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욕설에 정치권·언론 난투극

추미애 파문, 득실 염두에 둔 정략·편가르기

민주당 추미애 의원의 취중욕설이 정가 안팎에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소설가 이문열씨의 한 신문사 기고에 대한 곡학아세 발언이 발단인 이사건은 추 의원이 술자리에서 기자와 말다툼을 하고 신문사에 대한 욕설로 이어지면서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이미 취한 추의원, 곡학아세 논쟁으로 험한 말

5일 저녁 광화문 한정식집에서 민주당 김중권 대표와 바른정치실천모임의 의원 10명이 저녁식사를 했다. 당내 쇄신파문을 주도한 이들과 대표와의 회동이라는 점에 주목한 기자들이 한정식집 앞에 진을 쳤다.

오후 9시40분께 불콰한 모습으로 의원들이 나섰다. 기자들이 “저녁때 나눈 대화를 좀 브리핑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대부분 의원들이 “별이야기 없이 즐겁게 저녁을 먹었을 뿐”이라며 돌아갔다.

△취중발언 다음날 아침 당사에 출근하는 추미애 의원.
<왕태석/사진부 기자>

그러던 중 정동영 최고위원이 이호웅 대표비서실장과 추 의원을 붙잡고 “술 한잔 하자”며 7명의 기자들을 데리고 다시 한정식집에 들어갔다.

추 의원은 자리에 앉자 “지금 밤 10시고 아이 셋이 집에서 기다린다.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으려면 뭔가 의미가 있어야지, (기자들이) 뭔가 캐내려는 것이라면 집으로 가겠다”고 운을 뗐다.

이미 취기가 있었던 추 의원은 1998년 대구 보궐선거때 선거운동하던 이야기를 하면서 “그 때 ‘죽은 박정희가 산 김대중을 이긴다’는 게 상대진영의 구호였다.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있느냐, 선거운동이 끝나는 시간까지 우리는 아무도 듣지 않는 연설을 했다. 그래도 우리에겐 열정이 있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소설가 이문열씨의 기고에 대한 ‘곡학아세’ 발언으로 화제가 옮겨가자 추 의원은 “이문열 같은 가당찮은 놈이 X같은 조선일보에 글을 써서” 등 험한 말을 했다.

또 동아일보 기자에게 “왜 기사에 이씨 입장만 크게 반영됐느냐”며 언쟁을 벌였다. 동아일보 기자가 “인터뷰중 어떤 부분을 쓰느냐는 기자의 몫이고, 기사 제목을 어떻게 달고 어떤 크기로 싣느냐는 것은 회사에서 판단한다”고 반박하자 추 의원은 탁자를 치며 “회사가 판단해? 그러면 사주의 지시냐?”고 다그치듯 물었다.

이에 동아일보 기자가 “사주라니! 말 함부로 하지 말라”고 맞고함을 쳤고 “이 놈. 사주 같은 놈” “이 놈이라니” “한심한 기자군” “한심한 의원이군” 등 고성이 10여분간 오갔다.

이호웅 의원이 “이제 기자들이 묻고 싶은것을 물어보라”며 사태를 수습하려 했으나 기사화할 만한 브리핑 내용은 없었다. 추 의원과 동아일보 기자는 한두마디 더 고성을 지르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선일보는 6일자 1면에 ‘X같은 조선일보, 이회창 이 놈이’라는 제목을 붙여 이를 보도했다. 해설기사에서 ‘X(남성의 성기)같은’이라고 쓰인 대목을 보고 한 당직자는 “이렇게 친절한 해설기사는 처음 봤다”고 말했다.

6일 이 보도를 접한 한나라당이“이성을 잃은 추태극”이라고 비난하며 사건은 여야 공방으로 비화했다.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이 “광기 어린 민주당의 폭언이 계속된다면 집권 여당이길 포기한 불한당 집단으로 간주하겠다”고 비난했다.

이를 받아 민주당 전용학 대변인은 “사적인 자리에서 나눈 대화를 특정언론이 기사화하고, 이것을 다시 한나라당이 받아 벌떼처럼 나서서 공세를 하는 것은 참으로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추 의원은 6일 보도자료를 내 “사석에서의 발언이기는 하나 특정 언론사를 거론하고 거친 발언을 하게 된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한 뒤 “그러나 전체 상황이 생략된 채 여과 없이 보도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추 의원은 7일 바른정치실천모임의 5박6일간 중국 답사여행차 출국했다.


언론보도의 원칙과 정도는 무엇인가?

취중 발언이 보도돼 큰 파문을 일으킨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진형구 전 대검공안부장은 대낮에 기자들과 폭탄주를 마시고 “조폐공사 노조가파업을 하도록 유도했다“고 말하는 바람에 공직을 떠났음은 물론 재판정에까지 서야 했다.

그러나 추 의원의 발언이 ‘노조파업유도발언’만큼 사회적 의미를 갖고 있으며, 때문에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꼭 보도해야 하는것이 었을까? 이에는 두가지 견해가 있다. 요즘의 사회분위기가 그렇듯 정반대되는 견해다.

먼저 해프닝이라는 견해다. 이번 자리의 성격이 브리핑을 위한 공식적 자리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을 내세운다. 의원들은 이미 폭탄주를 5~7잔씩 마신 상태였고 추 의원은 처음부터 “의미있는 시간을 갖자”며 사적인 자리를 전제했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추의원의 발언은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싼 정권차원의 견해를 대변한다기보다 개인의 속내를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지난 대선때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기자들과 술자리에서 ‘창자를 뽑아버리겠다’고 발언한 것은 왜 보도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또 다른 견해는 추 의원이 공인임을 내세우며 그의 험한 발언은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문제의 발단이 정권과 언론간, 여당과 야당간, 언론과 언론간, 언론과 시민단체간등 사회전체에 총체적인 논란의 소용돌이를 몰고온 언론사 세무조사라는 큰 틀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단순한 취중발언으로 치부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공인이 할 말, 못할 말 다해놓고는 술에 취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취중운전자도 술에 취해 모른다고 하면 그만인가하는 극단적인 얘기도 나오는 현실이다. 공인은 할 말과 해서는 안될 말을 가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고위 공직자나 당직자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는 주장이다.

사석에서의 발언이 어떤 경우에 보도되고 어떤 경우 보도되지 않는가. 보다 더 큰 문제는 여기에 있다.

‘언론사 세무조사정국’에 들어서 여야간 정쟁은 국가 전체를 편가르기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언론 역시 ‘우리에게 유리한가, 아닌가’를 보도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민주당 기자실에선 기자와 당직자 사이에 논쟁만 붙으면 “이거 기사 써?”하는 농담이 오간다.

이번 발단은 2일자 조선일보에 이문열씨가 기고한 ‘신문 없는 정부 원하나’라는 칼럼이었다.

추 의원이 3일 “지식인이 곡학아세 한다”고 비판했고 4일 “이씨등 일부 기고자가 한나라당 국가혁신위에 이름이 올라있다”고 지적했다. 이씨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논쟁이 불붙었고, 동아일보는 발끈한 기고자들의 의견을 일일이 실어 추 의원을 우회 공격했다.

이씨가 한나라당 국가혁신위멤버냐 아니냐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우리 사회의 지식인이 어떤 논리를 무슨 의도로 전개하는가를 되새겨 보려는 시도도 부질없다. 다양한 의견의 하나로 보면 될 뿐이다.

“우리편이냐, 아니냐”는 것만 남아 있는 듯한 분위기에 국민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치권이나 언론이 되새겨야 할 것 같다.

김희원 정치부 기자

입력시간 2001/07/11 19:44


김희원 정치부 h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