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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적인, 너무나 재즈적인 일탈의 멋

헝클어진 무대에서 펼쳐진 잼 세션, 재스의 속살 그대로

또 하나의 역사, 그들만의 회합은 다시 시작됐다. 관객이라야 불과 여남은 명. 그러나 기다림의 대가는 기대 이상이었다. 15일 밤 11시30분 홍대앞 재즈 클럽 ‘핫 하우스’.

마시다 남은 음료 등을 앞에 두고 도란도란 앉아, 이제 그들은 ‘진짜 재즈’에 푹 취해 볼 참이다. 개점 시간인 오후 7시30분부터 홀을 메웠던 40여명의 손님들은 이미집으로 각각 길을 재촉한 뒤이다.

약속 등 각자 이유야 있겠지만, 그들은 말하자면 짜여진 공식 게임만 보고 간 사람들이다. 그러나 진짜 재미, 예정에는 없던 묘기가 속출할 게임은 지금부터다.

갈고 닦아 완성해둔 기량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에 자기 음악에 대한 믿음과 또다른 세계에의 탐구심을 함께 갖춘 자들이 만들어 가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이 별난 게임의 이름은 잼 세션(jam session). 뮤지션들은 그냥 ‘잼’이라고만 한다. 클래식에도, 팝에도 없고, 재즈에만 있는 독특한 풍물이다. 이날은 모두 8곡이 1시간 30여분 동안 탐구됐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연구됐다.


틀에 얽매이지 않은 자연발생적인 무대

이영경(38ㆍ피아노), 민영석(34ㆍ기타), 남광현(31ㆍ드럼), 양영호(29ㆍ베이스), 한승빈(21ㆍ색소폰) 등 모두 다섯 명이 이날의 주인공으로 올랐다.

화려한 조명 세례를 받으며 등장하지 않는다. 먼저 민영석이 등장, 헝클어진 무대 한 구석에 앉아 기타를 든다. 순간 난해함의 대명사 존 매클러플린풍의 즉흥 선율이 4분 동안 풀려 나온다.

자기 연주에 도취해 있는 그를 깨우기라도 하듯, 색소폰이 느닷없이 끼어든다. 순간 홀은 전형적인 재즈 캄보 연주장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도 잠시, 드럼은 재즈가 아닌 록 리듬으로 돌변한다. 그러나 나머지 주자들은 급작스런 변화가 오히려 즐거운 듯, 자기식대로의 변주로 따라 붙는다. 퓨전의 정신이 그렇게 발현됐다.

그러다 일순 색소폰과 스네어 드럼만이 살아 남아 속살거리는 블루스 선율이 피부를 파고 든다. 이날 무대, 아니 연습장에서는 연주자가 객석을 보며 “다음엔 뭘 할까요?”라고 물어 그 곡의 즉석 변주를 들려 주는 등 늦은 시간까지 자신의 연습을 지켜 보는 객석과의 교감 나누기도 잊지 않았다. 모든 것이 꽉 짜여진 정규 무대라면 불가능한 풍경이다.

모든 텍스트들은 철저히 해체, 재구축됐다. 흔히들 조용한 발라드로만 알고 있는 ‘당신의 모든 것(All The Things You Are)’이 이날 밤 보여준 변신은 환골탈태의 경지였다.

민영석이 주제 선율을 유머러스하게 변주하자 객석은 웃음으로 화답한다. 이어 우렁찬 색소폰 선율과 영롱한 피아노 선율 등이 가세하니, 부드럽기만 하던 발라드곡은 광폭한 선율로 급변한다.

재즈의 속살은 그렇게 펼쳐졌다. 상대적으로 재즈 연륜이 짧은 주자는 숨쉴 틈없이 이어 가는 연주의 열기 앞에서 어느 지점에서 어떤 선율로 뛰어 들어야 할 지 확신이 서지 않아, 한동안 머뭇거리기도 한다.

연주자들은 연주내내 동료 주자들의 표정을 흠칫 살핀다. ‘그래, 지금의 내 연주를 다음엔 네가 한 번 받아봐’라고 그 표정은 말하고 있었다.

이 풍경 앞에서 립 싱크니, 표절이니 하는 시비는 얼마나 부질 없는 짓인가. 클럽 주인 양수연씨는 “비슷한 수준의 주자들끼리 모여 공연하듯 하면, 잼은 재미 없다. 잼이란 공부이자 새것을 발견해가는 연구의 장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후배들의 음악적 열기를 지켜 본 세계적 프리 재즈 뮤지션 강태환씨는 “밤늦도록 잼까지 진지하게 하는 걸 보니, 이곳은 재즈로 분위기 맞춰주고 매상 올리려는 여타 클럽과 확실히 다르다”며 반가와 했다. 그는 “(내가)도움 된다면 계속 오고 싶다”고 덧붙였다.

1990년대 이후 국내에서 재즈가 급격 확산되던 풍경은 분명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상업주의가 끼어 드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필연. 재즈의 경우, 그것은 음악내적 문제보다는 호화 장식 등 외형적 경쟁으로만 치우쳐 재즈팬을 실망시키기에 이르렀다.

‘핫 하우스’에서 불어 오는 한줄기 신선한 대안의 바람은 일반 애호가들은 물론, 노장의 마음까지 감동시킨다.

여타 록 또는 재즈 클럽에서는 업소측과 사전 약속된 자기 무대가 끝나면, 연주자들은 악기를 챙기고 자리를 뜨는 것이 보통이다. 객석과 담소도 해 가며 ‘핫하우스’에서 벌어지는 과외 무대는 그래서 더욱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매주 토요일 밤이면 잼세션의 현장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다. ‘핫하우스’ (02)336-0135.


"영감으로 빚어내는 1005 즉흥 연주"

‘100% 즉흥’이라고 이영경은 말했다. 무대 위에서의 영감으로 빚어진 연주로만 짜여진 것으로, 사전에 약속된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이태원의 재즈 클럽 ‘All That Jazz’ 등지에서 그가 국내외 재즈맨들과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하던 대로의 전형적 잼이라는 것.

그러나 어떤 것을 할 지 또는 어떤 방향으로 나갈 지, 테마는 정해두고 맞붙는다. 완전 무(無)에서 출발하는 프리 재즈가 아니라면, 순전히 즉흥으로만 이뤄진 음악이란 재즈에서도 엄밀히 말해 없다.

텍스트 라면 ‘리얼북(real book)‘. 재즈의 고전(스탠더드)에서 힙합 등을 접목한 최근 경향의 재즈(컨템퍼래리)까지, 보통 300여곡이 수록돼 있다.

그러나 흔히 보던 인쇄체의 악보가 아니라, 손으로 요점만을 메모처럼 써 둔 필사본이다. 실제 무대 연주를 위해 복잡한 음표 등은 치우고 코드 진행 등기본 골격만을 급히 휘갈겨 둔 악보다.

이런 책도 악보라고 비싼 돈으로 거래되느냐 싶겠지만, 재즈를 하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귀한 선물이 없다. 재즈맨들의 체취가 생생히 느껴지는 필사본이란 점에서, ‘리얼’이란 말이 붙었다.

원래는 재즈의 명문 버클리 음대 교문 앞에서 거친 복사본 형태로 거래되던, 책 아닌 책이었다. 그러나 최근 재즈를 배우려는 학생은 물론 뮤지션들 사이에서도 이 필사본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자, 버클리 음대측은 정규 출판물로 발행해 오고 있다. ‘New Real Book Series’라는 일련의 악보집이 그것이다.

다급한 현장에서 생겨난 관행에 세월의 더께가 쌓이다 보니, 버젓이 공식화된 것이다. 현장 제일주의를 대원칙으로 하는 재즈적 관행의 대표적 사례이다. 리얼 북은 현재 대학가 음악 전문 도서점이나 음대 작곡과나 실용음악과 등지에서 권당 1만원~1만5,000원에 팔리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재즈란 연주자들간의 끝없는 싸움이죠. 만들어진 것(편곡)과 생성중인 것(즉흥)간의 영원한 싸움말예요.”

장병욱 주간한국부 기자 aje@hk.co.kr

입력시간 2001/06/2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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