 청량리 588, 천호동 등과 지방 도시의 특정 구역에 한해서 매매춘을 사실상 인정하며 특별 관리만 해왔다.

법과 법 적용이 따로 놀았던 것이다. 이럴 바에야 아예 정부가 공창 제도를 실시해 윤락 행위 규정과 장소를 설정, 그 테두리 안에서 강력한 법 적용을 하자는 것이 찬성론자들의 주장이다. 그렇게 하면 매춘 행위에 대한 단속이 보다 효과를 거둘 뿐아니라 윤락녀들의 인권도 보호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단체 등 공창제 반대론쪽에 서 있는 사람들의 입장은 다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조영숙 정책실장은 “공창제는 윤락가에 있는 매춘 여성 일부의 인권을 보호해주는 효과는 있을 지 모르지만 이것은 곪은 부분에 항생제를 놓는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라며 “현재 국내 매매춘은 윤락가 뿐아니라 단란주점 티켓다방 룸살롱 등 비윤락가지역에서 더 성행하고 있는데 단지 윤락가만 공창화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조 실장은 “일부에서 ‘내 딸의 안전을 위해 남의 딸을 희생시켜도 좋다’는 이기심과 ‘행정 단속의 편의와 효율성’을 위해 공창제에 동조하는데 자칫하면 공창과 사창 모두를 양성화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윤락 합법화 나라 오명쓰는 발상"

강지원(서울고검 부장검사) 전 청소년보호위원회위원장도 “불법인 사창(私娼)이 실제로 사법 단속에서 제외된 공인 매춘의 상태에 와 있는데 무슨 실익이 있다고 ‘윤락을 합법화한 나라’라는 인식을 주면서까지 공창제를 하느냐”고 반문하며 “성매매방지법 같은 엄한 법을 만들어 매춘 중개업자들의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 검사의 주장은 현재의 매춘여성, 상대 남성, 윤락업자로 이뤄진 3자 형태의 윤락 행위가 선진국형인 매춘여성과 상대남성 간의 1대1일 윤락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사창가가 사라지고 관광지를 중심으로 한 소수 매춘 여성만이 남을 것이며, 매춘 업주들의 금품 갈취나 폭행 같은 인권 유린 형태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기승을 부리는 국내 매매춘에 제동을 걸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최근 매춘 방지책으로 쏟아지는 의견들 중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방안을 찾아보면 어느 정도 해답을 얻을 수 있다.

현재 대체적으로 합일을 이루는 방안은 성(性) 산업을 통해 치부하는 매매춘 연관 사업자들을 보다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창제를 주장하는 김강자 전서장이나 성매매방지법 제정을 주장하는 여성계 양측 모두가 매매춘을 조장해 윤락녀들의 성을 착취하는 업주나 연관 인물들을 지금과 달리 단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매매춘이 주로 업주들에 의해 주도되는 형태를 취해왔기 때문에 이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조영숙 정책실장은“그간 ‘불황을 모르는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었던 매춘업 주변에는 폭력 조직을 비롯해 단속 관련 공무원, 몰지각한 사회 유력인사 등이 직ㆍ간접적으로 관계를 형성해 왔던 게 엄연한 사실”이라며 “성 산업 수혜자들에 대해 차단 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왜곡된 국내 성 문화를 바로 잡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매매춘 사업자에 철퇴내려야

현행 윤락행위 등 방지법은 매춘여성과 상대 남성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 윤락업주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이는 매춘 여성이나 상대 남성을 윤락업주와 마찬가지로 범법자로 보는 후진국형 유형이다.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일본 같은 선진국들은 매춘자체는 개인의 사생활로 간주해 처벌하지 않는다. 매춘 여성은 사회 구조상의 피해자로, 상대 남성은 잘못된 성문화로 인한 일탈 행위자로 간주하는 것이다.

따라서 매춘 남녀는 선도의 대상이지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매매춘을 알선ㆍ조장한 중개업자들에 대해서는 중형으로 엄벌한다. 매춘 중개업자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일정기간 격리 수용돼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또 하나의 합일점은 윤락 종사자들에대한 재활 교육과 사회복지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은 물론이고 최근 급증하는 남성 윤락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인 문제다.

실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락 종사자의 80% 이상이 경제적인 이유로 윤락을 시작했고, 이들 대부분이 일정한 목돈을 마련하면 이 일에서 떠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번 윤락의 늪에 빠지면 업주들의 교묘한 금품 착취와 무자비한 폭행 때문에 좀처럼 빠져 나가기 힘들다. 더구나 현행법상 윤락녀도 범법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신고할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청소년 매춘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청소년 매춘 관련 법규가 대폭 강화됐다. 1999년 7월 개정된 청소년보호법에는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성행위 등 성적 접대 행위를 시킨업주는 10년 이하, 19세 미만 청소년과 대가성 성 관계를 맺은 성인에 대해서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었다.

하지만 최근 청소년문제가 불거지면서 법률이 더욱 강화됐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19세 미만 청소년을 매춘업에 종사하게 한 업주는 5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대폭 강화했다.

대신 매춘 청소년은 처벌을 받지 않고 검사와 소년부 판사의 결정에 따라 선도 보호처벌을 받는 것으로 처벌은 낮췄다.

그러나 남녀 고객에 대해서는 3년 이하 징역 이외에 신상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추가 장치를 마련했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윤락가 업주들 사이에서는 ‘이제 청소년 매춘 장사는 끝났다’ 는 말이 나돌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매춘은 인류가 풀지 못한 숙제중 하나로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은 없다. 문제가 되는 현안을 하나하나 해결해 가는 끈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법 따로 현실 따로인 모순을 등에 업고 매춘은 더욱 음습한 곳으로 스며들고 있다.

정부 당국은 공론화로 제기되는 다양한 매춘 방지 방안에서 ‘최선에 준하는 차선책’을 뽑아내야 한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06/27 14:07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