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영화세상] 한국과 프랑스 배우의 차이

프랑스영화제. 프랑스 영화인들로 구성된 유니프랑스가 뉴욕, 요코하마 등 주요영화 시장이라고 생각되는 도시를 찾아 자국의 최신 영화들을 소개하는 행사. 유명 배우, 감독들도 기꺼이 참가한다.

올해에는 서울에서도 프랑스영화제(6월25~29일)가 처음 열렸다. 당연하다. 한국도 그들로서는 크고, 앞으로 더 넓혀야 할 시장이기 때문에. 할리우드 공세에도 자국영화산업이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세계 몇 안되는 나라, 국민들이 너무나 자국영화를 사랑하는 나라, 해외시장 개척이 절실한 나라라는 공통점도 영화에 관한 한 두 나라를 가깝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번 영화제에 자신의 최신 출연작 ‘왕의 춤’ ‘마티유’ 를 들고 서울을 찾은 배우 베누아 마지멜.

올해 칸영화제에서 ‘피아노 선생’ 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스물 일곱 살의 젊은 배우이다. 놀라운 것은 이 젊은 배우가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역을 할 수 있느냐 였다.

‘왕의 춤’ 에서는 예술가적 취향이 강한 루이 14세, ‘마티유’ 에서는 해고된 아버지의 복수를 꿈꾸는 젊은이, ‘피아노 선생’ 에서는 연상의 교수를 사랑하는 학생으로 시대와 현실과 심리를 인상깊게 연기했다. 그것도 정식으로 학교에서 연기공부를 하지 않았는데.

마지멜은 열두살 때 아역으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즐거움이었다. 배우가 뭔지 모르고, 열정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한편 한편 찍을 때마다 배웠다고 한다. 초기에는 연기를 공부하지 않은 것이 장애가 됐다. 그러나 그는 감독을‘학교’로 생각했다. “감독마다 제시하는 비젼이나 우주가 다르다. 그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면서 연기를 할 수 있는 열정과 깊이를 키워나갔다.”

여기에는 당연히 조건이 따른다. 인기가 좋다고 마구잡이로 출연하거나 하나의 틀, 배역에 갇혀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것을 위해 마지멜은 기다렸다. 도둑 역을 잘하니까 한동안 도둑 역만 들어왔다. 그래서 다른 역이 들어올 때까지 참았다.

그러니까 ‘피아노 선생’ ‘왕의 춤’ 이 찾아왔고, 자신의 연기에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배우는 시니리오나 주제를 보고 작품을 결정한다.

그것이야말로 ‘배우의 자유’ 이다. 그 자유가 영화 배우로서 아이덴티티를 형성해준다. 때문에 배우로서 지속성을 위해서는 다양한 나의 존재를 찾아내는 작품 선택이 필요하다.”

그는 그 선택에 성공했다. ‘피아노 선생’ 은 그를 강렬하고 집중력 있는 배우로 만들었고, 그를 세계에 알렸으며, 미래를 위해 자극과 용기를 주었다.

“이렇게 한국을 방문할수 있었던 것도, 다른 세계를 발견하게 한 것도 모두 ‘배우로서 진정한 선택의 자유’ 를 지켰기 때문이다. 위험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떤 영화냐에 따라서는 한국 감독과 일할수도 있다. 지금도 다양한 감독들과 만나 내 비젼을 쌓아가는 중이다.”

이 젊은, 아니 어린 배우는 이런 얘기를 단숨에 해 버렸다. 확신에 차 있었다. 인기나 돈, 영화의 규모에 대한 언급은 일체 없었다. 그것은 배우의 미래를 위한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미디 한편 성공했다고 숨돌릴 틈도 없이 연속 같은 이미지의 영화에만 나오는 어느 남자 배우, ‘메뚜기도 한 철’ 인양 모든 광고에 얼굴을 내밀어 스스로 수명을 단축시키는 우리의 여배우들. 배우는 기다릴줄 알아야 한다.

진짜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마지멜이 말하는 ‘자유’ 를 가져야 한다. 우리 배우들은 그 자유를 반대로 생각하거나, 그것을 눈앞의 이익을 채우는데 쓰고 있으니.

입력시간 2001/07/0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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