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태안 신두리해변

엄청나게 넓다. 눈을 의심할 정도이다. 물이 빠져 나가고 있었다. 파도가 백사장을 살짝 떠나는가 싶더니 어느 틈에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달아났다. 물이 떠난곳은 모래 갯벌이 됐다. 갯벌은 백사장의 수백, 아니 수천 배는 더 넓다. ‘어떻게 이런 바닷가가 아직 숨어 있었을까?’

신두리(충남 태안군원북면) 해변은 천혜의 해수욕장이다. 서해안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물이 맑다. 그리고 끝없이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완전히 썰물이 되면 망망대해가 그대로 갯벌이 돼 버린다. 해수욕장으로서의 훌륭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피서철에도 사람이 크게 붐비지 않았다. 교통 때문이었다.

이제는 조금 다를것이다. 지난 연말 서해대교가 개통돼 충남의 바닷가로 가는 길이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학암포, 만리포, 천리포 등 태안의 다른 해수욕장처럼 신두리 해수욕장도유명세를 탈 전망이다. 특히 신두리 해변에는 다른 바닷가에는 없는 보물이 있다. 최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사구(砂丘)이다.

사구는 말 그대로모래 언덕. 크게 사막사구와 해안사구로 구분되는데 한반도의 사구는 모두 해안사구이다. 파도가 옮겨 놓은 모래가 아니라 바람의 작품이다.

서해안에만 모두 28곳의 사구가 확인됐고 태안군의 해안선에만 16곳이 있다. 신두리 사구는 길이 3.2㎞, 폭 1.2㎞, 넓이 384만 ㎢로 한반도의 사구중 가장 넓다. 북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강하면서도 잦은 북서풍이 해변의 모래를 퍼올려 거대한 언덕을 만들었다. 학자들은 약 1만 5,000년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추정한다.

사구는 모진 생명력이회로판처럼 얽혀 있는 곳이다. 원래는 모래만 있었다. 물기 하나 없는데다 바람이 불 때마다 지형이 바뀌니 ‘땅’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그 땅에 생명이 나타났다. 처음 생명을 틔운 것은 보잘 것 없는 풀. 긴 뿌리로 모래를 얽어 단단하게 터를 마련한 그들은 땅을 덮고 꽃을 피웠다. 야트막한 그늘이 만들어지면서 움직이는 생명이 찾아왔다.

개구리, 도마뱀에 이어 종달새, 흰물떼새, 꼬마물 떼새 등이 둥지를 틀었다. 언제나 바람을 맞고 있어 키 큰 식물은 아예 들어서질 못했다. 그래서 생태계는 도화지 같은 평면 위에 펼쳐진다. 위에서 내려다 보기만 하면 된다.

신두리 사구의 얼굴은 해당화이다. 예전에는 바닷가에 흔하디 흔했던 꽃이 해당화. 그러나 그 뿌리가 몸에 좋은 약재라는 헛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몽땅 파 가버려 이제는귀하디 귀한 꽃이 됐다.

신두리의 해당화 군락은 전국에서 가장 넓다. 이 곳 저 곳에 일가를 이루고 붉은 꽃을 피운다. 해당화의 개화시기는5~7월. 일정을 서두른 피서객들은 꽃을 볼 수 있다. 해당화 군락 아래로도 꽃식물이 자란다.

나팔꽃을 닮은 갯메꽃, 보라색 꽃망울이 앙증맞은 갯완두를 비롯해 갯방풍, 모래지치, 동보리사초 등이 모래 바닥에 촘촘히 들어차 있다. 모두 멸종 위기의 희귀 식물이다.

신두리에 가면 이렇게 갯벌 생태계와 사막 생태계를 동시에 경험한다. 왜 이 곳이 천연기념물이 되어야 하는지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한 마음이 생긴다. 절대로 훼손하면 안된다는.

권오현 문화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1/07/0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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