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파산위기…세계경제 먹구름

디포트 선언설 등 꼬리문 악소문, 금융위기 중남미로 확산

아르헨티나에 세계의 눈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말 금융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 미주개발은행(IDB)등 다국적 금융기관들로부터 398억달러의 패키지 차관을 긴급수혈 받으면서 숨통이 트이는 듯 했던 아르헨티나 경제가 다시 벼랑끝 위기에 몰렸다.

△ 아르헨티나의 디폴트 위기로 주가가 연일 폭락세를 보이고 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증권거래소에서 중개인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모여있다.

디폴트(외채지불 불능) 선언설과 페소화 평가절하설, 페르난도 델라루아 대통령의 중도사퇴설 등 악소문이 끊임없이 나돌면서 아르헨티나 주식시장의 메르발지수가 1995년이래 최저치인 300대로 폭락했다. 12일 하루동안 기록한11.35%의 주가폭락은 사실상 아르헨티나 주식시장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다.


주식시장 붕괴, 위기탈출 불투명

이번 사태의 여파로 브라질과 칠레,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들의 주가와 환율도 휘청거렸다.

달러당 8.9~9.0페소의 강세를 보이던 멕시코의 페소화는 12일 오전 한때 9.4페소까지 치솟았으며, 주가 역시 큰폭으로 떨어졌다.

브라질의 헤알화도 큰 폭의 하락세를 기록했으며, 주식시장의 보베스파지수는 1.08% 빠져나갔다. 콜롬비아는 단기외채의 장기 전환을 위해이날 2,500만달러 상당의 국채를 발행할 계획이었으나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같은 날 발표한 ‘연례세계 자본시장 보고서’에서 “아르헨티나에서 촉발된 금융 위기가 신흥 경제국들로 전염될 소지는 여전하며 확실한 투자 기반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금융 위기가 재발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IMF는 한국의 경우 우리금융지주회사 설립 등을 통해 제2차 금융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으나 점차 고용 안정이 중시되고 있으며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통합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세계의 주요 증시가 주가 조정을 겪었으나 주가수익비율(PER)등 주요 지표를 보면 아직도 일부 국가나 특정 산업분야는 주가가 과대평가 돼 있다" 며 주가의 추가 하락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고 달러화 급락과 미국의 재정 건전화에 따른 국채 발행 물량 축소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12일자에서 중남미지역이 다시 금융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으며 이 지역이 과거 보다 훨씬 큰 폭으로 글로벌경제에 편입돼 있기 때문에 그 여파가 뉴욕에서 홍콩, 요하네스버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중남미 금융위기의 진앙지로 엄청난 빚에 허덕이면서 침체를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가 조만간 위기에서 벗어날 희망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아르헨티나 상황은 특히 남미 최대 국가로 외국인 투자가 가장 많이 몰려있는 이웃 브라질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단단한 경제여건을 갖고 있는 칠레와 멕시코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신문은 세계 경제는 멕시코가 1994년 페소화를 평가절하한 직후의 위기와 97~98년 러시아에 이어 브라질로 확대된 아시아지역 금융위기를 극복해 냈지만 현재의 중남미 시장위기는 미국, 일본 등의 경제가 특히 위축된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그러나 한가지 위로가 되는 점이 있다면 세계 각국이 아르헨티나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의 경제위기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고율의 국채발행이 주가폭락 도화선

아르헨티나의 금융위기는 금년말로 만기가 도래하는 153억달러의 외채원리금상환을 앞두고 정부가 고율의 국채를 발행한 것이 결정적인 도화선이 됐다.

10일 8억8,000만달러 상당의 91일짜리 재무부 채권을 발행하면서 단기채권 평균금리 7.9%보다 2배가량 높은 14.1%라는 고율의 이율을 적용한데다 내년 5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의 이율도 16%로 상향조정했다.

좋은 조건의 국채발행으로 외채상환의 숨통을 트고 기존채권의 이율도 인상해 만기도래 외채의 상환시기를 연장해보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갑작스런 고금리 정책은 외국 투자가들을 오히려 동요하게 만들었고, 이 때문에 11일 주가가 6.13% 빠진데 이어 12일에는 전날보다 낙폭이 더욱 커져 11.35%나 떨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게다가 국제신용평가회사인 미국의 피치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는 이날 불투명한 경제회복 전망과 채무이행 능력에 대한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아르헨티나의 국채신용등급을 `B+'에서 `B-'로 햐향조정한다고 각각 발표, 주식시장의 혼란을 더욱 부추겼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외채는 1,280억달러에 공식실업률은 15.4%에 이르고 있으며, 상황이 악화될 경우 더욱 늘어날 소지가 있다. IMF는 아르헨티나 정부가 재정적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올해 지원예정인 150여억달러의 차관 제공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별다른 묘책이 없다. 델라루아 대통령은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하고, 경제사령탑인 도밍고 카발로 장관은 태환불변과 디폴트설 부인에 적극 나서고 있으나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IMF 역시 "이번 금융불안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앞으로 수주내에 아르헨티나 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날 것"이라며 지원사격에 나섰으나 외국투자가들의 발길을 되돌리는데는 미흡했다.

아르헨티나 정치권의 분열도 경제위기를 가속시킨 원인중 하나다. 야당으로 전락한정의당(일명 페론당)은 정부의 긴축정책에 불만을 품고 사사건건 반대를 위한 반대가 일쑤였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경쟁강화법안을 의결하고 경제난 극복을 위한 특별권한 부여에 동의하는 등 협조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으나 이는 불과 최근의 일이다.

집권연정 역시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프레파소당 출신의 카를로스알바레스 전부통령은 델라루아 대통령의 인사 및 경제정책에 불만을 품고 지난해 사퇴했다. 이후 연정의 주축세력인 프레파소당은 정부의 개혁정책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위기극복을 더욱 더디게 만들기도 했다.


우리경제 영향 미미, 장기화대비책 필요

중남미발 위기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칠까.

한국은행과 금융계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과 우리나라의 수출입, 해외직접투자, 금융기관 대출 등이 미미해 이들 국가의 불안이 우리 경제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은 관계자는 그러나 중남미의 금융불안이 지속되거나 심화될 경우에는 해외차입금리가 다소 상승하는 간접적인 영향은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시장에서는 아르헨티나에 들어간 미국자금이 많기 때문에 미국이 디폴트(채무상환불능)까지 방치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아르헨티나의 경우 3년째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차입금리가 급등하는 상황하에서 공공지출 삭감만이 디폴트를 막을 수 있는 유효한 방안이지만 실행까지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예측 때문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아르헨티나 위기재발의 경과와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가 반복되는 원인으로 ▲구조조정의 실패와 정치적 불안 지속 ▲과다한 대외자본 의존도 ▲방만한 재정운영과 만성적인 재정적자 ▲미숙한 경제정책운용 등을 꼽았다.

연구소는 한국의 경우 위기를 겪은 경험이 있고 외채 과다국이기는 하지만 아르헨티나와는 달리 순채권국이고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최근 상황에서 드러났듯이 우리나라도 구조조정을 비롯한 개혁을 완성하지 못하고 미룬다면 다시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시장원리에 따라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이에 따른 실업증가등의 고통은 사회안전망 확충 등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특히 구조조정이 시장원리보다는 정부의 자의적인 정책이나 정치적목적에 의해 좌지우지되면 적지않은 부작용이 발생한다며 아르헨티나의 경우 인기영합주의에 입각한 정책의 반복으로 구조개혁을 달성하지 못했으며 이익집단의 집단행동을 막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연구소는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반복의 핵심적 요인중 하나는 재정수지 적자폭의 확대와 이에 따른 대외부채 과다, 물가상승 등이므로 공공부문의 건실한 재정관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대외부채 규모가 너무 커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며 단기유동성의 원천인 외환보유액도 적정 수준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07/19 13:29


배연해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