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言 갈등] ‘신문과 정부의 전쟁’이 터졌다?

세무조사에 선전포고로 맞대응 ‘누가 죽나’

“한국 언론사와 정부의 전쟁이 시작됐다.”

스위스 일간 ‘르 탕’은 6월28일자 보도에서 한국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로 촉발된 일부 언론과 정부간 갈등을 ‘전쟁’으로 표현했다. 외부의 시각이 오히려 객관적일지 모른다.

실제로 언론사 세무조사 파장은 이미 ‘조세정의인가, 언론탄압인가’라는 단순한 논쟁의 틀을 벗어났다. 정부와 일부 언론사가 불퇴전의 전의를 불태우며 생존게임을 벌이는 인상이다.

세무조사 계획 발표로 시작된 갈등은 6월29일 국세청이 142일간에 걸친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격화했다. 일부 신문들은 국세청의 발표를 ‘최후통첩’으로 받아들였다.

이들 신문사는 사내외 논객들을 차례로 지면에 내세우거나 사설을 통해 자사의 주장을 피력하면서 ‘이젠 할 말을 다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앞서 조선일보는 27일 기자총회를 열어 ‘권력과의 투쟁’을 선포했다.


법의 심판대에 오른 6개신문사

우선 국세청의 조사 발표 내용을보자. 국세청은 조선, 동아, 중앙, 한국, 국민, 대한매일 등 6개사를 조세포탈 혐의로 고발했다.

추징세액은 조선 864억원(탈루소득1,614억원), 동아 827억원(1,700억원), 중앙 850억원(1,723억원), 한국 148억원(525억원), 국민 204억원(536억원), 대한매일 155억원(237억원)으로 모두 3,048억원이었다. 탈루소득 합계는 6,335억원. 이 액수는 재벌기업 세무조사 때보다 많은 것이다.

국세청은 이와 함께 조선, 동아, 국민일보 3개사에 대해서는 법인과 함께 사주도 고발했다. 부당증여와 주식불법거래, 위장상속 등 개인비리가 포착됐다는 게 그 이유다.

이들 사주에 대한 탈세 추징세액은 법인 세액보다 많거나 거의 맞먹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의 고발이 들어온 이상 검찰의 수사는 필연적 수순이다.

일견 당연한 법집행으로 보이는 국세청 세무조사에 일부 신문사가 죽기살기로 저항하는 것은 왜일까. 현재 상황은 저항의 주체가 신문인지, 신문사 사주인지 분간이 어려운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들 신문사는 저항의 명분으로 국세청 조사가 ‘비판적인 언론을 길들이기 위한 음모의 소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세청이 발표한혐의 내용에 대해서는 조사결과가 ‘의도적으로 부풀려졌다’고 반박하고 있다.

6개 중앙언론사가 동시에 법의 심판대에 오르게 된 것은 언론사상 초유의 일이다. 공정한 법집행 차원이든, 언론 길들이기나 정치적 의도 차원이든 배경을 놓고 논란이 없을 수 없다. 이번사태를 외국언론의 보도처럼 일부 언론과 정부의 ‘전쟁’으로 규정한다면, 이 전쟁은 매우 복잡한 전쟁이다.

우선 지적되는 것이 ‘언론의 분리’이다. 국세청이 당초 추징세 규모를 공개한 언론사가 신문사 6개에 한정됐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MBC, KBS, SBS, YTN을 포함한 방송사가 공개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밖에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문화일보 등 종합일간지와 연합통신, 매일경제, 한국경제신문 등 경제지에 대한 조사내용도 공개되지 않았다.

국세청이 조사한 23개 언론사에 대한 총 추징세액은 5,056억원. 이중 절반이 넘는 3,048억원이 공개된 6개사에 집중됐다. 이런 점에서 이번 전쟁은 ‘언론과 정부’의 전쟁이 아니라 ‘특정 신문사들과 정부’의 전쟁이란 뉘앙스를 풍긴다.


내년 대선 득실계산 여야 정치권 동상이몽

또 하나 특징은 대부분의 시민단체가정부 편에 서있다는 것이다. 반면 야당은 반정부 진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언론전쟁은 두개의 뚜렷한 세력권 사이에 대립전선이 형성돼있다. 한 진영은 야당의 지원을 바탕으로 조선, 동아, 중앙 3개 신문사가 선봉에 서있다.

또다른 진영은 정부가 선봉을 맡고, 여당과 방송사, 일부 신문, 시민단체가 지원하는 형국이다. 방송사와 일부 신문이 정부에 가담한 것은 광고시장을 둘러싼 제로섬 게임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있다. 기존 유력언론의 광고시장 지분을 빼앗을 기회로 여긴다는 것이다.

선공을 가한 정부가 명분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언론사에 비리 의혹이 있어왔고, 또 있었다는 점에서 정부의 조세권 행사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아울러 언론시장도 명백한 시장인 만큼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무가지와 신문선택의 자유 침해 등에 대해서는 제도적으로 손질하는 것이 타당하다. 문제는 정부의 개입이 여기에 국한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개입이 한계를 벗어났고, 여기에는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는 의혹을 불러 일으킨 것은 여당이었다.

특정 신문들을 ‘보수ㆍ수구언론’으로 몰아붙인 것이 자충수였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시장원리 확보를 개혁의 목표로 삼는다면 모르지만, 특정 신문의 논조와 방향성을 개혁대상으로 보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이야기다.

여당이 “수구ㆍ보수”를 운운한 것은 결국 ‘국민의 판단을 저해해 여론을 보수쪽에 묶어두고 있는 일부 신문을 혁파해야 한다’는 논리로 인식되고 말았다. 이 점에서 여당은 전선을 지나치게 확대함으로써 상대방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분석이 많다.

여당과 시민단체가 한목소리로 규정한 ‘보수-진보언론’ 2분화도 국세청 조사의 저의를 의심케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여당의 저의로 지목되는 것은 다름아닌 내년 대선이다.

정권 재창출을 자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현상타파를 위한 회생의 계기로 언론개혁을 들고 나왔다는 추측이다. 언론개혁을 통한 보수 목소리 약화가 여당의 노림수라는 주장이다. 이런 측면에서 “여당이 정권 재창출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면 언론을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정부여당에 맞서 언론조사에 반발하는 한나라당의 입장에도 똑 같은 정치적 복선이 깔려 있다고 보는 주장 역시 많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가 정부에 굴복하면 큰일이라는 위기의식이 바닥에 자리잡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한나라당은 보수언론이 순치되면 내년 대선에서 치명적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자에 상처만 남을 듯

그러면 언론과 정부의 갈등은 어떻게전개될까. 단기적으로는 선봉에서 저항하고 있는 신문들의 열독률이 오히려 높아질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것은 독자들이 특정 신문의 도덕성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싸움 자체의 전개상황에 더욱 흥미를 갖는다는데 기반을 두고 있다. 경험으로도 이 의견은 설득력이 있다. 1999년 사주구속사태까지 빚은 중앙일보의 경우 정부와의 끈질긴 일전이 독자들의 관심을 끈 바 있다.

장기적으로도 정부 여당이 크게 얻을것이 없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없지 않다. 이것은 언론이 생산하는 상품의 특성에 근거하고 있다.

아울러 신문들이 추징세를 그대로 납부할 경우 경영에 타격은 받겠지만 쓰러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남북대치 상황상 상대적으로 저변이 넓은 보수층이 쉽사리 이념적 기호를 바꾸지 않을 것이고, 이에 따라 보수 신문이 영향력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싸움의 피해자가 국민이라는 점이다. 정부와 언론, 여당과 야당, 언론과 언론, 언론과 시민단체가 편을 갈라 싸우는 모습을 보며 국민은 헷갈린다.

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가는 것이냐며 걱정하며 혼돈 상태에 빠져 있다.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면 외면당하게 된다. 이번 싸움이 양측 모두에게 상처만을 남기는 것으로 끝이 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신문과 정부의 전쟁으로 비화한 것은 기묘한 역설이다. 언론이 재계를 능가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만큼 막강한 파워를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을은 연중 폭로한 것이기도 하다.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는 ‘신문전쟁’은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이라는 평가는 그래서 의미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7/04 18:00


배연해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