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풍향계] 국회 문고리 잡고 기싸움

한나라당의 소집요구로 열린7월 임시국회가 파행을 빚고 있다. 민주당이 방탄국회라며 의사일정 협의에 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총무는 당초 “7월 방탄국회는 없다”며 7월 임시국회 소집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여기에는 추경 예산안 등을 처리하지 못한 여당 측이 먼저 임시국회 소집을 요구할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 이상수 총무가 “8월 중순께나 생각해 볼 수 있다”며 계속 버티자 한나라당은 7월3일 단독으로 국회소집 요구서를 냈다. 임시국회 소집을 둘러싼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버티기 싸움에서 한나라당이 진 것이다.

한나라당은 정인봉 의원이 이미 재판 출석을 약속한 마당이고 당장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할 의원들도 없어 7월 방탄국회소집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자신들이 제기했던 7, 8월 정치인사 정설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견해가 제기됨에 따라 서둘러 국회소집 요구를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언론사 세무조사 및 황장엽씨의 방미 문제 등과 관련해 대여 공세를 취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열려 있는 것이 야당에 유리하다는 판단도 뒤늦게 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는7월 임시국회 소집 문제를 놓고 이재오 총무가 너무 안이한 생각을 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임시국회 파행, 의장직권 소집으로새 국면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의도를 간파하고 7월 임시국회에 응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이 임시국회에서 민생문제보다는 언론사세무조사 국정조사 요구, 통일부장관과 국방부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재 제출 등 정치 공세에 치중할 것이 뻔한 만큼 멍석을 깔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만섭 국회의장 이국회 본회의를 의장 직권으로 열겠다고 밝히고 나서 주목되고 있다. 국회법 상 재적의원 3분의 1의 서명으로 국회 소집을 요구하면 국회는 자동으로 열려있는 상태가 된다.

하지만 여야가 의사일정에 합의하지 않으면 본회의 등을 개회할 수가 없어 사실상 식물국회가 돼 버리는 것이 상례다.

그런데 이 의장이 ‘국회운영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때는 의장이 결정한다’는 국회법 76조 규정에 근거해 본회의 직권 소집 방침을 밝힘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 의장은 “의장이 본회의를 직권으로 소집한 것은 유례가 극히 드물지만 툭하면 여야 정쟁으로 민생문제가 방치되는 잘못된 관행을 막기 위해 본회의를 직권 소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으로서는 추경안과 약사법 의료법모성보호법 등을 처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마다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여당이 한 두 번 본회의를 열어 필요한 안건만 처리하고 빠지는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어 이 의장의 본회의 직권 소집 방침이 국회공전을 끝내는 묘수가 될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 한다.

13일 예정된 자민련 원철희의원의 배임사건 대법원 판결도 정국의 한 분수령이 될 개연성이 높다. 원 의원은 농협중앙회장 시절 배임 혐의가 인정돼 유죄가 확정될 경우 의원직을 잃게 된다. 이 경우 자민련 의석은 19석으로 줄어 국회교섭단체 등록이 취소된다.

연초에 민주당으로부터 의원 4명을 빌려 간신히 교섭단체를 구성한 자민련으로서는 매우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자민련은 대법원 판결이 유리하게 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고 있다.

민주당에서 의원 1명을 또 꾸어오는 방안,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낮추기 위해국회법을 개정을 관철하는 방안, 무소속 의원들을 영입하는 방안 등을 물밑에서 은밀히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신당의 김용환 의원이나 무소속의강창희 의원이 자민련 재 입당에 냉소적이어서 자민련의 선택지가 넓지 않다.


황장엽씨 방미문제, 정국 주요이슈로 등장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씨의 방미문제도 당분간 정국의 주요 이슈로 조명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눈치 때문에 황씨 방미를 가로막고 있다며 황씨의 방미 허용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황씨의 방미를 막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인권차원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황씨 방미 시신변보장 약속 등 필요한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측은 황씨의 미 의회 증언이 미 공화당의 대북 강경파에 이용될 수 있으며 이것은 결코 남북관계나 북미 관계 진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듯 하다.

북한이 관영매체를 통해 황씨의 방미 추진을 강력히 비난하고 있는 것도 남북관계 회복을 희망하는 정부에 부담이 되고 있다.

이계성 정치부차장

입력시간 2001/07/1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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