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란] 전세값 폭등 일등공신은 부동산 정책

서민 외면한 경기부양 일변도 정책으로 '소탐대실' 자충수

1997년말 IMF 이후 정부의국가 경제 정책의 화두는 경기 부양이었다. 이를 위해 저금리 정책, 세제 감면 등의 처방을 잇달아 내놓았다. 그 여파로 1999년말에서 2000년초 주식시장은 반짝 폭등 장세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좀체 움직이지 않는 분야가 있었다. 바로 주택ㆍ건설 경기였다.

주택 건설과 부동산은 경기 부양의 효과를 가장 다목적으로 볼 수 있는 분야다. 규모가 방대해 파급 효과가 큰데다, 서민 주거 문제나 저소득층의 고용 문제에도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다.IMF 이후 4년간 주택 경기 활성화 방안이 당국의 경기 활성화 대책의 단골 테마였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1998년 이후 지금까지 내놓은 주택ㆍ부동산 경기 활성화 대책은 모두 10여 건. IMF 초기 정부 당국은 국내 경기가 극도로 위축돼 건설사들이 연쇄 부도 위기를 맞자 건설 경기 부양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정부는 이에 따라 1998년 5월부터 주택거래 및 공급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세제ㆍ금융 상의 혜택을 주는 조치를 내놓았다. 당시 ▲신규주택 구입시 양도소득세 한시 면제 및 취득ㆍ등록세 부담 완화 ▲주택자금 이자 상환분에 대한 소득공제 ▲민간 임대주택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주택 경기 활성화를 위한 자금지원 방안 등을 골자로 한 조치가 잇달아 터져 나왔다.

소형주택 의무건설 폐지,서민들에 직격탄

주택재개발 및 개건축 사업시 소형주택에 대한 공급의무 비율제가 폐지된 것도 바로 이 때다. 소형주택 건설의무비율제 폐지는 수익성이 높은 중대형 평형만으로도 아파트를 건설할 수있게 함으로써 건설 회사나 재건축 사업자들이 신규 주택사업에 뛰어들도록 하기 위한 유인책이었다.

정부는 ‘임대 주택을 활성화 한다’며 임대 사업자에 대한 각종 세제상의 감면 혜택 조치도 잇달아 취했다. 이로 인해 1998년 4월 건설 임대사업자(1,086명)와 매입 임대사업자(3,924명)를 포함해 총 5,010명에 불과하던 임대 사업자수가 올해 4월에는 150% 이상 증가한 1만2,818명으로 급증하는 현상을 초래했다. 임대 호수도 당시 27만호에 그쳤던 것이 지금은 50만호를 뛰어 넘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일련의 활성화조치는 효과 보다는 역기능을 더 많이 낳았다. 소형 주택의무 비율제가 폐지되면서 건설사들이 소형 평형 아파트 건축을 외면, 결과적으로 서민들에게 전세값 폭등이라는 부담을 안겼다. 수익성이 높은 대형 평형만을 지어 분양함으로써 실제로 전세나 월세 물량으로 나가는 소형 아파트가 절대 부족 현상을 빚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서울과 신도시에서 일어나는 ‘전세 기피, 월세 선호’ 현상도 따지고 보면 임대 사업자 양산과 소형전세 물량 절대 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소형 평형이 부족하다 보니 임대 사업자들은 전세 대신 수입이 높은 월세로 전환했고, 세입자 쪽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정부는 지난달만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소형 평형 의무비율제를 다시 도입한다고 발표했지만 이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이 힘든 상태다.

건교부 주택정책과 한만희 과장은 “주택시장이 안정화 되려면 기본적으로 주택 건설이 우선 돼야 한다. 그런데 환란 직후인 1998년 경기 침체로 예상보다 20만호가 준 30만호 건설에 그쳐 장기적으로 공급 부족 현상이 불보듯 뻔했다. 당시에는 건설 활성화 중심의 정책이 최우선 과제 였다”고 말했다.

“수용자 중심의 주택정책 펼쳐야”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임대 사업자들이나 건설사의 부도 지연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서민들에겐 폐해가 더 컸다. 최근 연쇄 부도 양상을 보이고 있는 임대 아파트 사태가 단적인 예다.

건교부 발표에 따르면 현재 전국의 임대아파트 총 가구수 75만4,000여세대중 30%인 22만694가구가 부도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1996년 부도가 난 임대아파트 사업장은 171곳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말에는 786곳으로 대폭 늘어났다. 올해 6월말 현재 21개 사업장이 추가로 부도 사태를 맞았다.

전문가들은 이런 임대아파트 대량부도 사태는 불경기 외에 정부가 자기 돈 없이도 쉽게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한 정부 정책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현재 건설사들은 땅만 있으면 4%의 낮은 상환 조건으로 국민주택기금을 융자 받아 아파트를 지을 수 있고, 완공 뒤에는 임대수익까지 챙길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영세 건설업자들이 너나없이 뛰어들었고 연쇄 부도가 난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임동현 정책부장은 “정부는 이제라도 임대사업자나 건설사 중심이 아닌 실사용자 중심의 주택정책 기조를 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07/31 14:02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