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은 여천 NCC 파업불씨

한화·대림, '화해와 대립'의 어색한 동거

전남 여수산업단지내 여천NCC㈜ 파업을 둘러싼 대림산업 이준용 회장과 한화 김승연 회장, 두 재벌 오너간의 마찰이 재계에 파문으로, 시중에는 화제로 회자되고 있다. 이 회장이 김회장을 상대로 하는 ‘튀는’ 광고를 일부 일간지 1면에 냈기 때문이다.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왼쪽)과 이준용 대림산업회장. 경기고 동문인 두사람은 이회장의 14년 선배다.

두 회사의 갈등은 지난달 17일 새벽 파업중인 노조원들을 강제해산 시키기 위한 경찰 병력이 투입되기 직전, 이 회사 지분 50%를 갖고 있는 대림측이 노조와의 막판 대화를 통해 공장 정상화 합의문을 작성, 경찰 투입을 유보시키면서 비롯됐다.

이에 대해 같은 50% 지분을 소유한 한화측이 ‘동의 없이 대림 독단적으로 이뤄진 모든 행위는 양사간빅딜 합의 내용을 어긴 것으로 효력이 없다’고 반발하고 나서면서 문제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한화측은‘노조 파업은 법적으로 원칙 대응해야 한다’며 당시 공권력 투입이 유보된 것에 강한 불만을 내비치며 노조와의 교섭에 적극 나서지않고 있다. 이런 양사간의 갈등으로 노조와의 협상도 타결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책임 공방만 계속되고 있다.


”한번 만나주십시오”

이 와중에 이준용 회장이 이례적으로 김승연 회장에게 “오해를 풀고 한번 만나 달라”는 광고를 내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이 회장은 3일자 주요 일간지에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께 드리는 공개호소문’이라는 광고를 내고 “50대 50 합작 정신을 어기고 여천 NCC(YNCC) 파업에 대한 공권력 투입을 일방적으로 유보시킨 점을 사과한다”며 “이로 인해 YNCC가 입은 피해가 있다면 모든 책임을 감수하겠다”고 밝히고 한번만나자고 호소했다.

이 회장은 “노조가 파업을 유보한 것은 파업노조 형제들의 마음이 통해서 이뤄진 것인 만큼, 노조측의 말대로 ‘파업유보’이던‘파업 일시중지’이건 간에 노조의 공장가동 정상화 노력을 높이 사야 한다”고 주장하며 “노조 스스로 아무 소리없이 공장을 정상화 한다는 데 딴죽을 걸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한발 더 나아가 “경찰투입 유보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대림과 노조간에 어떠한 이면합의나 국법(무노동 무임금)을 어긴 무리한 합의는 절대 없었다”며 “이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당사자들은 그들 자신의 앞가림이나 제대로 하면 되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이 광고는 양사와 YNCC 노조측은 물론 재계에까지 파문을 일으켰다. 우선 재벌 회장이 경찰 투입 문제를 놓고 개인 명의로 그 같은 내용의 광고를 낸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일 뿐아니라 광고 문안서 한화 김 회장을 가리켜 ‘우리 여천 NCC 회장님’이라고 극존칭을 써가며 ‘한번 만나달라’는 읍소성 문구를 썼다는 데에 의아한 생각을 품고 있다.

대림 이 회장과 한화 김 회장은 모두 경기고 동문으로 이 회장(52회)이 김 회장(66회)보다 14년 선배다.

이 회장의 돌출 행동은 오히려 양사간의 감정 대립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현재 재계에서는 이 회장의 광고가 파업 해결을 위한 해프닝성 액션이라는 분석과 YNCC의 향후 경영 주도권을 선점 하려는 사전 포석이라는 두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화 “이해할 수 없다”

한화측은 대림 이회장의 광고를 통한 의사표시에 대해 한마디로 이해할 수가 없다는 반응이다.

YNCC 한화측 관계자는 광고가 나간 당일 “회사 내부 문제를 바깥으로 표출 시키는 것도 부담스러운 마당에 누워서 침 뱉기 식으로 전국에 광고를 내다니 말이 되느냐”며“YNCC는 독립법인이기 때문에 전문 경영인들이 협의해 해결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이번 사태에서 공권력 투입을 일관되게 주장하며 노조와의 갈등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던 YNCC 한화측 공동대표인 이상철 부사장(공장장)은 “공권력 투입 예정 전날까지도 대림측이 공권력 투입이 불가피하다는데 동의 했으면서도 지금에 와서 마치 대림은 공권력 투입을 반대하고 한화만이 공권력 투입을 적극 주장한 것처럼 사실이 왜곡됐다”며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 부사장은 “공권력 투입 예정일인 6월17일 새벽에 당초 두 회사의 합의와는 달리 갑자기 대림측 공동대표인 김당배 사장이 노조측과의 대화를 시도하더니 한마디 상의도 없이 노조와 공장 정상화에 합의한 뒤 일방적으로 공권력 철회를 요청했다”며 “경찰도 대림측의 의견만 듣고 공권력투입 유보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 여천 NCC 공장 전경. 전체 직원 1,000여명에 조합원 720명의 국내 최대 석유화학 기초원료 생산회사다.

이 부사장은 이어 “이때부터 노조와의 모든 대화 채널이 대림측으로 사실상 일원화해 파업유보 시기를 7월9일까지로 정해 대림과 협상을 진행 중”이라며 “만일 노조와의 협상이 결렬됐을 경우 대림측은 한화측에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또 “지난달 23일 양그룹 관계자들로 구성된 YNCC 이사회에서 성과급 지급 부분 및 직급간 임금격차 해소 등 주요 쟁점 사항들에 대한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대림이 노조와 웬만한 쟁점 부분들은 쉽게 풀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그런데 지난달 29일 이후 대림측 협상 대표가 공장에 내려오지 않더니 이후 노사간 협상이 전격 중단됐고, 며칠 뒤에 대림 이 회장이 한화 김 회장과의 면담을 제기하는 광고가 나오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며 반문했다.

특히 그는 “대림측이 이제와서 노조와의 협상을 한화측에 떠넘기려 하고 있지만 대림이 처음부터 저질러 놓은 일을 우리가 어떻게 뒷처리를 할 수 있느냐”고 말해 이번 일을 둘러싼 두 회사의 앙금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부사장은“이번 일을 계기로 두 회사가 갈라서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서는 “회사 내부의 여러 사정 등을 감안할 때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화의 그릇된 노사관이 분쟁야기”

이번 사태의 당사자인 노조측은 ‘파업유보에 대한 조합입장’이란 보도자료를 통해 “파업의 본질은 한화의 그릇된 노사관에서 비롯됐다. 조합을 회사 경영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타도의 대상으로 보는 편협된 인식은 이후에도 또 다른 노사분쟁을 야기할 것”이라고 재파업 의사를 강력히 밝혔다.

천중근 노조위원장은“오죽했으면 대림 이 회장이 그런 읍소형 광고를 냈겠느냐”며 ”대림이 노조와의 협상에 성실히 임하고 있지만 한화측이 노조 지도부에 대한 민ㆍ형사상책임 및 무노동 무임금 원칙 철저적용, 무조건 징계회부 등 까다로운 협상조건을 달아 대림측이 스스로 단체교섭권을 포기하도록 만들어 협상이 중단된 것”이라며 책임을 한화측으로 돌렸다.

그는 또 “한화측은 결코 원만한 노사협상을 바라지 않고 있으며 당초부터 짜여진 시나리오에 따라 결국 협상결렬상태로 끌고 간 뒤 공권력을 투입시켜 노조 와해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장하며 “지금 상황이 파업 일시 유보인 만큼 다시 파업에 돌입할 경우에는 예전처럼 그냥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 위원장은 특히“언론이 사사(使使)갈등이란 표현으로 대림과 한화그룹간의 갈등만을 보도하고 있지만 사실은 빅딜 이후부터 불거진 YNCC내부 관리자간(대림과 한화출신)의 갈등이 회사 정상화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회사의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어느 한쪽 그룹이 나서서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닌 만큼, 양그룹 총수가 빅딜을 성사시켰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얼굴을 맞대고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경총의 경우‘법과 원칙에 따른 강경론’을 펴고 있는 한화측 입장을 지지하는 반면, 노동계측은 ‘대화와 타협’을 존중하는 대림산업측에 지지를 표시하고 있다.


한화측 경영진 교체, 사사갈등 진정 국면

여천NCC㈜는 1999년말 석유화학공장 자율 빅딜에 따라 대림산업㈜ 나프타분해공장과 한화석유화학 여천공장이 합병ㆍ설립한 회사로 에틸렌 프로필렌 벤젠 톨루엔 크실렌 등 연간 4,000억원에 달하는 석유화학 기초원료를 생산하는 국내 최대 회사다.

현재 조합원 720명을 포함, 전체직원이 1,000여명에 이르고 있다.

이 회사 노조는 지난해 단체협상에서 최대 290% 성과급 지급 명문화와 양사 합병으로 인한 임금 및 직급격차 해소 등을 요구하며 5월16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사측이 공권력 투입을 처음부터 요청해 오다 6월17일 경찰 4,000여명이 노조원들을 강제해산 시키기 위해 공장에 전격진입하기 직전, 대림측의 막바지 중재로 경찰 투입이 유보됐었다.

노조측은 7월9일까지 시한부 파업 유보를 발표, 공장가동을 정상화하는 한편 사측과 협상을 재개했다.

한편 대림과 한화양측은 7월5일 전남 여수공장에서 임시이사회를 개최하는 등 대화를 나서고 있다.

이날 이사회에는 대림 이 회장이 사외이사 자격으로 참가한 것을 비롯, 한화그룹의 박원배 박종석 부회장 대림측 공동대표인 김 사장, 한화측 공동대표인 이 부사장 등 8명이 참석했다. 이 회장과 한화그룹 김 회장이 조만간 ‘한번 만나게 될지’는 현재로서는 예단하기 힘들다.

그러나 양측의 움직임을 볼 때 사사(使使) 갈등은 이번 주를 고비로 가닥이 잡힐 것으로 예상된다.

양준호 사회부기자

입력시간 2001/07/11 20:22


양준호 사회부 jhya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