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창당 80주년, 新 사회주의 실험장으로…

경제강국으로 대 도약, 끝없이 변신하는 '공룡'

중국공산당이 7월1일 창당 80주년을 맞았다. 중국공산당은 현재 5,000만명 이상의 당원을 거느린 세계최대 정치조직이다. 세계인구의 5분의 1을 공산주의 체제속 인간으로 분류할 수있는 것은 바로 중국공산당의 존재 때문이다. 공산당의 영도적 지위는 중국헌법에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것은 포장에 불과하다. 공산당은 중국의 모든면을 실질적으로 지도하는 초헌법적 존재다. 중국의 어느 구석에서도 공산당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다.

중국공산당은 그러나 단순한 정치세력의 의미를 넘어선다. 중국 근ㆍ현대사에서 공산당이 차지해 온 위상과 역할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중국공산당은 정치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역사적 존재이기도 하다.

중국인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신중국(新中國)이라 부른다. 1949년 10월1일 성립한 중화인민공화국과 그 이전의 구중국(舊中國)을 구별하기 위해서다.

구중국이 제국주의 침략으로 인한 반식민지 굴욕의 시대였다면, 신중국은 제국주의 세력을 몰아내고 중화(中華)의 자존심을 회복한 해방의 시대다. 중국인에게 해방을 가져 온 힘의 구심점은 중국공산당이었다.

중국 당국이 신중국의 성립과정과 성립 이후 역사를 공산당 당사(黨史)와 일치시키는 것은 이 때문이다.


1921년 상하이서 출범, 중국혁명대장정

중국공산당의 공식 창당일은 1921년 7월1일이지만, 실제로는 7월23일이다. 인민일보가 최근 선정한 ‘중국공산당 역사의 80대 사건’ 중 1번에 올라있는 ‘중국공산당 성립’ 부분에는 창당일이 7월23일로 명시돼 있다.

80년전 이날 상하이(上海) 조계지에서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가 열리면서 공산당이 출범했다. 1차대회 참석자는 전국의 50여명 당원을 대표한 12명이 전부였다.

이중에는 마오쩌둥(毛澤東)이 포함돼 있었다. 마지막 날 회의는 외국 경찰의 체포를 피해 저장(浙江)성의 한 호수 위 유람선에서 열릴 정도로 공산당의 출발은 빈약했다.

하지만 공산당은 인동초와 같은 생존력으로 중국의 서부 오지를 종단하는 옌안(延安)장정을 거치면서 국민당에 맞서는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재탄생했다.

중국공산당은 소련 공산당의 도움 위에서 조직체계를 갖추고 성장했지만 결코 소련에 종속되지 않았다.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도시혁명이 아니라,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한다는 새로운 혁명 이론이 안출된 것이다.

마오쩌둥이 소련 유학파 지도자들을 제거하고 정립한 농촌근거지 전략은 독창적인 중국혁명 이론의 대명사가 됐다.

마오쩌둥 집권기 신중국은 끊임없는 사회ㆍ정치적 실험의 연속이었다. 중국을 하나의 실험장으로 삼아 벌인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 등은 순수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는 마오쩌둥의 의욕과 권력투쟁이 맞물린 결과였다.

1966년부터 마오쩌둥이 사망한 1976년까지 전개된 문화대혁명은 중국을 거대한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했다.

하지만 이 소용돌이는 혼란으로 끝나지 않고 반성과 새로운 실험을 위한 길을 열었다.

문화대혁명의 반성 위에서 나타난새로운 실험은 덩샤오핑(鄧小平)의 사상해방과 개혁개방으로 나타났다. 사상해방을 통해 신격화된 마오쩌둥을 인간으로 환원시켜 그의 사상적 영향력을 축소시키고, 이 바탕 위에서 경제건설을 시작한 것이다.

1978년 덩샤오핑의 지도 아래 개막된 개혁개방은 마오쩌둥과는 전혀 다른 사회주의 건설 방법론을 바탕으로 했다. 생산력(경제)의 발전 없이는 사회주의에 이를 수 없다는 이론이다.


덩샤오핑 실용주의로 고성장 기틀 마련

덩샤오핑 이론은 ‘검은 고양이, 힌 고양이(黑猫白猫)’에 압축돼 있다. 흑묘백묘는 덩샤오핑의 고향인 쓰촨(四川)성 속담에서 유래했다. 쥐(생산력 발전)만 잘 잡는다면 검은 고양이(사회주의적 방법)든, 흰 고양이(자본주의방법)든 가릴 필요가 없다는 지극히 실용적인 이론이다.

개혁개방 드라이브에 따라 중국은 1998년에 이르는 20년간 연평균 9.3% 이상의 국내총생산(GDP) 성장을 기록했다.

이 기간 수출입 증가율은 연평균 30%에 근접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연평균 GDP 성장율은 여전히 7~8%대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2000년 경제규모는 세계 7위, 해외투자 유치규모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세계 최빈국 대열에서 빠져나와 불과 20여년만에 경제강국으로 발돋음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공산당이 주도한 화려한 경제발전은 내부적으로 공산당을 부정하는 씨앗을 키웠다. 경제성장과 함께 성장한 연안지역의 거대한 중산층과 개혁개방의 과실에 맛들인 인민들이 그 중 하나다.

이들에겐 ‘더 벌어, 더 잘사는 것’이 공산주의 이념보다 더 중요해졌다.

반면, 성장에서 소외된 인민들은 이념적 공허감에 빠져들고 있다. 공산주의 이념이 더 이상 과거처럼 정신적 위안과 기초적 생활보장을 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간 파룬궁(法輪功) 신도와 수련자가 급증하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경제발전은 중국공산당의 지도능력에도 중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복잡다단해진 거대 중국을 공산당 단일 정치조직으로 조정해 나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잇따라 터져 나온 당 고위간부와 행정간부의 대형 부패사건이 공산당의 고민을 말해준다. 1990년대 중반 이래 당 중앙이 지도체제 개혁과 다당제 도입, 공산당 당명 개명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정보가 새나오는 것은 이 같은 맥락에 있다.


21세기에 맞는 정치이념 정립에 전력

21세기 중국공산당의 과제는 과연 공산당이 중국의 지배적 정치세력으로 계속 존재할 수 있느냐에 있다. 창당 80주년을 맞은 중국공산당은 과거의 역할을 미래로 확장시키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민일보를 비롯한 관영매체들은 2~3개월 전부터 중국공산당의 과거 업적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지도부는 잇따라 지방순시와 훈시, 당원집회를 열어 공산당의 필수불가결한 공산당의 국가지도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현단계에서 중국공산당은 당의 지도적위치를 굳건히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국공산당이 장쩌민(江澤民) 당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이름으로 2년전 내놓은 ‘3개 대표’이론이 이를 말해준다.

3개 대표이론은 중국공산당이 첫째, 중국 선진 사회생산력의 발전요구를 대표하고 둘째, 중국 선진문화의 발전방향을 대표하며 셋째, 가장 광대한 중국인민의 근본이익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공산당이 앞으로도 중국의 모든 면을 대표해 지도하겠다는 주장이다.

중국공산당은 적어도 예측가능한 시기내에서는 중국의 미래를 바라보는 바로메타다. 공산당의 방향설정과 자기변신이 곧 12억7,000만명이 사는 대륙의 미래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돼 있다는 의미다. 자본주의 경제를 채택한 중국을 과연 사회주의 국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중국공산당은 내외의 많은 의문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자기변신은 21세기 사회과학을 위한 거대한 실험장일 뿐 아니라, 그 코앞에서 살고 있는 한반도에도 초미의 관심거리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7/05 17:16


배연해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