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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이창호 돌풍 "막을 자 누구인가"

[바둑] 이창호 돌풍 "막을 자 누구인가"

이창호의 '미완성의 승리- V100'③

1989년으로 돌아가자. 89년 바둑계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제1회 응씨배(應氏盃)가 조훈현의 손아귀에 들어가며 설움 받던 약소국 한국을 일약 세계 속의 한국으로 심는데 일조를 했고, 제1회 동양증권배가막을 올려 세계화 시대를 걷는 원년이 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창호가 속기전이지만 김수장을 누르고 속기챔프에 올랐다는 것도 뉴스다. 이창호의 각종 기록 가운데 89년은 꼭 한자리씩 차지하는 것임에 이 89년을 그도 잊을 수 없으리라.

89년도의 국내상황으로 돌아오면 4인방이라 하여 ‘철각’ 조훈현에 도전하는 막강 ‘도전자 4인방’이 있었다. 서봉수는 언제나 첫 손에 끼는 도전자요, 유창혁이 슬슬 날을 세우고 있었고, 오규철 2단이 ‘뉴페이스’로서 새롭게 진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창호가 도전자 4인방의 제일 마지막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먼저 오규철을 소개할 필요가 있다. 33세의 늦깎이로 입단해 “입단 3년 안에 도전자가 되겠다”고 호언한 그가 정말 3년 이내에 뜻을 펴고 있었다. 왕위전 예선에서 파죽의 7연승으로 본선에 진출한 후 본선 첫판에서 서봉수 9단에게 패했으나 그 뒤 내리 5연승하며 선두로 질주하였다.

그러다 동률재대국까지 가는 접전 끝에 대망의 도전권을 따낸다. 결국 조훈현 9단과 마주 앉았지만 한판도 얻지 못하고 영봉패를 당하고 만다.

당시 이 사건은 조훈현을 만나러 가는 길이 그리 어렵지 않은 시절임을 느끼게 해준다.

물론 당시 오규철이 당당한 기력의 소유자이지만 조훈현은 응창기배를 우승한 이후 다가올 세계대회에 좀더 심혈을 기울이고, 나아가 국내대회는 좀 ‘풀어주는’ 작전으로 나간다. 사실이지 10여년을 정상을 지켜간다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치고 올라오는 후학들을 그의 방패 하나로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 후학의 핵심에 이창호가 있었다. 89년 최고위전에서 본선 토너먼트를 달구었던 이창호의 돌풍이 있었다. 2차 예선에서 출발한 이창호는 한상렬 정수현을 연파하고 장두진 김좌기 강철민 등을 차례로 꺾고 본선에 성큼 진입했다.

본선 1회전에서 동양증권배 우승에 빛나는 양재호를 접전 끝에 4집반을 이긴 후 황원준을 흑으로 불계승, 승자 결승에 뛰어올랐다.

그러나 이창호의 상대는 천하의 서봉수. 그 누구도 이창호의 돌풍은 서봉수앞에서는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이창호는 그 같은 주변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200수를 조금 넘기자 불계승을 거두고 최종결승에 진출한다.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전초전에 불과한 것. 패자조에서 재기한 서봉수가 다시 찾아왔으나 또다시 5집반이라는 엄청난 차이로 승리를 거두고 당당히 도전자로 낙점되고 만다. 13세에 이룬 세계최연소 도전자가 된 것이다.

이창호가 서봉수를 자주 이긴 것이 당시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명실공히 서봉수라 하면 조훈현 9단에 필적할 거목이었던 바, 대다수의 기사들이 조훈현 고개를 만나기 전에 서봉수 언덕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렸던 시대.

그런데 서봉수를 조훈현 못지 않게 겁내던 그때, 일개 예선전도 아니고 최종결승전에서 이겼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패왕전 본선토너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이창호의 용전분투가 드세게 일어나는데 1회전에서 김일환에게 흑2집 반승을 거두더니 2회전에서는 전영선을 넘어버렸다.

전영선이면 나중에 얘기가 나오겠지만 그를 거두어 조훈현에게 인도했던 첫 프로기사 사범이 아니던가. 양재호 9단과 벌인 준결승에서도 침착한 반면 운영이 돋보여 3집반승. 이제 누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를 멈출것인가 귀추가 주목될 정도였다.


[뉴스화제]



●유창혁, 춘란배 역전우승-왕리청 1:2로 꺾어

유창혁 9단이 1패 뒤 2연승에 성공, 중국주최기전 춘란배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6월26일 중국 베이징(北京) 아시아호텔에서 벌어진 제3회 춘란배 세계바둑선수권 결승3번기 최종국에서 유창혁 9단은 일본의 ‘기성’ 왕리청(王立誠) 9단을 상대로 223수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고 춘란배를 거머쥐었다.

이로써 유창혁은 98년 제2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에서 왕리청 9단을 만나 첫판을 승리하고도 이후 2승 3패로 역전패를 당한 아픔을 깨끗이 설욕했으며, 왕 9단과의 통산전적에서도 7승5패(비공식 기록 2승 포함)로 앞서 나가게 되었다.

현재 중국이 개최하는 유일한 세계대회로 중국기원 주최, 춘란그룹이 후원한 이번 대회의 우승상금은 15만 달러, 준우승은 5만달러이다. 한편 3위는 조훈현 9단이 차지했다.

입력시간 2001/07/0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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