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66)] 성의 존재 이유

성(sex)은 언제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생물이 처음 지구상을 뛰놀게 된지 언 10억 년이 지났고, 21 세기 첨단과학은 끝을 모르고 발전하고 있지만, 성의 기원이 무엇인지는 아직 생물학의 가장 큰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지금까지 지구의 형성과정과, 생명의 기원과 공룡의 멸종, 심지어는 인간 진화의 변화까지도 모두 우주 즉 혜성이나 소행성의 탓으로 돌리곤 했다.

하지만 적어도 성의 발생은 어떨까?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와 미 항공우주국의 제트추진연구소는, 성이 있기 이전의 생물을 시뮬레이션 하기 위해 디지털 생물체를 만들어서 성이 탄생하게 되는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혜성과 소행성의 영향(방사능 등)으로 엄청난 유전적 돌연변이가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서 지구상의 무성생식생물이 유성생식(암수가 교미를 해서 자손을 생산하는 방식)을 하도록 스트레스 환경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연구자인 클라우스 윌케박사에 따르면, 생물체가 혼돈의 환경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성적 자유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사실 성이 있기 이전의 생명체는 무성생식(암수가 만나지않고 혼자서 자손을 생산하는 방법)을 하면서 잘도 살아왔다.

지금도 많은 생물이 무성생식으로 대를 이어가고 있다. 감자는 씨눈 하나를 희생해서 새 감자를 만든다. 양파는 분열하고, 선인장은 자기 몸의 일부를 땅에 떨어뜨려서 종족을 번식한다.

동물의 경우, 해면과 바다 말미잘은 돌기(아체)를 통해서 번식한다. 편형동물의 경우, 몸을 둘로 자르면 잘려나간 반쪽의 한 끝에서 머리가 자라나도, 원래 몸통에서는 새 꼬리가 생겨난다.

이 얼마나 손쉽고 강력한 대를 잇는 방법인가? 밤늦도록 힘든 구애를 할 필요도 없고, 이별이나 이혼의 아픔도 없다. 그야 말로 보장된 생식의 방법이다. 좋은 형질이 있으면 진화의 과정에서 쉽게 희석되지도 않는다. 자식은 부모 그대로의 복사품이다(꼭 좋은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반대로 성이 있을 경우, 서로 다른 유전암호를 가진 암수가 만나야 되고, 무수한 돌연변이의 가능성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좋은 것은 없어지고 나쁜 것만 축적될 수도 있다. 비장애 부모 아래 장애아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무성생식의 이러한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진화의 어느 시점부터 성이 맹위를 떨치게 되었다. 아마도 결정적인 단점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돌연변이율이 적은 무성생식은 심각한 환경변화에 유동적으로 적응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성이 있을 경우, 생물은 빠르게 진화하고, 다양한 돌연변이는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최적자를 생존하게 만들어 멸종을 피할 수 있다는 아주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실제로 세균이나 효모의 경우 환경에 따라서 성이 변하는 경우가 많다. 극한상황을 극복하는 생존 경영의 한 방법이다.

결국 인간도 종족의 오랜 보존을 위해서 성이라는 수단을 도입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것은, 스트레스 환경에서는 유성생식이 무성생식에 우선한다는 다위니즘적 설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생물들은 왜 태초부터 무성생식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성이 없었다면, 인간은 과연 지금껏 존재할 수 있었을까? 머나먼 과거에 담긴 진실의 상자를 21세기 첨단과학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인가?

정보통신의 발달로 새롭게 시도되는 디지털 생물체의 개발과 이를 활용한 연구에 좋은 진전이 있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여하튼, 지금 우리에겐 성의 자유가 있고, 변함없이 돌연변이는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 두 성의 자유에서 태어난 돌연변이인 것이다.

입력시간 2001/07/1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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