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매는 세계경제, 돌파구는 없나

달러강세로 수출여건 악화ㅡ 미·일·유럽 동반침체 우려

세계경제가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다. 미국 경기의 침체에서 비롯되고 있는 전세계 경기 둔화는 중단기 전망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이 혼재된 가운데 불확실성만 더해가고 있어 자칫 미국, 일본, 유럽 등 세계 3대 경제축이 모두 경기침체(recession)에 접어드는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과연 미국 경제가 저점을 통과했느냐 하는 것과 낙관론자들이 예상하는 올해말, 내년초가 반등의 시점이 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18일 미 하원 금융위원회에서 있은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의 증언이 있기 전까지는 미국 내수시장의 소비심리가 살아있다는 것으로 ‘하반기 반등론’ 이 우세한 상황이었다.

실업률, 생산성, 인플레 등각종 경제지표 역시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일본, 유럽의 부진을 미국이 흡수,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미, 달러화 하락 통한 수출시장 회복에 주력

그러나 이날 그린스펀의 의회 증언 이후 상황이 확연히 달라졌다. ‘신중한 낙관론’ 편에 서 있던 그린스펀 의장이 “경기가 반등한다는 구체적 징후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며 비관론 편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경제 취약성에 대한 추가조치가 필요하다” 며 지난 2월 2~2.5%로 예상했던 올 경제성장률도 1.25~2% 로 하향조정한다고 밝혀 경기침체의 먹구름을 실감케했다.

무엇보다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한 것은 웬만해서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애매한 어법’으로 악명높던(?) 그린스펀 의장이 이번에는 미 경기둔화에 대해 직접적이고도 분명한 어조를 구사했다는 데 있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해졌다는 반증으로 시장은 해석했다.

이날 증언 중 한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대외 수출여건의 악화가 미경기회복을 더디게 하고 있다” 는 내용.

지금까지 미 제조업체들은 강한 달러가 자국 상품의 수출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려 왔다고 주장해 온 터여서 그린스펀의 이 발언은 은연중 ‘달러 강세를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한 것으로 월가는 받아들였다.

`수출부진→기업실적 악화→주가하락’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달러화 가치하락을 통한 수출시장 회복이 우선돼야 한다는 시각이다.

때마침 20~22일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열리는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에서는 세계 경제침체가 핫 이슈로 등장, 그 진단과 처방을 놓고 어느때보다 뜨거운 설전이 펼쳐질 전망이다.

그러나 합의도출은 사실상 힘들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린스펀 의장의 발언으로 핵심 의제로 떠오를 게 분명한 대 달러화 환율 문제에서 일본, 유럽 측의 반응이 탐탁찮기 때문이다.

이미 폴오닐 미 재무부장관이 앞선 재무장관 회담에서 “달러 하락을 위한 각국 정부의 공조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유럽, 일본 역시 달러화의 인위적 하락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이번 G8 정상회담에서도 똑 같은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사실상 경기침체에 들어선 것으로 여겨지는 일본은 달러화 하락으로 수출까지 타격을 받을 경우 경기 부양책은 치명타를 맞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ㆍ유럽정상 경기침체 소재놓고 설전

경제 침체의 진원지가 어디냐 하는 책임소재 규명도 정상 간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렸다. 오닐 장관은 1조 3,500억 달러에 달하는 세금 감면, 올들어서만 여섯차례 단행된 금리 인하를 들어 미국이 세계 경제를 위해 “할것은 다했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세계 두번째 경제대국인 일본의 지지부진한 금융ㆍ재정 부문 개혁, 인플레 우려를 방패삼아 금리 인하에 미온적인 유럽측이 경제회복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유럽, 일본에 화살을 던졌다.

반면 유럽측은 세계 경제위기는 미국 경제의 침체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유럽이 비난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논리이다. 로랑 파비우스 프랑스 재무장관은 “미국 경기 하강과 에너지 가격 상승이라는 두 요인이 문제의 근본” 이라며 오닐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오닐 장관이 내세웠던 잇단 금리 인하의 `효용성’ 도 세계 경제 전망과 맞물려 논란거리로 부상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금리 인하가 달러값 하락을 가져와 미 수출에 촉진제가 돼야 하는데 오히려 달러화 강세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주식시장 역시 통념과 달리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게 논쟁의 발단이다.

또 단기금리 인하가 장기금리 인하로 이어져 기업의 신규투자를 촉진할수 있다는 기대감과 달리, 기업들의 과도한 재고와 기존 유휴설비 처리문제가 더 화급한 현안으로 부상했다는 게 전문가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금리인하가 현 단계에서 경기를 부양하는 데 효과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는 목소리까지 터져 나왔다.

결론은 시장의 심리로 귀결됐다. 금리가 수차례 떨어졌지만, “그래도 믿을 건 달러 뿐”이라는 투자자들의 심리가 금리 인하의 효과를 상쇄시켰다는 해석이다. G8 회담에서도 언급됐듯 어떤 방법으로 달러 강세를 떨어뜨려 미국 경기를 되살리느냐가 여전히 문제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


FRB 금리인하로 경기반등 여건은 마련

그린스펀 의장의 `심각한’ 발언에도 불구, 미국 경제의 앞으로의 전망은 희망적인 측면이 여전히 유효하다.

“경제활동의 3분의 2를 차지한다”며 그린스펀이 그토록 강조하는 소비심리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린스펀도 이에 대해서는 의회 증언에서 낙관적 시각을 견지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조지 W 부시 정부의 세금 환급분이 다음달부터 본격 시장에 투입된다는 것과 에너지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것, 금리 인하의 효과가 하반기부터는 약효를 발휘할 것이라는 시각이 점점 우세해 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날 “추가조치” 라는 그린스펀의 언급으로 미뤄 다음달 21일 열리는 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올들어 7번째로 금리인하가 단행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또 10월에도 한 차례 더 금리가 내려 현 3.75% 인 기준금리가 연말에는 3.25% 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플레율을 감안하면 사실상 제로금리 수준까지 밀어붙인 FRB의 강력한 금리 인하로 경기반등을 위한 여건은 마련된 상태이다.

17일 부시 대통령이 G8 정상회담 참석차 유럽으로 떠나기 앞서 “400억달러에 달하는 세금 환급분이 조만간 소비자들의 손에 쥐어질 것”이라고 밝힌 데서 짐작할 수 있듯 미국 경기의 향방은 앞으로 수개월이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란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황유석 국제부기자

입력시간 2001/07/25 12:04


황유석 국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