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와 꿈에 날개를 달아드립니다"

제1회 대한민국 종합 오디션 박람회

“즉흥 연기 자신 있는 분 계세요? 각자 인간의 희로애락과 관련한 상황을 설정, 돌아 가면서 해 보는 거예요.”

12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EMCAF(엠카프) 준비 사무실. 집행팀 김광오씨의 주문이 떨어지자 마자 9명의 참석자는 기다렸다는 듯 즉석 연기를 펼친다.

“내가 만나지 말자고 했잖아. 이제 우린 어떡하니, 응?” 드라마 부문 지원자 장연미(28)가 감정을 바꿔, 실연의 감정 속으로 몰입한다. 울먹이는 그의 눈에 금세 그렁그렁거리는 눈물은 예사롭지 않은 실력을 웅변해 준다.

옆에 있던 이도원(21ㆍ서울여대 국제학과2), 이미란(18ㆍ경기여고2)은 노래까지 불러가며 그 나이 또래의 발랄함을 연기해 보인다.

CF 부문 지원자 손배진(16ㆍ은평중3)은 금세 어머니에게 투정부리는 철부지가 된다. 최연소지원자 다운 발랄함이 연기에서는 더욱 파릇파릇해 진다.

어느 누구도 즉석연기에 눈꼽만치의 주저함이 없다. 가수ㆍ배우 뺨친다는 말은 이들을 위해 지어진 말인 듯하다. 얼마나 오랜 동안 공력을 쌓아 왔던가. 남앞에서 자신의 끼를 발산하기 위해 다들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끼를 체계화 시키는 사회화 과정

‘스타가 되자’.

우리 시대, X세대에게 스타는 만사로 통하는 도깨비 방망이다. 바로 앞 시대까지만 해도 황금과 권력으로 직행하는 도깨비 방망이가 출세와 권력이었다면, 이제 그 길은 대중 문화 또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눈만 뜨면 TV, 영화, 인터넷 등이 육박해 오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한국 젊은이 최대의 공통 화두이다. www.castnet.co.kr 등 오디션 전문 사이트만 50여개 난립돼 있는 실정은 이 같은 추세를 웅변한다.

오늘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문예회관앞에는 자정까지 젊음의 축제가 벌어진다. 문예회관 붉은 담벼락 앞 울퉁불퉁한 돌 마당에서는 너댓 명의 젊은이가 아크로바틱 곡예를 방불케 하는 수준으로힙합 파티를 벌이고 있다.

그보다 열 배, 많으면 스무배는 되는 또래의 관객들이 지켜 본다. 늦은 밤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자연스레 어떤 식으로든 하나의 무대가 생겨 난다. 아무도 개입하지 않은, 그들만의 자연발생적 스타덤(stardom)과 팬덤(fandom)의 문화는 이 시간에도 도시 곳곳에 우연적으로 산재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신호등이, 수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들은 광장으로 나와, 사회와 접촉하며 체계적으로 자신의 끼를 조직화하고 싶어 한다. 정교한 연예ㆍ오락 시스팀과의 연계를 거쳐 세상속으로 자신을 실재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가수·연기자 등 5개분야 공개 오디션

끼리끼리 밤새도록 마시고 노는 레이브(rave)파티 같은 식의 소모적ㆍ폐쇄적ㆍ배타적 열기는 교통 정리를 필요로 하는 시점에 와 있다. EMCAF라는 장은 말하자면 이들이 거쳐가야 할 첫 번째‘사회화’ 과정이다.

‘제 1회 대한민국 종합 오디션 박람회(Eentertainment& Media Casting Audition Fair 2001:EMCAF 2001)’. 26~2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3층 컨벤션홀과 프레스 센터를 거듭 나게 할 신인 등용문이자 연예 인력 시장이다.

그동안 군소 기획사에서 그들의 필요에 따라 신인 발굴 행사를 펼친 적은 더러 있었지만, 이처럼 가수(보컬ㆍ 댄스가수ㆍ밴드), 연기자(TVㆍ영화), 모델(패션ㆍCF), 방송진행자(VJㆍ웹자키), 방송기술인력 등 5개 분야에서 한꺼번에 투명하게 공개 오디션이 펼쳐 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움과 프리첼 등 PC 통신을 통해서만 하루 접속량이 3만~4만건에 달해요.” 주관 기획사 어브로드(Abroad) 대표이사 남윤재(36)씨는 “우리도 미처 예상 못 한 열기”라며 놀란 표정이다.

누구나 스타로 뜨고 싶은 이 시대, 그 같은 열기는 당연한 반응일 지 모른다. 지원자들이 통신을 통해 제출한 자기 소개서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집단무의식을 웅변해 준다. 차라리 발랄함의 경연장이라 해도 좋을 글만 모였다. 어느 것 하나 호기심을 재촉하지 않는 것이 없다.

‘저의 주체할 수 없는 끼를 빨리 보여드리고 싶군요’(ID:sitcomstarㆍ여ㆍ20ㆍ연기 부문).‘전 날라리가 아닙니다. 스타의 꿈에 눈먼 배우가 아닌, 하나의 위대한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ID:dudghkqodnㆍ남ㆍ23ㆍ모델 부문).‘저의 꿈에 날개를 달아 주세요’(ID:newespoirㆍ여ㆍ24ㆍ모델 부문).

벌써 자기 홍보에도 열심이다. ‘중국어의 경우, 광동어와 북경어 모두 본토 사람에게 인정받았습니다’(ID:h36218ㆍ여ㆍ20ㆍ가수 부문). ‘편안함과 함께 강인한 마스크가 저의 매력이죠’(ID:chibiㆍ남ㆍ24ㆍ모델 부문).

13일 현재 총지원자수1,800여명. 가수가 57%, 연기자가 30%, 모델이 8%, VJ 5%로 나눠진다. 주최측은 그러나 PC 통신 등을 통해 고조되고 있는 관심을 감안한다면, 총 응모자는 접수 마감인 22일까지 3,000명은 쉽사리 넘어 설 것으로 본다.


연예계 인재 발굴의 장으로

이번 행사 최대의 특징은 박람회 형식의 오디션이란 점. 관련 업체 관계자가 오디션 지원자를 직접 대면해 평가하고 채용 여부를 결정짓는다. 연예 부문의 전매 특허인 갖가지 구설수를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이와 같은 형식의 실시간(real time) 운영 방식은 아시아에서 처음이다.

연예 산업이 발달한 일본에서도 엔터테인먼트나 매니지먼트 회사가 각자 필요와 편의에 따라 인재를 발굴해 내는 방식을 답습하는 실정.

현재까지 참가를 약속한 국내 업체는 사이더스, 이스타즈, 도레미미디어, 튜브 프로덕션, 클릭플러스, 필름디렉터, 베스트오디션, 명필름, 화력발전소, 윌스타, 아이스타, 시네위크, 모델라인, 대원 C & A 홀딩스, 게임 브로드 밴드 등 연예 산업 관련 주식회사 15곳이다.

문화 산업 시장ㆍ견본 시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대의 관건은 기업체와 어떻게 돈독한 연계를 맺어 나가는가 하는 데 있다.

국내 업체뿐 아니다. 일본의 Coming SoonㆍSpace Shower TV 등 연예 전문 TV, 홍콩의 NMD 등은 이미 참가를 확정한 해외 엔터테인먼트사.

특히 일본의 매니지먼트사인 제일 프로덕션은 최근 빅터 엔터테인먼트가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 ‘Touch’의 주제곡을 부를 가수를 EMCAF에서 찾아가겠다고 약속해 왔다.

노래는 한국어ㆍ일본어ㆍ영어 등 3개국어로 만들어 질 예정이다. 또 홍콩은 유덕화와 코코리의 매니지먼트 회사로 유명한 NMD사가 참가를 약속했다. 사장이 건너 와, 부스 운영 등을 직접 관장할 계획이다.

이밖에 아직 참가 확약은 안 했지만,일본 최대의 음악 채널인 SSTV(Space Shower TV), 홍콩(엘리트 모델스, 스타즈 피플), 싱가폴(팬텀, 디바), 태국(뱅콕 모델스)등지의 엔터테인먼트사들이 한국측과 계속 물밑 접촉중이다.

이 행사는 1월부터 기획돼 왔다. 최대의 관건인 라인 업 작업이 어느 정도 골격이 잡히자 2월부터 행사장을 물색, 한달 뒤에야 코엑스 대관을 따냈다.

일반 박람회도, 상품전시회도 아닌 오디션 박람회라니. 홍보팀은 코엑스측에 기획서를 보내는 등 구체적 준비 상황과 작업의 필요성에 대해 1달 동안 설득에 들어 가야 했다.

라인 업 작업이란 영어권에서는 참가자(participant)구축 작업이라는 말로 통칭된다. 공급자(연예인)를 선별해 내고 소화할 수요자(바이어, 즉 관련 기업체)를 찾는 것을 의미한다.

대회를 풍성하게하고 ‘인력 시장’이라는 의미를 실질적으로 규정짓는 핵심 요소이다. 준비위원회가 앞으로 남은 기간에 기업체 섭외 작업에 총력, 라인 업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화마켓 형성, 새로운 연예사업 콘텐츠

쉽게 말해 EMCAF란 하나의 거대한 마당이다. 대표 남씨는 “인터넷의 포털 사이트처럼 하나의 문화 컨텐츠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지향점을 밝혔다. 매니지먼트사를, 엔터테인먼트사를 직접 경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소비자와 생산자를 직접 연결, 하나의 문화 마켓을 형성해주자는 것이다.

아직 국내에 생소한 개념이라 오해받을 수도 있는 사업이다.

즉 옛날 처럼 신인 발굴한답시고 진행료, 사진값, 화장료 같은 것을 챙기자는 의도 아니냐는 삐딱한 시선이 그것이다. 신인 발굴 운운하며 몇몇 연예 관련 업체가 저질러 온 작태를 아는 사람은 안다.

EMCAF가 거둬 들일 수익이라면 통상적인 기업 협찬과 입장 수익금. 또 하나 중요한 게 있다. 바로 부스 판매금. 국내외 캐스팅 업체가 배당받은 부스에 대한 일종의 사용료 또는 권리금이다.

EMCAF측은 캐스팅 관련 부스일 경우는 부스당 200만원, 일반 기업체의 홍보 부스일 경우는 부스당 500만원을 임대료로 받을 계획이다.

‘구경도 해 보고 싶고, 참가까지 하고 싶은데 왜 서울서만 하나?’ 알음알음으로 개최 소식을 알고 지방에서 통신상에 띄우는 항의성 문의를 감안, 주최측은 우편 접수도 받고 있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www.emcaf.com또는www.sports-live.co.kr에서 관련 정보를 얻을 수있다.

초등학교 6학년때 마이클 잭슨을 보고 스타 열병에 걸렸다는 ID kih7359가 띄워 보낸 사연은 모든 참가자의 말이기도 하다.

‘끼있는 친구들이 많아 왠지 자신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도전해 보지 않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입니다. 그럼 행사장에서 저의 모든 것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다들 어릴적부터 나름대로 열병을 앓아 온 사람들이다.

접수는 24일부터 코엑스 컨벤션홀에 마련된 접수대에서 받는다. 중복 지원으로 스케쥴이 겹친다면, 지원자가 우선 순위를 정해 오디션에 응할 수 있다. 1차 공동 오디션 합격자는 홈페이지 또는 행사장내 멀티 TV 큐브 등을 통해 오디션 다음날 발표된다.

이어 7월 29일은 1차 합격자를 중심으로 2차 공동 오디션이 치러진다. www.emcaf.com (02)514-2646

장병욱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7/19 19:57


장병욱 주간한국부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