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패자의 입장에서 재조명한 역사적 사건

■ 모반의 역사

(한국역사연구회 공저 / 세종서적 펴냄)

얼마전 인기 TV 역사 드라마인‘왕건(王建)’의 내용 전개를 두고 네티즌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있었다. 태봉국의 왕이었던 궁예의 최후 장면이 역사서의 기술과 달리 미화 됐다는 것이다.

고려 인종 23년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와 조선 문종 원년 김종서가 저술한 ‘고려사’에 보면 ‘궁예는 보리 이삭을 주워 먹다 백성들에게 맞아 죽었다’고 비참하게 기술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비난에 대해 드라마 작가나 일부 사학자들은 궁예가 살았던 철원 지역에 내려오는 이야기나 현존하는 지명을 보면 그가 그렇게 처량하게 죽지 않았음을 뒷받침 하는 증표들이 많이 드러나 있다고 반박한다.

이들은 삼국사기 등의 실록들이 추후 집권에 성공한 왕건 쪽 입장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궁예의 기록이 상당 부분 왜곡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역사의 기록은 언제나 승자들이 남긴다. 권력 투쟁에서 이긴 자는 항상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기 위주의 역사 기록을 남긴다. 그로 인해 권력 싸움에서 패한 자는 예외없이 반역자나 모반자로 몰린다. 승자 중심으로 쓰여진 역사는 세월이 흐르면서 채색되고 덧씌워져 사실로 굳어져 버린다.

이처럼 왜곡될 수 있는 패자들의 숨겨진 역사를 풀어 헤친 서적이 출간됐다. 한국역사연구회 소속 17명의 젊은 역사 연구가들이 쓴 ‘모반의 역사’(세종서적 펴냄)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그동안 역모자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아 왔던 패자들의 비사를 담고 있다. ‘그들이 왜 모반을 꿈꾸었으며, 그들이 내세운 사상은 무엇인가? 그들의 행동은 우리 역사의 물줄기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그리고 그들은 정말 반역자들인가?’하는 논제를 담고 있다.

이 책은 ‘대동 사회’를 꿈꾸며 체제 변혁을 이루려 했던 정여립을 비롯해 출세 가도를 달릴수 있음에도 모순된 현실 개혁을 위해 가시밭길을 택한 허균, 세도 권력에 신음하는 농민을 위해 열정을 불태운 홍경래같이 부패한 정권에 온몸으로 저항한 개혁자들의 사상과 그 실체를 재조명 한다.

물론 이들 모반자중에는 선덕여왕의 즉위를 문제 삼아 반역을 꾀한 비담, ‘십팔자(十八子)가 왕이 된다’고 믿은 이자겸, 무인 정권의 서막을연 정중부 같이 정권 탈취를 위해 반역을 저지른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은 역사적으로 파장이 컸던모반 사건을 패자의 입장에서 봄으로써 보다 균형 잡힌 역사적 시각을 갖게 해 준다. 또한 역사 사건을 재조명함으로써 당시의 시대적 고민이 무엇이고, 당대를 지배한 정치적 이슈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실패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폄하되고 왜곡돼 왔던 굴절된 역사의 줄기를 바로세운다는 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07/18 21:40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