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백화점' 노점] 기업형이 좌판을 점령한다

도심서 밀려나는 생계형 노점상권 형성 '순기능·악기능' 동시에 영향

조선시대 말 종로 저자 거리에는 임시로 집을 짓고 물건을 파는 ‘가가(假家)’라는 상점들이 있었다. 나무 기둥 위에 천막을 치고 바닥에 멍석을 깐 이 가가에서 곡물과 소금, 짚신, 포목, 잡화들의 물물 교환 거래가 이뤄졌다.

이 가가들은 구한말 소매상으로 변했고, 추후 각종 일용 잡화를 파는 ‘만물상’으로 발전하면서 지금의 종로 상가의 원조가 됐다.

그 후 명동 남대문 동대문 등 4대문 부근 교통 요지를 중심으로 근대적인 형태의 상점들이 모이면서 시장이 형성됐다.

시장에는 정식 점포를 가진 상인 외에 임시로 물건을 파는 영세상인들이 있었다. 지금의 노점상이 바로 이들이다. 이 들중 일부는 길가에 터를 잡고 정기적으로 장사를 하기도 했다.

해방과 6ㆍ25전쟁을 거쳐 1970년대 산업화ㆍ도시화 시대를 거치면서 이런 임시 노점상들은 점점 증가했다.

이처럼 ‘거리의 백화점’이었던 노점상은 우리의 사회ㆍ경제 상황과 괘를 같이했다. 특별한 기술이나 자본이 없는 이들에게 노점은 최소한의 생계를 꾸려가게 해준 생활 수단이었다.

사회가 어려워질수록 노점상도 늘어났지만 이런 이유로 행정당국도 가급적 가혹한 단속을 피해 왔다. 극빈 경제 상황과 생계형 노점상간의 이 같은 함수 관계는 1980년대 초까지 이어져 왔다.


보도 점령한 노점, 걷기조차 힘들지경

19일 오후 7시 서울 종로2가 종로서적 앞 보행자 도로. 채 어둠이 들지 않은 시각인데도 도로는 행인들과 노점상, 전단지를 뿌리는 사람들, 그리고 건물 상점에서 내놓은 적치물들로 포화 상태를 이룬다.

노점상들은 차로 방향 쪽의 인도 절반 가량을 차지하며 빈틈이 없을 정도로 빼곡이 늘어서 있다. 젊은이의 거리 답게 종로는 10대와 20대 초반의 젊은이들로 가득하나 주변은 음반 판매 노점상이 틀어 놓은 스피커와 자동차 소음, 노점상들의 호객 행위로 어수선하다.

이 지역 노점상에는 없는 물건이 없다. 휴대폰 줄, 머리핀, 지갑, 마스코트, 장난감, 반지, 목걸이 같은 간단한 액세서리에서 인형 모자 가방 신발 의류 핸드폰 카드 꽃 카세트 핸즈프리 같은 일용 잡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떡복이 오뎅 튀김 오징어 생과일 사탕 부침이 같은 음식 류도 많다. 심지어는 점을 보는 점집과 토끼나 강아지 같은 애완 동물을 파는 노점상도 눈에 띈다.

이런 아수라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노점상에 가려 버스 정류장 표시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조차 알기 힘들다.

버스가 도착하면 승객들은 도로변을 점거한 노점상 리어커 사이를 헤치고 어렵게 차도쪽으로 나가야 한다. 노점상에서 나는 음식 냄새, 주변의 복잡한 소음, 쓰레기가 너저분한 길거리. 1,000만명이 넘는 거대 인구가 사는 수도 서울의 심장부에 이런 무질서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종로서적 앞에서 종로 3가에 파고다 공원 4거리에 이르는 약 300m 남짓한 도로 변만 60개가 넘는 노점상이 있다. 1980년대 말에는 한때 100곳을 넘은 적도 있었다고 한 노점상은 귀뜸 한다.

이곳에서 30여년간 노점상을 했다는 김점례(67ㆍ가명) 할머니는 “30년전만 해도 이 종로 통에는 대여섯개 정도 밖에 노점상이 없었는데 지금은 유모차 한대 못 들어올 만큼 빈틈 없이 들어 찼다”며 “모든 자리에 임자가 정해져 있어 함부로 들어와 장사할 수 없다. 요즘에는 액세서리를 파는 데 불경기 때문인지 하루 3만원어치를 팔기도 쉽지않다”고 말했다.

예전처럼 ‘아무나 공간만 있으면 자리를 펴고 장사하는’ 식의 전통적 노점상 개념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종로 명동 동대문 등의 서울 주요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는 모두 노점상들이 자체적으로 결성한 노점상연합회의 보호와 통제를 받는다. 노점상도 하나의 이익 집단화한 것이다.


연합회 결성으로 이익집단화

1987년 설립된 전국노점상연합회(이하전노련) 산하에는 서울 지역 11개 지부와 경기지역 13개 지부, 그리고 충청과 전남 영남 지부를 통틀어 40개에 달하는 지부가 소속돼 있다.

전노련은 전국 100만 노점상들의 힘을 결집해 행정 당국과 지자체에 대항해 자체 목소리를 내고, 노점상들의 이익과 권리 보호를 위해 일하는 단체다.

현재 산하에 조직위와 청년국까지 두었으며 ‘가로수’라는 정기 소식지도 발간하며 대정부 투쟁을 병행하고 있다.

전노련의 최인기 사무처장은 “노점상은 최저 계층 서민들이 생계 유지를 하는 최소한의 방편인데 우리처럼 극빈층에 대한 복지 혜택이 미미한 나라에서 스스로 살려고 노력하는 노점상들을 범법자 취급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IMF 한파 이후 회사에서 강제 퇴직 당했거나 사업에 실패한 가장들 상당수가 노점상으로 유입됐다.

이처럼 노점상은 불황기에 실업이나 고용 같은 사회 문제에 보이지 않는 완충 작용을 한다”고 주장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점상에 따르면 대부분의 지역 노점상연합회는 그 지역의 노점 자리 배정에서 업종 조정까지 전권을 갖고 있다. 노점상연합회는 또 관할 구청이나 경찰 같은 단속기관과 잠정 협의를 통해 노점상들의 질서를 자율 통제한다.

장사 시작과 마감 시간도 구청 측과의 협의를 통해 결정 한다. 지난해 외국 정상들이 모인 아셈회의 기간중 일부 지역 노점상들은 지자체 측의 요청에 따라 아예 장사를 하지 않았다.

국내 최고의 상권이라 여겨지는 명동상가에는 노점상들의 조직인 명동복지회가 노점상과 관련된 제반 문제를 전담 한다.

1991년 재결성된 명동복지회는 중구청측과 잠정적인 합의를 통해 평일에는 일몰이 된 7시 이후부터 장사를 하도록 자율적으로 규제 한다.

명동복지회는 노점상마다 자체 고유 번호를 붙여 다른 지역의 노점상들이 무단으로 들어 오는 것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이외에도 동대문 북부 송파 구로 서강 등 각 지부들도 이와 유사하게 자율 질서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상권 되살리는 촉매역할”주장

명동복지회 양용권 회장은 “명동 노점상들은 구청측과 잠정 합의된 사항에 따라 철저히 내부 질서를 지키고 있다.

특히 복지회가 중심이 돼 다른 노점상의 명동 유입을 차단하고 있어 역설적이지만 오히려 노점상으로 난립을 막는 효과도 있다”며 “일부에서 노점상 때문에 도로가 혼잡해지고 장사가 안 된다고 하는데 오히려 노점상으로 인해 명동 상권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역 노점상 연합회나 각 지부가 ‘자율 질서 규제’라는 명목으로 실시하는 운영 실태는 ‘노점상’ 본래의 의미를 크게 퇴색시키고 있다.

본래 노점이란 공공 용지나 도로, 또는 공공성이 짙은 사유지에 생계를 목적으로 임시적으로 생긴 이동식 가게를 뜻한다.

그런데 최근의 노점상은 이런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한번 그 자리를 점유하면 마치 그것이 자신의 권리인양 여긴다. 공공 용지나 도로를 먼저 차지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이들의 동등한 권리를 막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노점상 자리가 실제로 매매되고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수년 전부터 서울 도심의 웬만한 알짜배기 노점상 자리에는 수천만원대의 권리금이 붙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점상은 “종로 2가 도로변의 요지는 최소한 5,000만원이 넘는 권리금이 붙어 있다. 이 지역은 웬만한 자리도 3,000만~4,000만원은 줘야 된다”라며 “권리금은 보통 노점상 간의 내부 직거래를 통해 은밀히 이뤄지기 때문에 정확한 액수를 알기는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명동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에서 평당 지가가 가장 높다는 한빛은행 명동지점의 한 귀퉁이에 있는 한 평도 안되는 시계 수리 노점의 권리금이 무려 5,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예전부터 이 자리에서 시계방을 하던 주인이 갑자기 사망하자, 그의 아들이 자리를 승계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권리금의 윤곽이 드러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지역에 따라 노점상과 건물 상점 주인 간의 관계가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종로의 경우 일부 건물 상점들은 노점상들에 대해 큰 불만을 갖고 있지 않다.

종로 2가 제일은행부근에서 팬시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주인은 “노점상들이 파는 물건과 거의 비슷한 종류를 취급하지만 노점상 때문에 판매에 지장을 받지는 않는다”며 “노점상 물건 값과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요즘 젊은이들이 리어커 상품보다는 가게 진열된 물건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종로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한 종업원은 “일제 단속이 있어 노점상들이 하나도 없을 때는 길거리가 썰렁하고, 손님들도 주는 것을 보면 노점상이 상권 형성에도 어느 정도 기여하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최근의 노점상들의 또 다른 특징은 생계형이 아닌 기업형이 많다는 것이다. 생계형과 기업형의 구분은 매우 모호하다. 보통 나이든 사람이 직접 노점을 운영하면 생계형으로 분류한다.

반면 2개 이상의 노점을 보유한 채 젊은 아르바이트생들을 고용해 고소득을 올리거나, 수십개의 테이블을 놓고 초대형 규모로 노점을 운영하는 경우를 기업형으로 본다.


주인 따로, 장사는 아르바이트생이

최근 명동이나 동대문 종로에 있는 노점상들을 보면 절반 이상이 젊은이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시간제나 수당제로 고용된 아르바이트생들이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적지 않은 노점상들이 몇 개씩 노점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단 한푼의 세금도 내지 않으면서 호주머니를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 때문에 선량한 생계형 노점상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일부 대형 노점상들 중에는 폭력 조직과 연계된 있는 경우도 있다.

명동상가번영회 김재훈 총무부장은 “명동 지역의 노점상이 기업형인지 생계형인지는 눈으로 와서 살펴보면 곧바로 드러난다”며 “세금도 안내고 20~30년간 한 자리에서 아르바이트생까지 동원해가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계형이라고 할 수 있는가”하고 반문했다.

이런 기업형 노점상이 문제가 되자 전노련을 비롯해 각 지역 노점상연합회는 ‘1가구 1노점상’를 자체 기준으로 삼고 규제하고 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노점상은 그 사회의 필연적인 부산물이다. 강력히 단속을 하자니 저소득층의 생계 수단을 뺏는 꼴이 되고, 방치하자니 기초 질서와 조세 정의에 혼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예전의 생계형 노점상과 최근 증가하는 노점상의 기업화ㆍ기득권화는 반드시 구분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생계형 노점상들이 갈 곳을 잃어가는 최근의 노점상 정책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옥석을 가릴 수 있는 행정 당국과 지자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7/25 18:25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