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싸움꾼의 창을 꺾은 소년 돌부처

이창호의 '미완성의 승리- V100'④

결승문턱에 역시 서봉수가 턱하니 마주 않아 있다. 그 동안 서봉수는 수차례 이창호에게 패한 상태였다. 결국 공식대국 6연패를 기록하게 되는데 이 즈음 서봉수는 조훈현보다 이창호에게 더욱 약한 상대가 되어 있었다.

이유인 즉, 이창호가 득세를 하고 나서 결과적이지만 서봉수는 몰락하고 만다. 2인자로서의 서봉수를 말함이다.

서봉수는 "조훈현이 내 스승이다"라고 스스럼없이 밝혔듯이조훈현에게 깨지고 멍들면서 그와의 추격전을 포기하지 않은 끝에 결국 그를 따라붙었다. 그러나 이창호라는 '물건'은 생소하다.

서봉수라는 사람 자체가 일찍부터 훈련받은 연구생과는 거리가 있었다. 진흙탕속의 야전사령관이다. 따라서 그는 조훈현이나 이창호 같은 엘리트에게는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아마도 이창호가 그렇게 빨리 자신에게 다가올 것이라는 짐작을 못했기 때문에연습기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6연패씩이나 할 수 있나? 그것이 미스터리다.

조훈현과는 상이한 체질. 서봉수도 따지고 보면 조훈현 못지 않은 싸움꾼이다. 그러나 이창호라는 소년은 희한하게 뭉툭한 곳을 골라두고 '과연 그렇게 해서 이길 수 있나' 싶었는데 뒤로 가면 갈수록 단단해 지더니 결국 낚아가는 것이 아닌가.

서봉수는 이때 이미 이창호의 무서움에 대해 간파하고 그도 결국은 이 소년을 상대하기가 벅차온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이창호가 드디어 도전자로 올라섰다. 최종 도전자 결정전까지 진출한 서봉수를 또다시 한방에 보내버렸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서 뭐라고 이름 붙여줘야 할 지 모르는 그 묵직한 펀치. 맞은 듯싶지만 때린 자는 보이지 않는 그괴이함.

서봉수는 "한번 더 밀었어야 했는데…"하면서 씁쓸한 억양으로독백을 하고서는 그 자리를 총총히 일어난다. "자랄 때는 새싹일수록 꽉꽉 밟아 줘야 튼튼하게 자라난다"고 하던 그 기백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창호는 13세 중학생으로는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로 심지가 굳건하고 수양이되어 있었다. 또한 한창 탐구심이 강한 연령이어서 실전과 기보 연구를 매일 밤 늦도록 해오고 있다...뭐 이런 정도만 세간에 알려진 그 소년.

이창호가 드디어 업(業)을 만들어 낸 것이다. 드디어 그가 스승을 만나러간다. 조훈현을 만나러 간다. 스승과의 첫 공식대국이다. 스승과의 공식대국이면 그것은 곧장 도전기라는 얘기다. 지금의 이세돌이 등장한 것과 비교할수 없을 정도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창호의 등장.

그러나 부산서 벌어진 최고위전 첫 대국에서 고작 83수만에 돌을 거두고만다. 사람들은 돌을 던지지 않아도 될 상황인데 성급하게 돌을 거두었다고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창호는 기력과 상관없이 대국에 임하는 자세에서 흐트러졌다. 불리하다는 생각에 그만 돌을 거두고 만 것이다. 종반 이후의 뒷심을 발휘하는 요즘의 이창호라면 더 두어볼 수도 있는 상황이겠거니 하겠지만 당시의 마음 가짐이 그렇게 여유가 있을 상황이 못되었다.

그러나 스승을 이겨보겠다는 욕심은 있었다. 프로기사라면 누구나 바둑돌을 쥐었을 때는 이겨보겠다는 마음 뿐이다. 어떤 대국도 이기겠다는 마음 없이 임한 적은 없었다.

과연 이 소년을 소년이라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사회상의 나이와 바둑계의 나이를 혼돈해서 쓰는 경우는 흔하다. 도전3국까지 이르렀다. 물론 그때까지 승부는 2:0이었다.

[뉴스화제]


7월은 방학이 있는 달이어서 유독 학생대회가 빈번한 달이다. 국내 유일의 대학생대회와 전국 아마추어 페어바둑대회가 벌어진다. 바둑계로서는 의미 있는 대회여서 대회참가를 알린다.


●제20회 대학패왕전

일시-7월12일(예선) 13일(본선) 오전10시

장소-한국기원 대회장

접수기간-7월10일까지(02-2299-2170 한국기원 기전사업팀)


●제2회 파그랜드배 페어바둑대회

일시 7월7일~9일 오전10시

장소-한국기원 대회장

접수기간-7월5일까지(02-2299-2170 한국기원 기전사업팀)

참가자격-3급 이상의 남 여 아마추어 각1쌍 (각기 신청해도 짝을 맞춰 줌)

기타-최강조 우승팀은 11월 일본에서 벌어지는 제23회 페어바둑 선수권한국대표로선발함


입력시간 2001/07/12 13:26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