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거짓말, 그리고 거짓말탐지기

콘디트 섹스스캔들, FBI 조사로 새로운 국면

미국 의원들은 의사당 안에서 어슬렁대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지역구 출신인 인턴 여대생이 실종된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하원의 게리 콘디트 의원은 다르다. 지난 목요일, 그는 난간에 몸을 기댄 채 자신을 여전히 동료로 생각하는 직원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콘디트 의원이 의사당 밖으로 나가기를 꺼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턴 여대생 산드라 레비가 실종된지 3개월이 넘었다. 수사 당국은 24살의 여대생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직 밝혀내지 못했지만 이 과정에서 캘리포니아 주 의원으로 성장한 오클라호마 주 출신의 목사 아들(콘디트 의원)의 사생활은 대대적으로 알려졌다.

그의 선거구호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르윈스키 성추문 사건을 의식한 듯 ‘모범이 되자’였다. 자신의 주장이 거짓으로 판명날 경우 공직자의 정치생명은 끝장이 난다.

콘디트 의원이 실종된 레비와 성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경찰에 시인한지 일주일쯤 뒤에 이런 소문이 돌았다. 콘디트 의원이 레비를 숨겼다는 것이다.

콘디트 의원의 법률팀은 반격에 나섰다. 자진해서 DNA 표본 검사에 응하는가 하면, 경찰의 압수수색에 동의했고,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난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경찰과 언론, 특히 레비 부모는 콘디트 의원의 이 같은 반박에 수긍하지 않고 있다.

비록 콘디트 의원이 레비의 실종과 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의 이미지는 이미 망가졌고, 정치생명도 명을 다한 것 같다. 경찰은 지금도 그가 용의자는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과 공화당은 벌써부터 그의 선거구에 누구를 내세울 것인가등을 논의하고 있다. 정치잡지인 ‘캘리포니아 저널’의 편집장인 블록은 “그가 영리한 사람이라면 다시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레비양 이외에 또다른 의혹 제기

지난 주에는 또 다른 치명적인 의혹이 제기됐다. 콘디트 의원이 7년 전 자신의 지역에 사는 목사의 10대 딸과 성 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연속극에 등장할 만한 내용이다.

당시 오티스 토마스 목사는 레비의 가족을 위해 정원을 가꾸어주고 있었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토마스 목사가 레비양 집 뒷마당에 있는 장미를 돌봐주고 있는 사이 레비양의 어머니 수잔 레비는 딸과 콘디트 의원의 친구관계에 대해 콘디트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토마스 목사는 자신의 딸 제니퍼(현재 26세)가 콘디트 의원과 몇 년 동안 깊게 교제를 하다 헤어졌다고 레비양의 어머니 수잔에게 귀띔을 해둔 상태였다.

제니퍼와 콘디트의 관계를 들은 수잔은 곧바로 딸 레비를 불러 꾸짖었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그렇듯이 수잔 역시 자식의 문제에 관한한 ‘열을 잘 받는’ 타입이라는 소리를 듣곤 한다.

레비양은 콘디트 의원이 제니퍼와의 관계에 대해 모든 것을 다 해명한 만큼 오해를 풀라고 어머니를 설득했다. 물론 콘디트 의원은 보좌진을 통해 제니퍼와의 관계를 부인하고 있다.

토마스 목사에 따르면 딸 제니퍼는 레비 실종 사건 초기에 콘디트 의원이 TV에 나와 ‘좋은 친구(레비)가 염려된다’고 말하자 고함을 쳤다.

“거짓말이야.” 토마스 목사는 또 이렇게 주장했다. “얼마전 아무 말도 발설하지 말라는 익명의 전화를 받았다.” 취재진들이 토마스 목사 집을 찾아가자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손으로 쓴 메모를 보여주었다. “나는 그 의원를 만난 적이 없다.” 제니퍼의 사인까지 되어 있었다.

제니퍼의 진짜 사인일까. 그가 콘디트 의원과 깊은 관계를 가졌다는 아버지의 주장은 사실일까, 아니면 아버지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싶어서 과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조사에 착수한 만큼 이에 대해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

제니퍼가 언론을 피하고 있는 반면 여객기 승무원인 앤 매리 스미스는 갈수록 언론을 더 많이 타고 있다. 그는 방송에 출연했고, FBI의 워싱턴 본부에서 이틀 동안 조사를 받기도 했다.

스미스 염문은 지저분해지고 있다. 그의 변호사인 짐 로빈슨은 폭스 뉴스를 통해 “스미스는 콘디트 의원의 침대 밑에서 묶여진 넥타이를 발견했다. 아마도 콘디트는 자신의 독특한 성적 환상을 충족하기 위해 누구를 넥타이로 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로빈슨은 자세히 묘사하지는 않았다.

금요일 밤, 스미스는 유명한 토크쇼인 ‘래리킹 생방송’에서 콘디트 의원의 인격에 끌려 사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더 이상 인터뷰에 응하지 않을 계획이며 예전과 같은 평범한 여객기 승무원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모든 무용담이 그렇듯 진실과 거짓, 허풍 등이 한데 뒤섞여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CBS 뉴스는 이런 보도를 했다. 실종된 레비의 한 남자 친구가 레비에게 왜 병원에 가느냐고 묻자 레비가 대답을 주저했다.

이 남자 친구는 레비의 침묵이 임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레비는 임신한 상태에서 실종됐다고 알려졌다. 이번 사건에서 난무하고 있는 비약의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레비 부모의 변호사인 빌리 마틴은 CBS 뉴스에서 그는 임신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지만 어떤 단서도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레비의 아버지는 딸이 실종 당시 임신 중이었다는 AP 보도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표시했다.


허위진술서 ‘서명강요’ 부인

그렇다고 콘디트 의원이 이 같은 모든 비난에서 자유롭다는 뜻은 아니다.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중 그가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대목이 딱 한 가지 있다. 콘디트 의원측이 스미스에게 두 사람은 아무 관계가 없다는 허위 진술서에서 명하도록 설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콘디트 의원은 스미스와 잠자리를 같이 한 부분은 인정하면서도 스미스에게 허위 진술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했다는 부분은 부인하고 있다.

콘디트 의원이 법을 어겼든, 어기지 않았든 그가 수사를 방해해 온 것은 분명하다. 그는 레비와의 통정을 부인하다 결국 시인했다. 그가 실종된 레비의 생명보다 자신의 명성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국민들에게 비추어졌다.

콘디트 의원의 석연치 않는 일정은 그가 정직하지 않다는 세간의 의심이 더욱 증폭시켰다. 6월28일 콘디트 의원실은 ABC 뉴스 취재진에게 레비의 실종을 전후한 5일간, 즉 4월28일부터 5월2일까지의 의원 일정표를 제공했다.

일정표에 따르면 콘디트 의원은 5월1일 오후 6시30분에 의사당 인근 다방에서 기자와 만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날 만났다는 기자는 ABC 소속기자 였다. 게다가 이 ABC 기자가 자신의 상사에게 콘디트 의원을 만난 것은 그 다음날인 5월2일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콘디트 의원측은 ABC에 건네준 일정표는 예정표일 뿐 확정된 일정표는 아니었다고 말을 바꾸었다. 그러나 콘디트 의원이 5월1일 오후6시30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콘디트 의원측은 그가 FBI의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자진해서 받기로 했다는 금요일의 긴급발표가 고조되고 있는 부정적인 여론을 진정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콘디트 의원은 경찰의 가택수색에도 응했다. 3시간 동안 계속된 콘디트 의원의 아파트 수색에서 경찰은 경찰견을 동원해 인근의 버려진 집까지 뒤졌고, 몇 가지 물품을 FBI 연구실로 보내기도 했다.

워싱턴에서 콘디트 의원의 부인 캐롤린 콘디트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캘리포니아 주 모데스토에 살고 있는데 많은 사람은 그가 워싱턴에 얼굴을 보이지 않아서인지 병약자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캐롤린 콘디트 의지인은 타임 취재진에게 약간의 건강상 문제가 있지만 생기발랄한 여성이라고 설명했다.

또 남편을 대신해 모데스토 정치행사에 가끔 나온다고 전했다. 이 지인은 “그는 항상 모데스토를 지키고 있다”며 “남편이 그곳에 없으니까 그가 남편을 위해 그곳에 머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조기가 항상 걸려 있는 콘디트 의원의 집 앞마당에 이런 글귀가 선명하게 붙어있다.“무단침입하지 마시오.” 그러나 콘디트 의원이 레비의 실종사건과 관련된 여론의 무단침입금지를 기대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다.

정리 김경철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07/2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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