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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길수가족 죽음의 대탈주극 '끝'

중국서 필리핀 거쳐 한국으로 재중탈북자에 파장 미칠 듯

“정말 이렇게 한국 땅을 밟으니까 인생에 처음으로 태어난것 같습니다.”

장길수(17)군 가족의 한국을 향한 대장정이 6월30일 마침내 일단락됐다. 이날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길수 가족 7명은 피곤하고 초췌한 모습이었으나 보도진을 향해 웃음을 지어보이는 등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길수군의 외할머니 김춘옥(66ㆍ가명)씨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 가족을 대신해 “한 동포의, 혈육의관계가 없었다면 어떻게 이렇게 죽음의 운명에서 타고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정말 고맙고 반갑습니다”고 말했다.

길수군 가족의 대장정은 ‘죽음의 운명’같이 처절했다.

“정말 (대한민국에)가지 못 한다면 온 식구가 죽음을 각오하고 저 검푸른 파도에 몸을 던지고 싶습니다.”

6월26일 중국 베이징(北京)의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사무소로 전격진입해 농성 중인 길수군 가족 7명의 얼굴은 비장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공안과 공안 차량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했고, 때 맞추어 중국 공안이 길수군 가족에 대한 체포작전을 곧 벌일 것이란 소문까지 전해졌기 때문이다.

UNHCR은 중국 공안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치외법권 지역이지만 정치적 망명이 아닌 빈곤을 피하기 위한 경제적 난민은 국제적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길수군 가족은 자칫 사무소에서 쫓겨나 북한으로 송환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고난의 대장정에서 길수군 가족은 이미 생지옥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1997년 이후 죽음의 고통 이겨낸 대장정

길수군 일가 친척 등 4가족 16명이 탈북을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 함북 회령에 살던 길수군의 외할머니 김씨가 그 해 3월 두만강을 넘었다. 남편(정태준ㆍ68)이 중국에서 귀국한 ‘성분미해명자’로 분류돼 극심한 불이익을 당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20명을 채워야 쉽게 대한민국에 갈 수 있다”는 한 한국인의 말을 믿고 가족들의 탈출을 계획했고, 98년 1월 북한에 다시 들어가 남편과 아들 대한(28ㆍ가명)씨 등을 데리고 나왔다.

99년 1월 탈북한 길수군 또한 북한에 남은 가족을 ‘구출’해내기 위해 두 번이나 입북했다. 이 과정에서 다섯 번 체포당하는 등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통을 겪었다.

길수군은 수기에서 “1999년 8월 사회안전국 순찰대원들이 두만강을 건너던 나와 사촌(김민국ㆍ가명)을 끌고 가창문도 없는 암흑의 심문실에서 11시간 동안 ‘개를 잡아 죽이듯’ 구둣발로 마구 밟았다”며“각목으로 맞아 터진 머리와 수갑이 채워진 채로 짓이겨진 두 손목은 피로 흥건히 젖었다”고 회고했다.

두만강을 건넜지만 길수군 가족의 중국 도피 생활 역시 고난의 연속이었다.

길수군은 “가는 곳마다 숨어 지내며 여기 저기서 빌어먹기도 했다”며 “북한에서 왔다며 (중국) 아이들까지 ‘거지 거지’하며 놀려대곤 했다”고 수기에서 밝혔다.

올 3월에는 어머니 정선미(46)씨와 삼촌 광철씨 등 가족 4명이 중국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의 은신처에서 탈북자의 밀고로 북송되고 남은 가족의 은신처마저 노출돼 최근 수개월 동안 피를 말리는듯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길수군은 이 와중에서도 국제언론과 후원인 등의 도움으로 99년 서울에서 열린국제비정부기구(NGO)대회에 가족의 탈북 동기와 과정,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그림전시회를 열고 ‘눈물로 그린 무지개’라는책을 펴내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길수 가족은 6월 중순께 중대한 결정을 했다. 지원금도 끊기고 신분이 노출돼 언제 중국 공안에 붙잡힐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 몽골행이냐 망명행이냐를 놓고 가족간에 의견이 갈렸지만 ‘이렇게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인데 베이징(북경)의 UN(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 가서 할 얘기를 다하고 죽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난민 지위와 망명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인지 3일만인 29일 베이징을 출발, 싱가포르과 필리핀 마닐라를 30일 인천으로 입국할 수 있었다.


중국 실리ㆍ명분 모두 챙겨

농성이 장기화 할 것이란 당초 예상과 달리 길수군 가족이 농성 4일만에 입국할수 있었던 것은 중국 정부가 신속하게 ‘제3국 추방’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2008년 하계 올림픽에 국운을 걸다시피 하고 있는 중국은 7월 중순으로 예정된 하계 올림픽 개최지 결정을 앞두고 난민 인정도, 북한 송환도 아닌 절충안을 통해 국제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제 한국으로의 대장정을 끝낸 길수 가족은 한국적응이란 또 다른 대장정을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한국으로 입국한 탈북자 상당수가 경제적 궁핍과 세대간ㆍ부부간 갈등 등 가족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남북한의 체제 경쟁 과정에서 ‘귀순자’로 영웅대접을 받던 탈북자들이 최근 탈북자 급증과 남북 화해 분위기로 공식 호칭마저‘북한 이탈주민’으로 ‘격하’된 상태다.

통일부에 따르면 6월말 현재 국내에 거주중인 53년 휴전 이후 탈북자는 모두1,400여명. 국내로 입국한 탈북자는 모두 1,600여명이지만 이중 233명이 이미 숨지거나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났다.

특히 최근 들어 탈북자입국자 수가 급증, 지난해 312명이 입국했고, 올 상반기 현재 233명이 입국한 것으로 집계됐다.

탈북 형태도 이전에는 ‘개인형’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길수군 가족처럼 ‘가족형’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38건에서 올해 벌써 58건에 달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 대륙을 떠도는 탈북자가 3만~30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입국 탈북자의 수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한편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 동안 재중 탈북자를 크게 문제 삼지 않던 중국 당국 이탈북자에 대해 엄격하게 관리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재로 중국 공안당국은 최근 탈북 루트와 탈북자 실태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북한 역시 ‘이 사건은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는 음모적 성격을 띠고 있다’ 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결국 재중 탈북자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중국에서 견디기 힘들어진 재중 탈북자의 한국으로의 탈출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하나원의 증설을 검토하는 한편 재중 탈북자 문제의 원만한 해결과 남북관계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후속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입력시간 2001/07/04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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