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무안 회산방죽

진초록빛 호수에 핀 연꽃세상

매년 이맘 때부터 그 위용을 또 드러낸다. 사나운 비를 맞을수록 그 푸르름은 더욱 짙어진다.

무안 회산방죽(전남 무안군 일로면 복룡리 일대)은 연지(蓮池)이다. 연꽃 중에서도 덩치가 가장 큰 백련이 산다. 잎사귀가 커다란 보자기를 펼쳐놓은 것 만 하다. 사람이 올라 앉아도 끄떡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 거대한 수생식물이 10만여 평의 너른 호수를 촘촘하게 메우고 있다. 백련 군락지로는 동양에서 가장 넓다. 바람에 흔들리면 진한 초록색 파도가 거칠게 인다.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기이한 감동이 탄성으로 흘러나온다.

꽃도 크다. 직경 20㎝. 거의 핸드볼공만 하다. 벚꽃처럼 와르르 폈다가 한꺼번에지는 꽃이 아니다. 7월부터 9월까지 석 달간 꾸준히 꽃대가 올라오고 하얀 꽃이 연이어 핀다. 지금이 개화의 시작이다.

매년 9월 초 무안군에서 연꽃축제를 연다. 1977년 종교적 색채가 짙은 행사로 시작되었다가 IMF를 겪으면서 호국축제의 성격을 띠게 됐다. 축제기간에는 일로읍에서 복룡리로 들어가는 길이 완전불통이 될 정도로 혼잡하다. 지금부터 8월 중순까지가 한가롭게 연꽃바다를 구경할 수 있는 시기이다.

회산방죽은 일제시대 무안의 주민들이 가뭄을 이겨내기 위해 만들었다. 한 마을사람이 인근에서 12주의 백련을 옮겨 심었는데 그날 밤 꿈을 꿨다.

하얀 학들이 저수지에 가득 내려 백련꽃이 만발한 듯했다.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 마을 사람들은 정성을 다해 백련을 가꿨다. 땅이름 회산(回山)의 의미는 ‘윤회의 기운이 한곳에 모이는 곳.’ 백련은 그 기운을 머금었는지 100년도 채 안된 짧은 세월에 지금의 위용을 갖췄다.

연꽃은 수련과의 다년생 수생식물.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정갈한 꽃을 피우기 때문에 옛날부터 사람과 인연을 맺어왔다.

특히 불교에서는 보리심, 불성, 극락정토 등 궁극적 가치를 상징한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태양과 함께 연꽃을 숭배했다. 세상에서 가장 먼저 피어난 꽃이 연꽃이고 그 연꽃이 태양을 낳았다고 여겼다.

연꽃은 쓰임새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지혈과 강심. 알칼로이드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피가 자주 나면 연꽃잎을 즙을 내 마셨고, 가슴이 두근거리면 연꽃씨로 죽을 쑤어 먹었다.

하로(荷露)라는 것은 연잎에 맺힌 이슬로 만든 엿인데 피부에 좋다고 한다. 연꽃은 생명력이 가장 강한 식물로도 유명하다. 씨앗은 수백 년 간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실제로 1,000년이상 땅 속에 묻혀있던 연꽃 씨앗을 발아시킨 예가 있다.

회산 연꽃방죽은 멋진 생태학습장이기도 하다. 백련줄기 사이로 가시연이 서식하고 있다. 충남 이남 지역에만 사는 가시연은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식물. 잎은 물 위로 솟지 않고 수면에 떠 있다. 종이를 촘촘하게 구겨 물에 던져놓은 모습이다. 역시 7, 8월 자줏빛 꽃을 피운다.

지난 해 방죽 한 구석에 수생식물 자연학습장을 조성했다. 700여 평의 뻘에 30여 종의 희귀 수생식물을 심었다. 홍련, 가시연, 왜개연, 수련, 물양귀비, 물달개비, 부레옥잠…. 칼날 같이 도도한 꽃잎을 자랑하는 수련이 볼만하다.

권오현 문화과학부 차장

입력시간 2001/06/2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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