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캉스 특집] 호전한 여름나기- 휴가지 7선

휴가가 다가오면 오히려 머리가 아프다. 금쪽 같은 시간을 투자하고 주머니까지 털어야 하는 휴가여행.

그러나 여행지를 상상하면 끔찍하다. 발에 치이는 사람들, 바가지 요금, 교통체증…. 자연에 젖어 자연의 왕성한 기운을 받아들이는 진정한 휴식 여행을 하고 싶다. 사람을 피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

계곡깊숙이 들거나, 바다 먼 곳으로 나가면 된다. 크게 붐비지 않는 휴식 여행지 7 곳을 추천한다.


◈ 어성전리ㆍ법수치리(강원 양양군 현북면)

양양 남대천은 오대산 연봉의 끝자락 응복산(1359㎙)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흘러 양양읍에서 바다와 만난다. 봄에는 은어, 가을에는 연어가 물과 함께 흐르는 ‘위대한 모천’이다.

어성전은 남대천의 상류로 맑은 물과 계곡미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마을이다.

△ 소매물도의 등대섬. 기암사이로 파도가 장관이다

배낭을 맨 트레킹은 물론 며칠 민박하며 물 소리를 듣는 휴가여행에도 제격이다. 예전에는 오지 중 오지였지만 이제는 포장도로가 나고 버스까지 다닌다.

어성전 여행은 강변 드라이브부터 시작된다. 양양 옛다리에서 우회전해 약22㎞를 강을 오른다. 수리, 도리, 장리 등 예쁜 이름만큼 아담한 마을이 이어지다가 어성전리가 나온다.

마을 이름은 ‘물고기가 밭과 성을 이룬다’는 뜻. 얼마나 민박을 치는 집이 여러 곳 있고 어성전교 옆의 주안식당(033-672-1513)에는 10여 명이 잘 수 있는 큰 방도 있다.

특히 밤의 정취가 압권이다. 계곡 물소리에 잠을 설치다가 툇마루에 걸터 앉으면, 명료한 별들에 눈이 부실 정도다. 짙은 소나무와 풀냄새가 가슴을 씻어준다.

어성전마을에서 약 10㎞를 더 오르면 법수치리가 있다. 남대천 상류의 깊은 속살을 간직한 곳이다. 30여 가구가 사는 마을로 달랑 3명의 학생이 다니는 현성초등학교 법수치 분교가 있다.

외나무다리로 이웃과 건너 다니고 저녁이면 굴뚝에서 밥짓는 연기가 피어 오르는 정겨운 시골마을이다. 쇠나드리, 개잔이물내치기, 굴아우, 애기골 등 동네 곳곳을 일컫는 재미있는 지명에서 촌냄새가 물씬 풍긴다.


◈ 방대천 (강원 인제군 기린면 일대)

옛날 인제 땅에는 목이 긴 사슴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높은 산이 두르고 있어 사람의 발길이 뜸했던 때문이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사슴을 닮은 기린(麒麟)이다.

그 중에서도 백두대간의 허리춤을 슬슬 파고 들어가 자리잡은 방동ㆍ진동땅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원시림이 숨쉬는 곳이다.

▷ 양양 남대천의 상류인 어성전계곡. 은어와 연어의 모천이기도 하다.

정감록에 난리를 피할수 있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꼽힌 기린곡의 3둔(屯)5가리(원둔, 살둔, 달둔, 젖가리, 연가리, 명지가리, 아침가리, 명가(개)리)가이 곳에 있다. 무능하거나 포악한 군주를 등진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 살았다. 임진왜란도 6ㆍ25도 모르며 지냈다.

방대천은 그 계곡의 물이 한 데 모여 흐르는 맑은 물줄기이다. 오지여행가들이 애지중지했던 이 곳은 최근 트레킹의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강가에 야영하면서 강수욕을 즐길 수도 있고 민박집을 잡았다면 그 곳을 베이스 캠프로 삼아 주변 트레킹을 해도 좋다. 자연 사랑을 가르치는 아름다운 자연이 그 곳에 있다.

가장인기있는 트레킹 코스는 아침가리골과 곰배령. 특히 아침가리골 트레킹은 원시의 자연 속에서 스스로 길을 만들며 나아가는 스릴 넘치는 모험이다. 출발지는 버스정류장이 있는 갈터.

진동산채가(033-463-8484)라는 식당 앞의 개울을 건너면 계곡에 들 수 있따. 숲은 발 하나도 집어넣지 못 할정도로 빽빽하다. 오직 높은 곳에서 흘러내리는 물만이 숲 사이로 길을 냈다. 사람은 별 수 없이 물길 양 쪽의 돌무더기를 따라 오른다. 돌이 절벽으로 솟구쳐 앞을 막으면 물을 건너가고, 빽빽한 숲에 막히면 다시 건너 온다.

목적지인 방동초등학교 조경동분교장(폐교)까지 직선거리는 약3㎞. 그러나 구절양장으로 굽어있어 실제 거리는 7㎞가 넘는다.

길을 잃어 헤매는 거리까지 합치면 10여㎞, 오르는 데만 4시간이 족히 걸린다. 굽이를 돌 때마다 주저앉는다. 다리를 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풍광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곰배령은 방대천 최상류 설피마을 쪽으로 들어간다. 정상까지 약 4㎞. 오르는 데 1시간 40분, 내려오는 데 1시간20분 걸린다. 가파른 경사나 바위지대가 없는 거의 평지에 가까운 길이다. 정상은 넓은 초원인데 모두 꽃풀이다. ‘천상의 화원’이 따로 없다.


◈ 덕풍계곡(강원 삼척시 가곡면)

2년전만 해도 오지 중의 오지였다. 삼척과 경북 울진의 경계를 이루는 응봉산(999m)의 깊은 골짜기에 들어 있다.

이 곳도 '10승지지'로 지목된 곳이다. 난리가 나더라도 이 곳을 찾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 덕풍계곡 제1용소. 깊이가 약 40m로 물빛이 푸르다 못해 검다.

또한 마을 이름 풍곡은 풍요로운 계곡이라는 뜻.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의미다. 수년에 걸친 가뭄으로 모든 것이 말라버렸을 때에도, 이 곳을 찾으면 곡식의 씨앗과 물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덕풍마을은 이제더 이상 오지가 아니다. 전체 주민이 30여 명 정도로 아주 작은 산촌이지만 초가 일색이었던 마을은 이제 현대식 통나무집까지 들어설 정도로 변했다. 불과 1~2 년 사이의 일이다. 마을로 들어서는 계곡 입구부터 마을까지의 계곡길이 조만간 포장된다고 한다.

덕풍마을까지 이르는 덕풍계곡은 트레킹 코스이다. 찻길이 날 정도이니 가파른 코스는 없다. 마을까지 약 6㎞. 쉬엄쉬엄 걸어도 1시간 30분이면 마을에 닿는다.

길은 계곡을 따라 나 있다. 계곡 초입부터 모습이 범상치 않다. 물은 티끌하나 섞이지 않은 청정수이다. 어마어마한 너럭바위를 파고 흐르며 짙은 비취색을 띠고 있다. 가파른 곳에서는 폭포로 떨어지고 느긋한 흐름에서는 깊은 소를 만들어 놓았다.

설악산의 백담계곡과 많이 닮았다. 아치형 철다리가 세 곳에 나 있다. 침목처럼 두꺼운 나무로 상판을 이었는데 이 위로 자동차도 다닌다.

마을은 산 속 분지에 자리를 잡았다. 주민들은 대부분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 옛집은 버려 두었다. 덕풍산장이라는 식당이 있다. 마을의 이장이 운영한다.

닭백숙 등 안주가 될만한 음식은 물론 간단한 밥도 판다. 직접 만든 순두부에 양념장을 풀고 강원도 감자밥을 말아 먹는 맛이 일품이다. 봄이면 봄나물, 여름이면 각종 푸성귀와 된장이 상에 오른다.

덕풍마을 뒤에 버티고 있는 응봉산 산행은 덕풍계곡 여행의 하이라이트이다. 그러나 무척 위험하기 때문에 초심자는 도전할 수 없다. 마을에서 약 2㎞ 떨어진곳에 제1용소가 있는데 일반인은 그 곳까지만 갈 수 있다.


◈ 원산도(충남 보령시 오천면)

안면도의 남쪽 끄트머리에 부속섬처럼 달려있는 섬이다. 충남에서 안면도 다음으로 크다. 안면도가 원래 섬이 아니라 반도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실질적으로 충남에서가장 큰 섬이라고 이야기해도 무방하다.

섬은 동서로 길게 뻗어있고 서편에 봉화대터가 있는 오로봉(117㎙)이 자리하고 있다.

▷ 원산도 해수욕장의 모래밭에서 젊은이들이 공을 차고 있다.

특히 원산도 해수욕장은 고운 모래과 완만한 경사, 깨끗한 물과 적당한 수온으로 한번 찾은 이들이 두고두고 되찾는 곳이다. 4㎞는 됨직한 백사장이 가운데 밤섬을 사이에 두고 갈라져 있다.

물이 빠져 드러난 모래밭은 시멘트처럼 단단하다. 입자가 곱기 때문이다. 지프가 달려도 바퀴가 빠지지 않는다.

해수욕장주위로 고만고만한 백사장이 늘어서 있으며, 섬 전체를 하얀 띠처럼 두르고 있는 모래밭의 길이가 70리라고 한다. 호젓한 피서를 즐기려면 해수욕장을 벗어나 작은 백사장을 찾으면 된다.

홀로 바다를 독차지 하는 기분에 젖는다. 백사장 사이마다 바위가 솟아 있는데 모든 바위가 낚시 포인트이다. 우럭, 살감성돔을 낚을 수 있고 바위 틈을 기어 다니는 칠게를 잡는 재미도 그만이다.

원산도는 이제 개발이 한창이다. 숙박시설로 콘도미니엄, 가족호텔, 유스호스텔, 임대별장, 여관 등이 들어서고 해수풀장, 수상스키, 윈드서핑 등 섬전체를 해양 스포츠 단지로 조성한다.

다목적 운동장과 테니스장, 사이클링 코스, 심신 단련장도 계획중이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뚤려 이 지역 최대 약점인 교통난이 해결되면 인산인해의 관광지가 될 전망이다. 한산한 원산도를 볼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대천항에서 30분쯤 바닷길을 달리면 저두라는 조그만 항구에 닿는다. 돼지머리의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이 포구가 원산도로 진입하는 관문이다. 부두에서 해수욕장까지 마을버스가 운행된다. 대천항에서 1일 3회 여객선이 운행되며 휴가철에는 수시로 증편된다. 문의 오천면사무소(041)934-6444.


◈ 외나로도(전남 고흥군 봉래면)

올봄 우주센터 건립부지로 확정된 후 갑작스레 유명세를 타고 있는 섬. 연육교와 연도교로 연결돼 있어 배를 타지 않고 건너갈 수 있다.

일제시대 때 삼치가 많이 잡혔던 곳으로 한 때 고흥군 세수의 3분의 1을 감당했다고 한다. 여전히 부자들이 많다.

외나로도는 1981년 다도해 국립해상공원이 됐다. 그러나 국립공원 중 가장 한산하다. 아름다움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1995년에야 다리로 육지와 연결됐다.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서울서 무척 멀다는 것도 큰 이유이다. 덕분에 깨끗하다. 청정한 바닷물과 맑은 바람, 무공해 원시림 등 손상된 것이거의 없다.

외나로도여행 코스는 크게 세 가지. 길을 따라 해안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육로 여행, 배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빙 돌아 기암절경을 감상하는 유람선 여행, 섬의 최고봉인 마치산(일명 봉래산, 해발 380㎙)을 오르는 등반 여행 등이다. 울릉도 여행법을 많이 닮았다. 부지런을 떤다면 세 가지 모두를시도할 수 있다.

나로도 해수욕장이 특히 아름답다. 해수욕장 한 쪽에는 천연기념물 제362호로 지정된 상록수림이 있다. 봉긋 솟아오른 젖무덤 같다.

후박나무, 동백나무 등 70여종의 상록수가 뒤엉켜 자란다. 숲에 들어서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그 옆으로 300 수의 아름드리 해송이 모래 해변과 함께 뻗어있다. 바닷속 경사가 완만하다. 밀물이 들었을 경우 수백 ㎙를 나가도 수심의 변화가 없다. 그래서 익사 사고가 거의 없다.

하반마을은 우주센터의 한 가운데에 들어가는 부락. 곧 없어질 운명이다. 대항도(일명 목도)라는 작은 섬이 마을 앞에서 파도를 막아준다. 마을 앞으로뻗은 방파제, 조그마한 해변 등이 조화를 이룬 예쁜 해안 마을이다.

일출의 명소로 알려지기 시작해 해마다 1월 1일이면 차량이 줄을 이었다. 반대로 염포는 낙조의 명소. 고흥반도의 수많은 섬 사이로 떨어지는 해를 볼 수 있다. 국립공원답게 야영장, 화장실, 샤워장 등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 마라도(제주 남제주군 대정읍)

여름 피서기간에 가장 한산한 곳을 꼽으라면? 믿기 힘들겠지만 제주도이다.

항공과 선박 등 운송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제주에서도 마라도는 더욱 그렇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배가 뜨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라도의 장기 여행은 ‘며칠 더 갇혀있을 수도 있다’는 각오와 동행해야 한다.

마라도는 둘레 4.2㎞, 면적 9만여 평의 섬. 현재 31 가구 7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원래 사람의 접근이 금지된 금도(禁島)였다. 가장 큰 이유는 파도. 이 곳의 바다는 제주에서도 물길이 가장 험한 곳이다.

1883년부터 사람이 살았다. 대정골의 김성오라는 사람이 노름으로 알거지가 되자 친척들이 고을 원님에게 마라도 개경(開耕)을 건의했고 모슬포의 라씨, 김씨, 이씨 등이 함께 나섰다.

△ 마라도 선착장.

마라도 여행은 머무는 여행, 쉬는 여행이다. 섬 전체를 도는데 1시간이면 충분하고 그 다음에는 달리 구경할 것이 없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것이 여행법의 전부이다. 낚시를 좋아한다면 금상첨화이다.

마라도의 으뜸 명물은 짜장면. 표기법상으로는 자장면이 옳지만 '마라도 짜장면'으로 특허를 받았다. 소라 조개 오징어 등 15가지 이상의 해산물과 감자 양파당근 콩 등 30여 가지의 야채가 들어간다. 장을 만드는 육수는 생선뼈와 해초를 우려서 낸다. 한마디로 맛있다.

마라도행 뱃길은 모두 두 가지. 모슬포항에서 도항선인 삼영호(064-794-3500ㆍ매일 오전 10시, 오후 2시 출발)를 타거나 송악산 선착장에서 유람선인유양호(794-6661ㆍ오전 9시 30분부터 매일 7차례 왕복)를 이용한다


◈ 소매물도(경남 통영시 남부면)

통영에서 약 1시간 가량 거친 파도를 가르면 삼형제 같은 세 개의 섬과 만난다. 매물도, 소매물도와 부속섬인 등대섬이다.

예전에는 낚시꾼이나 다이버들만이 찾았지만 이제는 제법 일반 여행객의 발길도 잦다. 기암이 늘어선 해안과 맑은 물이 자랑이다.

특히 등대섬에서 바라보는 소매물도의 모습이 압권이다. 깎아지른 절벽과 요란하게 소용돌이치는 파도, 뗏목만한 바위에 낚시꾼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파도에 흔들리고 있다.

동쪽 바위해안이 그 중 아름답다. 수달이 산다는 고래등, 남대바위 등등. 소매물도의 아름다움은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을 정도. 그 사신은 섬의 비경에 취해 바위에 글씨를 남기고 갔다. 등대섬 남쪽 바위를 ‘글씽이섬’이라고 하는데 바로 그때문이다.

소매물도는 15년전 개인 소유가 됐다. 원주민들은 모두 떠나고 가장들만이 고기잡이를 위해 남았다. 민가에서 민박을 치는데 바쁜 어민들이라 방을 빌리는 것 외에는 별로 도움을 받을 것이 없다. 풍요롭게 여행을 즐기려면 반드시 준비물을 상의하는 게 좋다.

낚시를 권할 만 하다. 이 곳은 거의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어자원이 풍부하다. 민낚싯대에 대충 아무 미끼나 끼워 던져도 반나절 낚시에 소주안주 횟감과 저녁 매운탕거리를 충분히 잡을 수 있다.

배는 통영항에서 여객선이 하루 두차례, 통영유람선터미널에서 유람선이 하루 3~4차례 운행한다.

권오현 문화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1/07/12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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