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言 갈등] 위기의 언론, 위기의 언론인

국세청 세무조사를 놓고 정부와 일부 언론사간에 벌어지고 있는 공방전의 핵심은 ‘공평 과세’와 ‘언론 탄압’이라는 두 관점으로 압축된다.

정부여당은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를 ‘법대로 처리’라는 기본 방침을 천명하고 검찰 고발 등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반면 800억원대라는 고액 추징금을 맞은 조선(864억원) 동아(827억원) 중앙(850억원) 등 3개 신문사는 이번 세무조사가 “정부에 비판적인 신문사를 겨냥한 계획적인 탄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현 정권에 동조하지 않는 언론사에 도덕적 타격을 입히고 경영에 압박을 가해 내년 대선 전후 터질 대정부, 대여권에 대한 비판 수위를 사전에 누그려 뜨리려는 음모”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먼저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들 신문사들은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가 발표된 29일 초판부터 구체적인 사례까지 적시하며 국세청 세금 추징에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특히 ‘국세청 표적 조사’의 근거로 거대 방송사와 현 정권에 동조해온 친여 성격의 신문사들과의형평성 문제를 일제히 들고 나왔다.


“비판신문 죽이기”주장

가장 많은 세금을 추징 당한 조선일보는 “정부가 조세 공평을 외치면서도 그간 정부의 언론사 세무 조사를 지지해온 MBC KBS SBS 등 방송 3사와 한겨레 신문 등이 고발 대상에서 빠져 ‘봐주기’ 의혹이 있다”며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이 신문은 7월2일자에서도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 직후 신문 보다 방송을 정권의 지지 세력으로 활용한다는 내용의 언론정책 보고서를 폭로하면서 “KBS(290억원)와 MBC(200억~400억원)가 검찰에 고발된 6개사중 3개 언론사보다 추징 액수가 많은 것으로 통보됐는데 고발에서 제외된 것은 이번 세무 조사가 ‘비판 신문 죽이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도 언론계 소식을 전하는 미디어오늘의 기사를 인용해 “방송 3사와 경제지가 수십억~수백억원의 탈루 세금 추징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는데 이들의 추징액은 밝히지 않은 채 마치 6개 언론사만 공개하고 검찰에 고발한 것은 형평성을 잃은 처사’라며 ‘국세청이 공개한 6개 언론사에 대한 총 추징액도 조세포탈 부분을 제외한 상당 부분이 세법상 논란이 있음에도 마치 추징금 총액이 탈루액인 양 오해하기 쉽게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학계 인사의 말을 인용해 ‘정부가 소유 지분을 갖고 있는 일부 방송사를 봐주려는 의혹을 사는 등 신문과의 형평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현재 이들 3개 신문사들은 정부가 치밀한 시나리오에 따라 고도의 언론 길들이기에 돌입했다는 자체 분석을 내리고 있다.

정부가 세무 조사라는 적법한 절차를 통해 거시적으로는 언론사의 도덕성에 상처를 주고, 미시적으로는 ‘신문과 방송’, 더나아가서 ‘비판적 신문과 친정부적 신문’간의 대결 구도로 몰아가려 한다는 것이다.

친정부 체제를 구축한 방송사를 끌어 안는 대신, 매출액이 방송사에 비해서는 적지만 비판적인 논조를 취하는 신문사에는 거액의 추징금과 사주 고발로 재갈을 물리려 한다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어차피 친야 성향이 강한 보수 신문사들에 달래느니 차라리 파급력이 강한 방송을 잡고있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또 이 신문사들은 정부가 신문사간에서도 친여쪽과 친야쪽을 구분해 세무조사를 실시 함으로써 자중지란(自中之亂)을 통한 반사 효과도 노리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번에 방송과 신문사, 신문사와 신문사간에 세금추징액과 검찰 고발에 차이가 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라고 주장한다.


방송사ㆍ신문사, 세무조사에 상반된 시각

실제 이번 국세청 세무조사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두고 방송사와 이들 신문사는 매우 대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신문사들 간에도 특히 조선 동아 중앙 등 3사와 한겨레 경향 대한매일 3사는 서로 반대 논조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언론계 이반 현상은 29일 국세청의 세무조사 결과 발표 직후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날 국세청 결과 발표는 이례적으로 방송 3사에 의해 생방송 됐다.

방송사 측은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는 중대 사안이라 관례에 따라 생방송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3개 신문사들은“방송사가 신문사의 비도덕성을 알리기 위해 마치 짠 듯 검찰 고발 발표 장면은 생방송 했다”고 지적하며 “질의 시간 중 기자들이 ‘방송사들도 추징액수가 큰 데 왜 검찰 고발 대상에서 제외 됐느냐’는 질문을 하자 방송사들이 일제히 생방송을 중단하고 해설 방송이나 다른 프로그램을 내보냈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이번 정권 들어 언론사들은 전에 없이 잦은 갈등을 빚어왔다. 동아일보가 자사 관련 기사(금융기관에서 싼 대출 받아 투자했다는 뉴스)를 문제 삼아 MBC를 고발했는가 하면, MBC는 자사 기사를 실은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을 고발하는 등 신문사와 방송사간의 문제가 계속 터지고 있다.

또한 조선과 한겨레신문이 서로 자기신문을 비방한 기사를 문제 삼아 맞고소를 하는 등 언론계는 그야말로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어수선한 언론계를 두고 내부에서 자성론과 함께 우려의 시각이 함께 고개를 들고 있다.

우선 언론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그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권력화 된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 보고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언론계가 세무 조사 등 최근 일련의 사건으로 국민들로부터 ‘부도덕한 특권 집단’으로 폄하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

물론 그간 언론계가 ‘제4부’로 불릴 만큼 위상이 높아진 것 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독재 정권에서 억눌려 있던 언론이 민간 정부로 넘어가면서 언론 자유를 만끽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과도기 적현상일 수 있다.

언론은 어차피 국민의 이념과 합의라는 대의를 따라 갈 수 밖에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잠시의 우월적 지위는 언론이 지닌 자체정화 기능에 의해 오래가지 않는다. 어쩌면 이번 사태가 그 단초가 될 수 있다.

요즘 언론과 언론인은 최대의 위기상황에 봉착해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이어 이어진 군사독재 시절의 가혹한 탄압과 견제 속에서도 언론은 살아 남았다.

하지만 그 뒤에는 국민의 소리없는 성원과 지지가 있었다. 그것은 언론이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에 기여를 할 수 있도록 한 보이지 않는 버팀목이었다. 하지만 지금 언론은 홀로 서 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07/04 18:06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