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 악령이 되살아난다

대기업·금융권 감원 한파, 구직 포기도 급증

실업공포가 서서히 커지고 있다. 기업들이 불투명한 경기 전망으로 긴축ㆍ감량경영에 돌입하면서 많은 직장인들이 또 길거리로 내몰릴 처지에 놓였다. 이미 상당수 실업자들이 하반기 중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면서 구직을 포기한 상태다. 이는 앞으로 대기업들의 인원 감축이 본격화하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통계청이 18일 발표한 ‘6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실업자는 74만5,000명, 실업률은 3.3%로 전달보다 3만5,000명, 0.2%포인트가 각각 하락했다. 이 수치는 97년 12월 실업자 65만7,000명, 실업률 3.1%를 기록한 이후 가장 낮은 것이다.

또 실업자는 지난 2월 106만9,000명을 고비로 4달째 급감했다. 통계수치상으로만 보며 실업자와 실업률이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 통계에는 간과해서는 안될 함정이 있다. 실업률이나 실업자수가 떨어진 것은 취업 증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구직 포기 등으로 비경제활동 인구가 늘어난데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통계의 허실이다.

자료에 따르면 15세 이상의 인구에서 취업자와 실업자를 뺀 비경제활동 인구는1,397만3천명으로 전달보다 9만9,000명이나 늘어났다. 취업자가 2,174만8,000명으로 전달보다 3만1,000명(0.1%)이 감소했는데도 실업률이 낮아진 이유다.

비경제활동 인구 중 취업의사와 능력은 있으나 노동시장의 이유로 일자리를 구하지 않은 사람 가운데 지난 1년 안에 구직경험이 있었던 사람(구직 단념자)은 11만8,000명으로 7,000명(6.3%)이 증가했다.

구직포기는 아무리 일자리를 찾으려 해도 불가능하자 ‘백수’로 전락한 것이다. 특히 40대에서 비경제활동 인구가 많이 늘어났다. 40대 실업자가 전달보다 1만9,000명이나 줄어든 이유다.

전문가들은 6월의 비경제활동 인구가 전달보다 0.2%포인트 높아진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지적한다. 비경제활동 인구는 1999년 5월에서 6월로 넘어가면서는 0.4%포인트,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0.3%포인트 낮아졌었다.

계절적으로 보면 비경제활동 인구는 6월을 정점으로 떨어져야 정상인데 정반대의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이례적인 현상이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가 무산되면서 구직을 포기하는 사람이 급증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문제는 하반기 경기 회복이 불투명해지면서 대기업들이 대규모 인원감축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하반기에는 실업률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다시 거세지는 구조조정 ‘칼 바람’

기업들이 불투명한 미래환경에 대비, 자린고비식 내핍 경영이 본격화하고있다. 이는 먼저 감원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1ㆍ2단계 금융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수만명이 직장을 떠난 금융권은 또 한번의 감원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21개 생명보험사의 경우 앞으로 1년간 3만여명(전체 인력의 10~15%)이 직장을 떠나야 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생보사의 덩치 줄이기는 영업망의 핵심줄기인 생활설계사(모집인) 줄이기에서 두드러진다. 생보사는 지난해 삼성ㆍ교보ㆍ대생ㆍ흥국 등 대형 4개사만 8,000명, 회사별로는 최고 3,000명까지 줄인데 이어 올 하반기 들어서며 대형 생보사를 중심으로 또다시 인원 줄이기 작업이 진행중이다.

감원바람은 은행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평화은행이 200여명의 인원감원을 추진중인데 이어 합병대상인 국민ㆍ주택은행도 1,000여명의 감원이 예고되고 있다.

2ㆍ3금융권도 예외일 수가 없다. 신용금고가 올들어 회사당 10% 정도씩 자른데 이어 신협 등 다른 서민금융회사도 점진적 슬림화가 이뤄질 전망이다. 대기업들의 구조조정 강도는 상반기보다 훨씬 높다.

이는 반도체 가격 폭락, 미ㆍ일경제 침체 등으로 올 하반기 경기전망을 낙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구조조정본부의 경영진단 결과에 따라 미래경쟁력이 불확실한 사업을 정리할 계획이다. 또 비수익사업 부문의 분사ㆍ매각ㆍ통폐합등을 통해 현재 인력의 10% 가량을 줄이기로 했으며, 일부계열사는 입사 20년이상의 고참 부장급을 중심으로 명예퇴직을 받을 방침이다.

삼성전기는 위성방송수신용 셋톱박스 등 13개사업을 분사 또는 통폐합하고 수익성이 높은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광부품 사업에 주력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전체 직원수를 30% 정도 줄어든 1만명 수준으로 조정키로 했다. 삼성 SDI도 수원 모니터용 브라운관(CDT)라인을 중국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400여명의 직원을 감축할 계획이다. 상대적으로 나은 삼성그룹이 이 정도이니 다른 기업의 사정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경제 지나친 낙관은 금물”경고

이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기준 4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업시설투자동향' 보고서에서 유추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하반기 시설투자는 상반기보다 2.8% 줄어든 14조9,682억원에 그칠 것으로 집계됐다. 기업들은 투자축소 이유에 대해 판매부진(25%)을 가장 많이 꼽았고 다음으로 사업전망 불투명(17%), 과잉시설 조정(15%) 등의 순으로 응답했다.

투자분야별로는 시설확장투자는 0.6% 줄어드는데 반해 에너지절약은 44.2%, 시설 유지보수 42.6%, 자동화ㆍ합리화투자 15.6%의 증가세를 보였다.

이는 곧 인력 운용과 직결되는 것으로 신규채용을 줄이거나 기존 인력의 감축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제 전망은 어떤가. JP모건은 13일자 보고서에서 “최근 한국경제의 낙관론은 수출보다는 국내 수요의 증가세와 기업들의 낮은 비용상승 압력 및 자금흐름의 원활화 등에 기인하고 있다”며“지나치게 낙관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JP모건은 최근 국내수요를 바탕으로 한 낙관론은 당분간 수출둔화를 상쇄시킬 수있겠지만 조만간 외부 경제환경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의 소비자 및 기업의 체감지수 상승세가 둔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영국의 경제예측기관인 컨센서스 포캐스츠(Consensus Forecasts)는 최근발표한 경제전망보고서에서 올해 우리나라의 성장률을 3.6%(전월 3.9%)로 하향조정했다.

내부에서 보는 것도 외부의 전망과 차이가 없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9일 발표한 '2001년 2분기 경제전망'에서 올해 GDP 성장률을 1분기의 4.3%에 비해 0.3%포인트 떨어진 4.0%로 낮췄다.

이는 지난1월 올해 GDP 성장률을 5.1%로 전망했다가 미국 일본 등 세계경제의 회복지연과 민간소비, 설비투자, 수출의 부진 등을 이유로 4월 4.3%로 하향조정한데 이어 두번째다.

김준일(金俊逸) KDI 거시경제팀장은 "내수가 다소 회복됐음에도 세계경제가 침체, 수출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어 올해 경제성장률을 다시 하향조정했다"며 "최근경기순환은 정보기술(IT)관련 산업의 경기순환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만큼 이 분야의 침체가 계속되는 한 우리경제의 회복도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07/25 13:25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