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 뉴요커

독특한 문화로 채색된 감각의 도시

뉴욕의 여름은 태양보다 뜨겁다.

‘세계의 꼭대기(Topof the World)’라 자랑하는 110층짜리 쌍둥이 빌딩 세계 무역센터(WorldTrade Center)에서 자유의 여신상까지, 문화의 다양성과 팍스 어메리커니즘이 뉴욕 도처에 산재한다.

선과 악이 버젓이 공존한다. 일탈의 풍경들까지 체제 안으로 용해시키고 마는 용광로다.

‘뉴욕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 오락을 제공합니다(New York offers non-stop entertainment)’. 존 F 케네디 공항 입구의 네온 사인이 서울-앵커리지-뉴욕이라는 13시간이 넘는 비행기 여행의 긴장을 누그러뜨린다.

도심으로 들어가는 하이웨이에 노변에는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등 두 개의 포스터가나란히 그려진 초대형 입간판이 뉴욕 입성을 환영한다.

바로 뒤로는 현재 상연중인 뮤지컬의 초대형 입간판이 멀리, 가까이 도열해 있다. ‘비명터질 만큼 재미 있어요(Screamingly Funny!)’ 국내 상연중인 뮤지컬 ‘The Producers’가 공연중인 세인트 제임스 극장 앞에 걸린 광고 문안이 감각적이다.


첨단과 원초적 인간의 냄새가 공존

뉴욕은 자기 주장과 감각의 도시이다. 일요일 오후 1시. 32번가 노상을 가로지르는 호모들의 시위 행렬은 길거리 패션쇼 마냥 화려하다. 2미터 키의 남자가 아슬아슬한 팬티 차림에 하이힐을 신고 잔뜩 멋을 부린다. 사람들도 재미있게 지켜본다. 이제 그들은 도시의 일상이다.

섹스의 물결은 거대하다. 포르노 극장뿐만 아니다. 공항에서 도시로 진입하는 고속도로변에는‘섹스와 도시(Sex And the City)’ 등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공연물의 초대형 입간판이 외지인의 눈에 확대돼 온다.

팬티만 겨우 걸친채 통기타를 들고 칸트리송을 부르던 브로드웨이의 카우보이. 이름을 묻자 “Naked cowboy”라며 짖궂게 웃는다.

여기에 도로를 느릿느릿 따라가며 인파를 정리하는 기마 경찰관, 쏟아지는 차량을 비집고 요령 있게 내달리는 자전거 인력거꾼, 갖가지 노점상 등은 첨단의 물살을 헤집고 여전히 살아 남은 ‘인간’의 냄새를 전해준다.

“아무시계나 골라 골라 5달러, 5달러!(Any Watches 5dallars, 5dollars. Chek ’em out!)” 백인 시계 노점상의 외침은 우리 시골 5일장의 난전이돼 행인의 발길을 붙든다.

뉴욕의 도로 작동 원리는 결론적으로 말해, 대단한 보행자 중심주의다. 바쁘게 사는 뉴요커들이지만 빨간 신호(Don’t Walk)에도 느긋하게 길을 건너기 일쑤다. 운전자들도 그런 횡단 습성에 익숙한 듯, 다 건널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린다. 그것도 대기선밖에서.

뉴요커의 여름철 인기 점심은 생과일 모듬이다. 망과, 바나나, 키위 등 여름과실을 푸짐하게 담아 3달러에 판다. 과일만으로 배를 채운다.

체면도, 겉치레도 중요치 않다. 브로드웨이, 오프 브로드웨이만이 뉴욕의 전부가 아니다. ‘잠시도 멈추지 않는 오락’이란 바로 길가에, 공원에 널려 있다. 그것도 거저로.

극장 밀집지인 42번가 초입에 꾸며진 뮤지컬 정보 마당은 50% 할인 티킷이 더 남았는 지 알아 보거나, 관련 소식들을 챙기려는 뮤지컬 광(狂ㆍentusiast)들로 늘 북적댄다.

생존을 위한 비주류들도 목소리도 크다. 소수 민족인 중국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돈을 번다. 인파가 많은 곳이면 명자화(名字畵) 제작자들이 있다.

‘I love you’ 등 손님이 의뢰하는 문구를 한문체로 즉석에서 그려주고 돈을 번다. 퀸즈 구역 생활 3년째라는 중국 관시(關西)성 출신의 아성(54ㆍ阿勝)씨는 32번가에서 3년째 일하고 있다.

그는 “5달러짜리 명자화지만, 액자에 넣어 10달러를 받기도 한다”며 “공치는 날이 많다”고 말했다. 현재 뉴욕의 명자화가는 50여명.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거리의 예술가들

이들은 자존심이 대단히 높다. 옆에서 ‘영업’하던 다른 중국인 젊은 화가는 사진 찍히기를 극구 거부했다. 34번가에서 책을 늘어 놓고 ‘영업’하는 흑인들 역시 사진찍히는 것을 극히 싫어 했다.

이들이 파는 책은 ‘건강, 섹스, 장수의 도(道)(The Tao ofHealth, Sex & Longevity)’ 등 흑인 특유의 믿음을 정리한 서적들이다. 종교, 섹스, 예술 관련 서적을 파는 그 역시 카메라에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국가의 관리를 끝까지 거부, 밑바닥의 자유를 택하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한 교회 앞 인도에는 바삐 오가는 행인들 앞으로 백인 거지가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앉아 있다. 이날 하루 50달러 벌었다고 자랑하던 그에게 조금다가서자 백인 특유의 체취가 악취로 진동했다.

일탈의 풍경에도 불구, 뉴욕은 분명 살아 있다. 길가 군데군데 놓인 벤치가 주는 휴식의 분위기, 거대 도시의 일상과 완전히 차단된 센트럴 파크, 도심을 벗어난 곳이면 어디서건 조깅하는 사람들의 땀에 흠씬 젖은 옷은 화려한 불빛을 통해서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뉴욕이다.

도시가 아직 잠든 아침 6시. 도심 군데군데 노점상들이 도너츠, 베이글, 샌드위치 등을 팔고 있다. NY Pushcart XXX 등으로 일련 번호가 매겨져 관리된다. 뉴욕의 아침은 거기서 시작된다.

뉴욕에는 143번가 플러싱 지역을 중심으로 현재 약 40만명의 한인 교포들이 ‘작은 한국’을 이루고 산다.

서울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곰탕해장국 순대국집 등은 물론, 이발소 남성전용지압원 룸살롱 등이 한국어 간판으로 새겨져 있다. 뉴욕의 양대 소수 민족은 중국과 이탈리아인. 유태인들은 한여름에도 검은 정장과 모자를 고집, 선택된 소수임을 과시하고 다닌다.

뉴요커들의 신조는 무엇일까? 메디슨 스퀘어 가든 호텔 입구의 거대한 포스터에는 그들의 믿음이 집약돼 있다.

‘결코 한곳에 정착하지 말아요. 크게 생각해요. 일이 좋으니, 삶도 좋아요. 행복하세요(Never Settle. Think Big. Job good, life good. Be happy).

세계 최대의 제국, 미국의 작동 원리일지도 모른다. 도로의 구인난 광고판은 ‘운명은 당신을 찾아가지 않을 것(Destiny Won’t Find You)’이라며 지금도 행인들을 다그치고 있다.

뉴욕=장병욱 주간한국부기자 ">>

입력시간 2001/07/05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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