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단 대륙의 용-중국] 中國通 어느 분야에 누가 있나?

인맥ㆍ전문가 부족, 중화권 과실따기 역부족

중국이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갑자기 다가온 느낌이다. 올 11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 확실한 상황에서, 베이징(北京)이 또 다시 2008년 올림픽을 유치하자 중국에 대한 한국의 관심이 폭증하고 있다.

WTO 가입과 올림픽 특수에 따른 경제적 이익이나 무임승차를 기대하는 한국 내 관심도 전례없이 높아졌다.

하지만 이처럼 갑작스레 관심이 고조되는 것은 호들갑에 가깝다는 비판도 있다. 중국의 부상이 20여년간 진행돼 온 장기적 추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유치를 보고서야 비로소 중국의 실체를 인식하는 것 자체가 때늦은 인상을 준다는 이야기다.

중국을 보는 한국의 관점은 이중적이다. 거대 중국에 한국이 짓눌려 질식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하나다.

또 하나는 국제정치와 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을 힘에 걸맞는 파트너로 삼아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관점에서 보든 중국은 한국이 국제적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 필연적으로 깊숙이 관계해야 할 상대임이 틀림없다.

문제는 한국의 준비다. 전문가들은 베이징 올림픽 유치를 놓고 한국이 신대륙을 발견한 듯 호들갑을 떠는 현실은 스스로의 준비부족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거나, 중국공략을 위한 체계적인 전문가 육성과 정계ㆍ재계ㆍ학계 차원의 인맥형성을 게을리 했다는 이야기다.


중국이 오히려 한국내 인맥쌓기에 적극적

인맥형성 노력은 오히려 중국쪽이 더 적극적이라는 분석이 있다. 가장 가시적인 것은 주한 중국대사관의 노력이다. 주한 중국대사관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중국측이 대사관을 매개로 한국 내 친중국 인맥형성에 상당한 공을 들여 왔다고 말했다.

한국 정계와 재계, 학계의 영향력있는 인사들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어 이들을 특별히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소식통은 역대 주한 중국대사들이 국내 인사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기울인 노력을 보면 중국측의 의도가 보인다고 설명했다. 중국측은 한국 내 인맥을 통해 이미 상당 수준의 고급 정보에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2월 우다웨이(武大偉) 주한대사가 김중권 현 민주당 대표를 초청해 만찬을 베푼 것이 한 예다. 만찬 시점은 김 대표가 민주당 대표에 임명되기 약 10일 전. 우다웨이 대사는 당시 민주당 내 소식통으로부터 김 대표의 거취를 전달받고 그와 친분쌓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주한 중국대사들은 집권당 뿐 아니라 야당 유력 인사들과도 의도적인 접근을 해왔다. 소식통들은 중국대사관이 재계와 인맥형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대사관 내 고위 직원들이 한국 재벌그룹들을 분담해 관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국 재계 역시 주한 중국대사관을 중국공략을 위한 주요 채널로 삼고 있다는 것이 소식통들의 설명이다.

주한 중국대사관이 한국내 인맥형성에 노력하는 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극동지역 세력균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올 8월1일자로 주한 대사관 무관인 양스리엔(楊錫聯) 대령을 소장(한국의 준장에 해당)으로 진급시켜 격상시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중국이 장성을 해외 주재 무관으로 임명한 것은 지금까지 미국, 러시아, 북한, 일본 등 11개국에 불과했다. 12번째로 한국주재 무관을 장성으로 임명하는 것은 전략적 포석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과 미국간의 역학관계 변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이야기다.


최대무역시장에 걸맞는 전문가 육성해야

한중수교는 올해로 9년째다. 1992년 8월24일 수교 전 44억달러에 불과했던 상호교역액이 지난해 312억달러를 넘어 중국은 미국과 일본에 이어 한국의 3대 교역국이 됐다.

중국은 지난해 한국에 56억달러 무역흑자를 안김으로써 한국의 최대 흑자시장이 됐다. 정치ㆍ외교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중국에 대한 한국의 의존도가 엄청나게 높아졌다는 결론이다. 중국에 걸린 한국의 이해는 앞으로 더욱 커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중국에 걸린 이해가 큰 만큼 중국 내 인맥형성과 전문가 육성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중국 관계자들은 한국의 중국전문가와 인맥은 이제 겨우 시작단계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정계와 재계, 학계 중 중국통이 상대적으로 많은 분야는 재계로 꼽고 있다.

정계의 중국통은 민주당 국제협력위 이영주 부위원장이 단연 1순위로 꼽힌다. 베이징대 정치학 박사 출신인 이 부위원장은 과거 해외공보관 및 쌍방울 베이징 지사장 등을 지낸 바 있다. 이 부위원장은 우이(吳儀), 리란칭(李嵐淸) 등 중국 부총리급 고위 인사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우다웨이 주한 중국대사와도 각별한 사이로 알려졌다.

이 부위원장은 지난 5월 김중권 대표 방중 때 사전에 없던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의 면담을 주선했을 정도로 힘을 발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소식통은 “이 부위원장이 베이징에서 갖고 있는 영향력은 외교부보다 더 강하다”고 말했다.

정치권, 특히 청와대에서는 김하중 안보수석이 중국 외교부 내 상당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 공사 출신인 김 수석은 차기 주중대사에 임명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비집권당 인사로는 이세기 전 의원이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꼽힌다. 이 전 의원은 장팅이엔(張庭延) 초대 주한 중국대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장팅이엔 대사 재임 시 방한하는 중국 당ㆍ정 고위관리들은 거의 예외없이 당시 이 의원과 만남을 가졌다. 황병태 전 주중대사도 한 때 막강한 인맥을 갖고 있었다. 현재 정치적으로 몰락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주한 대사관이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지도자들은 대체로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김상희 전 대한상의회장 등이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중국인맥이 든든했다. 김 회장 몰락 당시 중국측이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는 것이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관계자들은 대기업들이 중국 내 인맥형성 작업과 전문가 양성에 가장 앞섰다 데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한 관계자는 “인맥관계는 비공식적인 측면이 강해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삼성과 대우가 상대적으로 좋다”고 평가했다.


재계 활발한 대중국관계 형성

삼성의 중국통으로는 김유진 삼성중국본부 사장과 삼성물산의 김재경 지사장이 꼽힌다. LG는 노용악 LG전자 부회장과 천진환 고문이 대표적이다.

노 부회장은 현재 중국 내 에어컨, 전자레인지 등 전자분야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현대는 중국진출이 늦은데다 사업규모도 적어 비교적 약세를 보이고 있다. 현대의 중국업무는 정재관 현대상사 사장이 주로 관장하고 있다.

SK에서 중국통은 SK글로벌의 중국사업을 총괄하는 이종산 중국본부장(상무)과 심화섭 SK텔레콤 해외사업 부장을 들 수 있다. 심화섭 부장은 지금까지 중국 내 근무만 7~8년에 이른다. 대우에서는 전병우 중국본부장(상무)과 차영서 대우인터내셔널 베이징 지사 차장이 꼽힌다.

과거 김우중 회장 측근에서 중국업무를 수행한 차영서 차장은 중국 각계에 두루 발이 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재계의 실무진 중국통들은 한중수교 전 대만에서 공부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중국 개방과 함께 각 기업들이 1980년대 초 설립한 중국팀이나 북방팀에 들어가 경력을 시작했다. 이들은 당초 홍콩지사 등에 근무하다 1992년 수교를 전후해 대거 중국대륙으로 들어가 현장에서 중국을 체득한 특징을 갖고 있다.

정보통신(IT) 산업 분야에서도 새롭게 중국통이 나오고 있다. 중국의 IT산업 발전과 한국의 진출 전략이 맞물리면서다. 소프트진흥원의 모영주 중국사무소 사장과 삼성전자 중국지사장인 배승한 이사, 김상국 SK텔레콤 상무, 구자민 LG전자 상무 등이 대표적인 면면.

SK텔레콤 김상국 상무는 중국정부와의 커넥션도 상당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현지에서 활동하면서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와 경제분야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서는 중국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하지만 현재까지 국내 사정은 한심할 정도로 저변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나 재계의 조직적인 지원이 없었을 뿐 아니라 학계 내부에서도 협력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학계의 고립분산성은 지금까지 내놓을 만한 중국학회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데서도 나타난다.


심도있고 체계적인 연구 필요

현재 국내 중국학계는 학위 취득지역에 따라 3부류로 나눠진다. 대만과 미국, 중국본토 출신이다. 한 원로 중국학자에 따르면 이들 3부류는 출신지역에 따라 다소 성향이 다르다. 대만 학위자는 중문학 분야에서, 미국 학위자는 연구 방법론, 중국본토 학위자는 현장성이 강하다.

하지만 이들 3부류는 지금까지 거의 학문적 교류가 없어 연구의 종합성과 이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50대 말 이후의 1세대 학자들 간에는 학위취득 지역별 교류부재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최근 학계에서는 타성을 깨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8월께 외교부 등록 사단법인으로 새출발을 시도하는 ‘현대중국학회’가 한 예다.

현대중국학회 회원은 40대 이하 소장파 학자로 120여명. 정영록 회장(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는 “출신(학위취득) 지역에 관계없이 학제간 연구를 통해 중국문제를 체계화하고, 이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학회의 진로를 밝혔다.

학계의 중국인맥 형성은 초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는 학계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불신과 지원부족이 한 몫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전문가 양성은 물론이고, 어떤 기준으로 전문가들 골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과 작업이 없었다는 비판이다.

일부에서는 미국이나 일본과 같이 정부, 기업, 언론이 학계의 중국전문가를 물색해 체계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중국전문가가 제대로 양성되지 못하는 것은 이들을 수용할 곳이 거의 없는 현실과도 무관치 않다. 특히 1997년 IMF로 인해 기업의 중국업무 유경험 직원 뿐 아니라 중국관련 학자들도 된서리를 맞았다.

정부 출연 연구소인 한국산업연구원(KIET)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국실을 없애고 10여명에 이르던 연구원도 3명으로 줄였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는 5명으로 절반 이상을 감축했고, 삼성경제연구소는 4명에서 1명으로, 현대경제연구원은 3명에서 1명으로 연구원을 줄였다. 말로만 중국을 떠들었지, 행동으로는 따라가지 않은 것이다.


미ㆍ일편중서 벗어난 정책 펼쳐야

대외무역 자문의 주요 창구인 한국투자무역진흥공사(KOTRA)와 무역협회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KOTRA는 올해 청뚜(成都)관과 우한(武漢)관 등을 신설해 중국내 무역관을 7개로 늘렸지만, 주재원은 모두 합쳐 19명에 불과하다. 평균 3명이 안되는 인원으로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현지 직원들의 이야기다.

IMF 구조조정으로 경험많은 직원들이 다수 떠나 사정은 더 어렵다. 무역협회 역시 구조조정으로 중국실이 폐지되고 중국전담 직원은 본사 2명과 베이징 사무소 2명이 고작이다.

중국 전문가 육성과 인맥형성이 안된 것은 미ㆍ일 지역에 편중된 지원과 무관치 않다. 한국학 진흥을 위한 자금도 중국지역에는 전무하다. 내세울 만한 전문가도, 양국을 중개할 인맥도 없는 상황에서 이미 중국은 거대한 모습으로 한국에 다가왔다.

한국의 접근자세에 대한 반성이 없으면 중화권에서 과실을 취하기는커녕, 동북아 새 판짜기에서도 ‘장기판 졸’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7/24 19:11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