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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50년전 잃어버린 지갑

[어제와 오늘] 50년전 잃어버린 지갑

한국전쟁 51주년, 그날을 전후해 세계 신문에 난 3장의 사진과 ‘한미군 50년전 잃어버린 지갑 찾다’의 기사는 아직도 이 전쟁이 진행형임을 상징한다.

그 첫번째 사진은 6월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원로장성 260여명이 기념식을 가진 뒤 국가보안법 개정반대 및 국군포로 송환을 촉구하는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행진에는 전 국방장관 유재흥 예비역 대장(한국전 당시 사단장), 김성은 전 국방장관(해병대 대대장), 전 육군 참모총장 정승화 예비역 대장(중대장) 등이 참가했다.

이들 중 일부는 김대중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만찬에 참석했다. 김 대통령은“한반도에 평화가 올 때까지 안보를 철저히 수호하겠다. 동맹국 및 유엔과 긴밀한 협조를 유지할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이 작년 평양을 다녀와 한 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당시 김 대통령은 “이제 6월은 통한의 달이 아니다. 희망의 달이 되어야 한다. 6ㆍ25의 원인은 100여년 전 나라를 일제에 빼앗긴 조상들의 무능에 있다. 6ㆍ25는 스탈린의 음모에서 비롯됐다. 주한미군은 통일 후에도 동아시아 안보를 위해 주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50주년이었던 지난해에는 서울에서 퍼레이드가 열리지 않았다. 평양도 조용하기만 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6월 24일 김일성 광장에는 검은 바지에 흰 셔츠가 대부분인 평양시민 10만여 명이 주먹을 휘둘렀다. “오늘도 남조선에 틀고 앉아 새로운 침략전쟁 도발책동과 반공화적 고립압살정책을 벌이고 있는 주한 미군은 철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민대회장 앞에 걸린 붉은 바탕의 프랑카드에는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각을 뜨자’, ‘박살 내자’보다는 조금 후퇴했지만 없애 버리자는 의지는 여전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6ㆍ15정상회담을 마치고 김 대통령을 환송하며 호쾌히 말한 내용과도 큰 거리가 있다.

그는 “군대는 가만두면늘 주적이 누구인지 생각하게 되니 그렇지 않게 하자면 일을 시켜야 한다. 경의선 복원사업이 벌어진다면 인민군들을 투입하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또 남한의 신문 방송협회 대표들과의 회견에서는 한국전은 강대국들이 한반도 내에서 영향권을 확보하기 위해 벌인 각축전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남북쪽의 정치지도자는 통일문제에 대해 그들의 체제를 유지 시킬 목적으로 정책을 펴고 있다”며 한국전 때면 통상 제기하던 남쪽의 북침설, 미 제국주의 침략설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체제유지’를 위해 1년만에 한국전에 대한 해석이 재해석된 것일까?

서울의 ‘한겨레’, 미국 뉴욕에서 발행되는 주간지 ‘빌리지 보이스’, 독립적이라고 주장하는 웹 사이트 ‘민족통신’ 등이 색다른 사진과 기사를 실었다. ‘코리아 국제전범 법정’의 30명 배심원들이 ‘미군 민간인 학살 유죄’ 평결을 내렸다는 것이다.

또한 세계 20여개국에서 모인 250여명의 인사가 6월25일 오후 백악관 앞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며 규탄집회를 벌였다. 이 시위에는 독일에서 온 동포 2세들의 사물놀이 패가 등장하기도했다.

이들 중 일부는 “동족을 죽이는 무기는필요 없다. 미국 침략세력의 지배정책을 종식시키자. 양민학살을 포항, 주한미군의 법죄 만행에 대해 사과 보상 받아야한다”는 내용의 강연을 했다. 평양이 전하고 싶은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이 같은 세가지 사진을 지워 버릴 수 있는 기사도 있었다. 미국 위스콘신스테이드 저널에 난 5월 21일자 ‘한 미군의 50년전 잃어버린 지갑 찾다’의짧은 기사다. 기사는 인정미를 겸비한 순정소설처럼 시작된다.

한국전 말기인 1953~54년 한국에 주둔했던 펜실베니아주 월미스텅에 사는 참전용사 하워드 안권브린트 부부는 2000년 9월 판문점과 한국전 당시 격전지였던 중부전선의 펀치볼을 관광하고 한 마을의 기념관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한한국인 남자가 무엇인가 꺼내 건너며 말을 붙였다. “낚시를 하다가 이 낡은 지갑이 떠내려 오길래 건져올렸소. 안에 신분증이 있었고 잔돈이 조금 있었소. 주인을 찾아 주시오”라며 통역을 통해말을 전한 뒤 명함을 주고 횅하니 사라졌다.

안켄브란트 부부는 크리스마스가 될 때에야 이 지갑의 주인이 위스콘신주의 크로스프레인 마을에 목수로 일하고 있는 제럴드 베흐넨씨임을 알아내고 그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51년 겨울 어느날 중동부전선 ‘단장의 능선’아래있는 미 육군의 한 대대에 베흐넨은 병사로 있었다. “나는 어느 눈보라치던 날 땅을 파 만든 야전변소에서 일을 보았고 그 후 지갑이 없어졌다. 어떻게 내가 플라스틱으로 된 신분증, 한국동전, 미국 잔돈이 조금 든 지갑을 잃어버린 것을 당신이 알게 되었는가.”

위스콘신 스테이트저널은 결론 내리고 있다. “50년전의 지갑을 주은 한국인은 보상도 무엇도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주인을 찾아 주기를 기다렸을 뿐이다”라고. 미국이 한국에 참전 한 것이 지갑을 잃기 위해서 일까. 지갑을 찾아준 어느 한국인의 인정이 6월25일 그날이 올 때마다 되새겨 지기를 기원한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1/07/03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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