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단 대륙의 용-중국] “한국의 독자적인 중국관 형성할 때”

인터뷰/ 권병현 전 주중대사

권병현(63) 전 주중 한국대사는 중국의 2008년 올림픽 유치와 연말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1998년 3월~2000년 7월 주중 대사를 역임한 그는 “중국의 발전 추세는 엄청난 역사적 중력을 느끼게 한다”고 그 소회를 밝혔다.

중국의 부상은 대륙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해야 하는 한국에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권 전 대사는 관료출신으로는 국내의 손꼽히는 중국통으로 통한다. 그는 1962년 14회 고등고시에 수석합격해 외무부에 입문한 뒤 공직 경력의 대부분을 아주국에서 쌓았다.

이 같은 경력을 바탕으로 그는 1992년 한중수교 실무교섭 한국대표로 발탁돼 북방정책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현재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을 맡고있는 권 전 대사를 만나 한중관계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 중국의 2008년 올림픽 유치와 WTO 가입은 어떤 의미를 갖나.

“중국이 올림픽을 유치하고, WTO에 가입한다는 것은 용이 양날개를 달고 비상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우선 아시아에서 올림픽을 개최한 역사를 보자. 1968년 일본에 이어 20년만에 한국이 1988년 개최했고, 또 다시 20년만인 2008년 중국이 올림픽을 개최하게 된다.

이것은 아시아 3국간 경제발전과 연계시켜 생각할 때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전후 일본의 경제 기적 속도를 한국이 깼고, 이 한국의 기록을 다시 중국이 깼다는 것이다. 더구나 중국은 경제발전 기록을가장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WTO 가입은 지금까지의 제한적 경쟁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에서 동일한 조건으로 완전경쟁하겠다는 중국의 자신감을 드러낸다. 지난해 스광성(石廣生) 중국 대외무역경제합작부 부장을 만났을 때 그가 ‘WTO 가입 후 중국은 당당하게 세계무대에 설것’이라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이와 함께, 올림픽 유치는 중국 13억 인민의 국가적, 문화적 프라이드를 회복시키는 엄청난 효과를 갖는다. 경제와 정신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함으로써 중국은 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올림픽 유치와 WTO 가입은 아울러 개혁ㆍ개방의 꽃이 핀 것으로 덩샤오핑(등소평)의 노선이 시험수준을 넘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정착했음을 뜻한다.”
- 한중관계의 현주소를 평가한다면.

“1992년 8월24일 수교와 함께 한중관계는 획기적인 변화를 거듭했다. 경제적으로는 수교 전 연 30억 달러에 못 미치던 상호 교역량이 지난해 300억 달러를 넘어섰고, 인적교류도 작년에만 150만명을 넘었다.

정치적으로는 한중 수교와 1994년 김일성 사망으로 북한과 중국간 냉전적 동지관계가 마감되면서 중국이 남북한 등거리 외교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에 따라 21세기 한국은 미국에 의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이라는 새로운 세력을 이용하는 양면적 관계로 들어설 수 있게 됐다. 경제적으로 중국은 미국, 일본과 함께 한국의 3대 교역국으로 떠올랐다. 이 같은 변화가 불과 9년만에 일어났다.

올림픽 유치와 WTO 가입은 부상해 온 중국의 거대 존재를 한국이 자각하게 한 계기가 됐다. 중국은 앞으로도 한국에 그 중요성을 더해 갈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중요성 확대가 미국의 중요성 감소를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 중국의 힘과 국제적 영향력, 시장가치에 대한 인상은.

“1945년 2차대전 종전 당시 최저점에 이르렀던 중국의 국력은 이후 기록적인 속도로 부상해 왔다. 중국의 역사적 복원력에 무서울 정도의 중력과 관성을 느꼈다. 중국은 이미 강대국 분야에 들어간분야와, 중진국적 분야, 후진적 분야 등 3개 분야를 동시에 갖고 있어 우리에게 혼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의 경제, 정치체제는 꾸준히 지속적인변천ㆍ개량과정을 겪고 있다. 현재 중국 경제체제는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거의 없다. 정치적으로는 일당독재를 표방하고 있지만, 이미 오래 전에 집단지도체제로 변화했다.

중국의 각급 지도자 선발 기준은 ‘누가 국가발전에 가장 효율적이냐’에 맞춰져 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1조달러를 돌파해 세계 7위에 올라섰다.

중국시장은 한국이 IMF를 극복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IMF 이후 2년간 한국은 중국시장에서약 300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한국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도 중국진출을 못했더라면 사장될 뻔했다. 홍콩과 대만을 포괄하는 중화경제권은 한국경제의 생명줄이다.”


- 한국의 대중국 접근 방법에 있어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중국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려는 자세에 문제가 있었다. 정부차원에서 중국의 중요성에 걸맞는 접근이 있었는지 회의적이다. 민간차원에서도 실리적 접근을 하긴 했지만, 전체를 보려는 노력은 모자랐다. 동서진영 대립이 아닌 글로벌 시대에는 한국이 독자적인 중국관을 갖는 것이 필수적이다.”
- 국내의 중국전문가 육성이 비체계적이었다는 비판이 있다.

“지금까지 국내 중국전문가는 주로 미국, 일부 일본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중심이었다. 이 같은 경향은 미국이나 일본의 프리즘으로 중국을 보게 함으로써, 서양적 시각의 중국을 마치 우리의 중국관인 양 착시하게 하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오리지널’ 중국전문가 1세대가 양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국내 대학 졸업 뒤 중국에서 언어를 배우며 학위를 받거나 연구한 사람들, 또는 미ㆍ일에서 학위를 받았더라도 다시 중국에서 연구활동을 한30~40대가 자라나고 있다. 현재 숫자는 적지만 급속도로 늘고 있는 이들 엘리트를 주목하고 있다.”


- 한국의 대중국 인맥형성 수준은.

“중국에서 꾸안시(關係)는 대단히 중요하다. 개혁ㆍ개방 후 중국에 대한 외국직접투자의 3분의 2 이상이 화교자본이었다. 중국의 법과 제도가 정비되지 않았을 때 화교들이 투자했던 것은 바로 꾸안시에 의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중 대사 이임시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나를 특별히 초청해 한중관계의 미래를 설명하며 환송연을 베풀어 주었다. 한국은 사람을 쓰고 나면 버리지만, 중국은 한 번 알면 끝까지 간다.

한국의 대중 인맥은 겨우 형성되는 과정에 있다. 정부와 기업이 인맥형성을 의도적,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사람을 키워야 한다.”


- 탈북자 처리문제가 주중 대사관에 딜레마라는 말이 많다.

“재임시 탈북자 처리 상황을 공개할 입장은 아직 아니지만, 주중 대사로서 나를 가장 고뇌하게 만든 것이 이 문제였다. 탈북자 문제에 대해 한국, 중국, 북한, 탈북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해법을 찾지 못했다.

동포로서의 관계와 외교적 관계로서의 처리가 너무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괴리에서 오는 가치관 갈등을 극복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훗날 북한사람들이 ‘우리가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한 시점에 한국대사관은 뭘 했느냐’고 물을 것이 항상 마음을 짓눌렀다. 2001년 1월 초 러시아로 간 탈북자 7명이 중국으로 보내져 결국 북송됐을 때 나는 중국 당국에 매우 강력히 항의했다. ‘한ㆍ중ㆍ북ㆍ탈북자 모두가 불행해지는 일이 되풀이 되서는 안된다’는 내용이었다.”


- 주중 대사 재임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1998년 11월 ‘21세기 한중 동반자 관계’를 성사시킨 것이다. 한국정부도 불가능하다며 추진하지 말라고 했지만, 중국을 설득해 결국 성사시켰다.

이로 인해 1999년부터는 조성태 국방장관과 츠하오티엔(遲浩田) 국방부장의 상호방문 등 군사ㆍ안보교류의 물꼬가 트였다. 이들 2개 성과는 중국과 북한간 혈맹관계를 깨는 효과를 가져왔다.

중국이 남북관계에서 중재ㆍ중립적 역할을 하도록 기대하기 위해서는 우선 북ㆍ중 혈맹관계를 깨는 것이 필수적이다. 중국도 처음엔 동반자 관계에 반대했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의 이해가 일치할 뿐 아니라, 남북화해가 중국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해 설득했다.”


권병현(權丙鉉)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약력

▲1962년:제14회 고등고시수석합격
▲65년~:외무부 근무시작
▲74년~:외무부 동북아2과과장
▲76년~:주일 대사관1등서기관ㆍ참사관
▲78년~:외무부 일본담당관
▲81년~:주태국 대사관공사
▲84년~:외무부 아주국심의관
▲85년~:외무부 아주국국장
▲87년~:주미얀마 대사관대사
▲90년~:부산시 국제관계자문대사
▲92년~:한중수교 실무교섭한국대표
▲92년~:외무부 외교정책기획실실장
▲94~96년:주호주 대사관대사
▲97년~:남북핵통제 공동위원회공동위원장
▲98년~:주중 대사관대사
▲2000년~현재:재외동포재단이사장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7/24 19:47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