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여는 사람들](10) 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단 정혁 박사(下)

'머잖아 식물자원으로 세계시장 공략'

“우리의 자생식물은 지금까지 수탈의 대상이었습니다. 벌써 20-30년 전부터 미국은 전 세계 자생식물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분석을 시작했고, 중국과 인도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자원을 가진데 비해 그동안 너무 소홀히 했습니다.“

늦게 시작한 만큼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한다는 정혁 박사다. 그래서 그는 사업단을 맡은 뒤 이전보다 훨씬 바빠졌다. 제주도에서 강원도 오지에 이르기까지 40여 곳에 있는 연구단지를 안방 드나들 듯 한다.

그렇게 다니지 않으면 연 100억원의 예산을 배정하는데 실수가 있고, 공정성이 훼손되기 때문이란다. 그가 세운 자금 배분 원칙은 간단하다. 열심히 하는 곳에 돈을 많이 푼다는 것.

누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천하기는 어려운 원칙이다. 정 박사는 “과학에 인간관계가 끼어들면 안 되는데, 우리는 그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 아직 과학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며 인간관계에 좌우되는 연구풍토를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그는 사업단을 운영하면서 그 고리를 과감히 끊어버렸다. 현재 진행중인 30여개의 프로젝트중에서 ‘책임연구원 누구누구’ 때문에 ‘더하고 덜하는’ 게 없다. 결과만이 중요하다.

앞으로 10년 동안 자생식물 이용의 원천 기술을 개발하고 나아가 자생식물의 수집·분류·보존 및 자생식물을 이용한 천연 생약 개발, 자생식물의 유용한 유전자를 이용한 고부가가치의 형질 전환 식물 개발 등 3대 과제를 추진하는데 어떤 성과를 낳느냐가 평가에서 가장 중요하다.


“10년후에는 식물자원을 이용한 세계시장을 공략할 계획입니다. 300억 달러를 넘는 시장이라고 보는데, 최소한 인체에 유용한 물질 30개를 발굴하고 5종의 건강보조 식품과 천연 약제를 개발해야 이론적으로 가능합니다. 우리에겐 오래 전부터 내려온 동의보감 같은 훌륭한 의학서가 있기 때문에 연구풍토는 좋은 편이지요.”

정 박사팀이 연구중인 자생식물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울릉도산 주목이 관심의 대상이다. 항암효과가 있는 탁솔이 주목의 껍질에 들어있다는 것이 미국에 의해 밝혀졌는데, 알고 보니 탁솔 성분은 잎사귀에도 많이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잎사귀의 다양한 활용방법을 연구중이다. 또 야생 도라지나 옻나무에도 산업화·약용화 할 수 있는 유용한 성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중 3-4개는 올해중으로 결과가 나올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천연건강보조식품이 인기를 끄는 것은 부작용이 없고, 인체에 부족한 유기물질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에서는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킨다면서 건강보조제를 하루 3번, 3가지 이상을 먹는 사람이 많다”면서 “혈액순환제나 각종 비타민 제재는 많이 먹을수록 좋다“고 충고했다.

그는 ‘비타민C’를 보충시켜주는 건강보조식품을 하루에 10개씩 먹기도 한다. 특히 몸이 찌뿌둥할 때는 더 많이 먹는다고 한다. 인체에 부족한 성분은 외부에서 만들어 줘야 하는데, 천연식물을 이용한 것은 부작용이 절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천연의약품 시장은 이미 1995년부터 연평균 20% 대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어 2010년에는 국내 시장 규모만 9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자연식품 연구에 뛰어든 것은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식물조직배양학을 공부하면서 부터다. 일리노이 대학에서 석ㆍ박사를 끝내고 1986년 귀국, 식품연구에 손을 댔다. 당시 한국과학기술원(KIST)에는 마늘과 감자연구 프로젝트가 할당돼 있었는데, 한 선배 연구원의 충고로 감자를 선택한게 ‘씨감자 박사’로 자리잡게 된 동기다.

“마늘은 미국으로 유학가기전 농촌진흥청에서 한번 다뤄본 적이 있어서 별로 흥미가 없었어요. 원래 제가 그런 타입입니다. 쉽고 만만한 것보다는 어렵고 안 해본 것에 도전하는 걸 좋아하지요.”

1990년 초 감자연구를 시작하면서 그는 감자가 얼마나 중요한 식품인지 알게 됐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감자는 쌀 옥수수 밀과 함께 4대 주식인데, 그중에서도 감자는 모든 영양소가 다양하게 들어있는 완전식품이다.

히틀러가 감자를 즐겨먹는 게르만 민족을 다른 민족보다 위대하다고 으시댄 것도 그 때문이다. 실제로 2-3개월 감자만 먹어도 아무런 영양소 결핍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이 식량자급자족을 위해 감자생산을 독려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질병예방에 효과있는 '백신형 감자' 개발중

감자연구 3년만에 성과를 낸 정 박사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했다. 원래 생명공학 분야에서 성과를 내는 것은 그 확률이 벤처기업보다도 낮은 1% 미만. 연구기획에서 산업화에 이르는 전 과정을 100으로 보면 실험실 연구는 겨우 30에 불과하고, 나머지 70은 실험실 밖에서 이뤄지는 마케팅 및 산업화다.

언론에 어떤 연구 프로젝트의 성공이 발표되더라도 실제 성공에 이르는 것은 5%이하이고, 산업화까지 가는 것은 고작 1% 미만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정 박사는 그 어려운 과정을 단숨에 해냈다. 물론 5~6번의 고비도 있었다. 가장 어려울 때는 알지 못하는 원인으로 감자가 배양과정에서 시들시들 죽어나갈 때다.

그 때는 배양약을 잘못 만들었나, 온도 조절이 잘못되었나, 햇볕을 너무 많이 쬐었나 등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수십가지 요인을 체크해서 최적화를 찾아야 하는데, 1~2주일씩 죽어나갈 때는머릿속에는 온통 그 생각밖에 없다.

그래서 테니스를 하다가도, 목욕탕에 있다가도, 미친 X처럼 벌떡 일어나 실험실도 달려가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식물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면 그만한 희열도 없다고 한다.

그렇게 아끼던 씨감자 연구를 사업단을 맡은 뒤 후배인 전재흥 박사에게 넘겼다. 물론 완전히 손을 뗀 것은 아니다. 연구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토론한다.

현재는 감자에다 특정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집어넣어 그 감자를 먹으면 질병을 예방하는 ‘백신형 감자’를 개발중이다. 한마디로 간염 이질 장티푸스 등 소화기 계통의 질병 예방식품이다. 질병을 퇴치하기 위해 예방 주사를 맞는 게 아니라 감자를 먹는다는 컨셉이다.

“주사를 맞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공포감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지난해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돼지에게 예방주사를 놓기 위해 수의사들이 얼마나 고생한 줄 아세요? 주사약값보다 주사를 놓는 인건비가 더 많이들지요. 그럴 때 주사가 아니라 예방용 식품이 든 사료를 준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세계적으로도 동물용 백신 사료를 개발하는 연구가 한창이다. 당초에는 아이디어 수준에 그쳤으나 2000년대 들어 경쟁적으로 개발중이고, 조만간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정 박사는 “동물용 백신 사료는 앞으로 3-5년내에 결판이 날 것“이라면서 “사람의 경우 동물용 사료의 개발후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무척 까다로운 임상실험단계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는 실험을 할 때마다 생명의 고귀함을 느낀다고 했다. 쥐 토끼처럼 살아있는 동물의 눈에서 피를 뽑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지만 그에겐 식물이나 동물이나 생명을 담보로 연구하는 부담은 똑같다고 한다.

정 박사는 서둘러 인터뷰를 마치면서 우리가 왜 자생식물연구에 매달려야 하는지 말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각종 자생식물로부터 식품과 약품, 의복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조달해 왔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동의보감과 같은 소중한 데이터를 축적해 왔습니다. 이런 소중한 자원을 그냥 내버려 둔다면 조상에게 죄를 짓는 일입니다.”

이진희 사회부 차장

입력시간 2001/07/2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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