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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창제 논란] 세계 각국 매매춘 실태…'골칫거리'

매매춘 성행해도 공창엔 인색

매매춘 문제는 세계 각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분야 중 하나다.

특히 공창제는 인권이나 국가적 체면이 얽힌 민감한 문제여서 공개적으로 실시하는 나라가 극소수에 불과하다. 성에 개방적인 유럽에서도 매춘을 금지하는 국가가 대부분이고 몇몇 국가만 특정지역을 정해 매춘을 허가하는 대신 다른 곳에서는 금지하는 집창제(集娼制)를 실시하고 있다.

매춘(賣春)은 고대 이집트, 페니키아 등의 사원에서 시작된 사원매음이 시초다. 신도와 무녀 사이에 이뤄진 이성행위는 종교적 비의(秘儀)의 성격이 있어 공창과는 성격이 달랐다.

공창의 시작은 고대 그리스를 시초로 잡는다. 당시 아테네 항구 피레우스에는 영업용으로 쓰이는 독방식 오두막집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매춘이 이뤄졌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공창이 주요세원으로 떠올라 당국의 보호를 받기도 했다. 중세 시대에는 영주나 교회의 인가 형태로 공창이 유지됐는데 교황 율리우스 2세, 레오 10세, 클레멘스7세 등도 매음업을 허가 했었다.

16세기 들어 국가가 형성되면서 인가권이 국가나 주(州), 시(市) 등으로 넘어간다. 이후 자본주의가 번성해 인권문제나 성병 문제로 공창 폐지 운동이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나면서 공창제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개방적인 유럽도 일부 국가만 공창 허용

현재 유럽에서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네덜란드의 암스텔담 등에서 부분적으로 공창제를 허용하고 있다.

대문호 괴테의 고향인 프랑크푸르트는 시내 중심인 카이저(황제) 거리를 합법적인 매춘지역으로 지정하고, 시 당국이 직접 관리한다. 이곳에서는 윤락녀들의 공개적인 매춘이 가능하며 마약 중독자들도 이곳에서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곳에는 매춘 중개업자들이 없어 매춘부와 상대 남성이 1대1로 흥정을 벌이는 방식으로 타협이 이뤄진다. 시 당국은 일주일에 한번씩 성병 검사를 실시하는 한편 경비 카메라를 설치, 매춘부들에 대한 폭행이나 범죄를 막고 있다.

프랑스는 수도 파리의 외곽에 있는 피갈이 홍등가로 유명하나 공창제가 아닌 사창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프리 섹스로 유명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스웨덴도 겉으론 개방적인 것 같지만 1999년에 성구매금지법을 제정, 돈으로 성을 사는 사람과 그것을 중개하는 업주를 처벌하고 있다.

미국도 매매춘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편이다. 매춘을 알선ㆍ중개하는 업주에 대해서는 형사상의 처벌을 내린다.

그러나 매춘부나 상대 남성에 대한 처벌은 사생활로 간주, 특별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개입하지 않는 게 관례다.

삼바 축제 등으로 성에 개방적인 나라로 인식되고 있는 브라질 같은 남미 국가들로 공창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없다. 브라질의 경우 오히려 카톨릭 전통이 많이 남아 있어 낙태가 불법일 정도로 법적으로는 성에 대해 보수적인 편이다.

그러나 남미 지역은 본래 남녀가 프리 섹스를 즐길 정도로 개방적이어서 매춘에 대한 필요성이 별로 없기도 하다.

동양권에서 공창제의 대표적이 국가로는 대만을 들 수 있다. 대만은 1949년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대만으로 패퇴한 이후 줄곧 공창제를 유지해 왔다.

타이베이시에는 100여곳에 이르는 홍등가 있는데 이곳 윤락녀들은 국가에 세금을 내고 일정 기일을 정해 위생 검사도 받는다.

그러다 천수이벤(陳水扁) 총통이 타이베이 시장이던 1997년 범죄ㆍ매춘과의 전쟁에 나서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그러나 10만명에 달하는 매춘부들의 극심한 반대에 밀려 천 시장은 영업장을 폐쇄하지 못했다.

그후 마잉지우(馬英九) 후임 시장이 협상을 통해 1999년 2년간의 유예기간을 두는 것으로 합의했다가 기간 만료되는 올해 3월 132곳에 이르는 공창업소의 매춘 면허를 모두 회수했다.


국내 매춘은 일제의 잔재

우리나라는 1876년 조일수호조약으로 부산이 개항되면서 일본 매춘업자들이 앞다퉈 상륙, 매춘의 쓰라린 역사가 시작됐다.

본래 조선조에는 가무와 시문에 능한 여성들을 기생들이라 하여 조정이나 지방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 강점과 함께 이런 풍류 가무에 능한 기생들은 사라지고 몸을 파는 창녀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일본인 거류지 내에 유곽(遊廓)이라는 공창 지대를 만들어 운영했다.

이 땅에 처음 공인된 유곽으로는 1900년 10월 부산 일본전관거 유지 동쪽 부평정 1정목에 생긴 특별요리관이 최초다.

이후 1904년 전문 직업인으로서 매춘녀의 창기, 창녀가 공식화 됐다. 1920년대에는 매춘업이 일반화 돼 공창과 사창이 번성하였다.

그러다 해방 이후 미군정 때인 1947년11월14일을 기해 공창제가 폐기된다. 그 후 대한민국 정부는 1961년 윤락행위등 방지법을 제정, 최근까지 매매춘 문제에 대한 법률 적용의 근거로 삼았다.

입력시간 2001/06/2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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