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풍향계] 세무조사 '음모론' 공방 가열

정국에 언론사세무조사 ‘장마’가 지리하게 계속되고 있다. 지난 주(6월29일) 국세청이 조세포탈 혐의가 있는 언론사의 법인과 일부사주들을 검찰에 고발함으로써 이번 주부터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는 당분간 세무조사 전선을 활성화시키는 에너지가 검찰수사에서 제공될 것임을 의미한다.

하지만 전선의 중심은 여전히 여야 정치권에 걸쳐 있다. 한나라당은 주초에 언론사 세무조사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연결 짓는 의혹을 제기해 새로운 전선을 형성했다. 일요일이었던 7월1일 긴급 소집된 한나라당 대책회의에서는 “일련의 언론 압살극의 배경에는 야당이나 언론 말살보다 더 큰 음모가 있다.

김정일 서울 답방 이전에보수언론ㆍ비판언론에 대해 정지작업을 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 권철현 대변인은 “김정일 답방으로 광적인 열광분위기를 만들어낸 다음 통일헌법으로의 개헌 등을 시도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즉 내년에는 재갈 물린 언론을 바탕으로 정계개편과 야당 흔들기를 시도해 재집권을 이룬다음 장기집권으로 간다는 것이 한나라당이 예상하는 여권의 시나리오다.


‘김정일위원장 답방과 연계’ 의혹 제기

한나라당은 이와함께 청와대와 국세청 검찰의 핵심관계자들의 출신이 대부분 호남이라며 이들이 ‘언론압살극’을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전가의 보도인 색깔론과 지역감정조장으로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고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고 격렬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2일 열린 민주당 확대간부회에의서는 이 문제와 관련한 참석자들의 성토가 쏟아졌다.

이해찬 정책위의장은 “야당이 드디어 색깔론과 지역감정을 동원해서 세무비리 조사를 막으려하는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면서 “이는 국민을 기만해서 본질을 호도하려는 술책이며 집권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가의 보도처럼 악랄한 수법을 다시 쓰는 것”이라고 분개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남북문제를 정쟁에 끌어들여 왔다”면서 “한나라당의 용공음해에 대해 이 총재의 사과와 해명을 요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언론사 세무조사는 김정일 위원장 답방사전 정지작업용이라는 한나라당의 주장에는 무리가 있다. 언론사 세무조사결과에 대해 해당언론들이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이 같은 반발은 하루이틀에 끝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검찰조사와 재판과정 등을 거쳐 언론사 문제가 일단락 되려면 앞으로 1~2년은 넘게 걸릴 것이며 이 과정에서 해당 언론사들이 정부여당에 대해 호의적인 보도를 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특히 조선일보 등 보수적 성향의 언론이 세금추징이나 사주 사법처리 문제로 논조를 바꾸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 답방이 추진되거나 실제로 답방이 이뤄질 경우 이 같은 언론 분위기는 오히려 여권에 훨씬 부담이 될수밖에 없다. 여권이 이 정도를 예상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한나라당은 김정일 답방시 광적인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는데 지난해 6ㆍ15 정상회담 이후 보수언론과 야당을 중심으로 깊어지기 시작한 대북 퍼주기 의혹이 팽배한 상황에서 그 같은 열광적 분위기가 인위적으로 조성되기는 어렵다.

한나라당이 제기한 정계개편과 개헌설도 현실화 하기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대선을 앞두고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개헌은 엄청한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과거 유신시절에도 개헌을 밀어붙이기 위해서는 막강한 권력과 자금이 동원됐는데 현 정권은 그런 수단을 갖추지 못했다. 이번 세무조사가 현 정권에 그런 힘을 부여할 수는 없다. 설사 제도권 언론을 틀어막는다 해도 인터넷 등 비제도권 언로는 넓게 열려 있다.


선거법위반 판결, 간단찮을 풍파

7월 임시국회 소집여부도 정가의 주요 쟁점 중의 하나다. 6월 국회가 한나라당이 제출한 통일ㆍ국방장관 해임건의안 처리 문제로 파행,결국 주요 법안과 추경안을 처리하지 못해 임시 국회를 열 필요가 있다. 사정은 여권이 더 급해 보인다.

한나라당은 그 동안 임시국회가 없는 홀수달에는 방탄국회가 필요했으나 지금은 그런 수요가 없어 상대적으로 느긋하다.

그러나 한나라당도 언론사세무조사 문제 등을 쟁점화할 마당으로서 국회의 효용성이 있다. 따라서 7월 중순께 여야 합의로 임시국회가 소집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7월3일 내려진 8개 국회의원 선거구의 고법판결도 정치권에 적지않은 풍파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마지막 재판인 이번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하게 될 당사자뿐만 아니라 의석판도가 달라진 여야가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이 분명하다.

이계성 정치부 차장

입력시간 2001/07/04 14:25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