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남산의 여름밤

8월3일~8일 국립극장 '제2회 열대야 페스티벌'

잠 못 이루는 여름밤, 남산으로 가자. 울창한 나무를 뚫고 국립극장 마당을 감아도는 솔바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평소 접할 수 없었던 무대가 기다린다.

8월 3~8일, 심야의 닷새 내내 무더위를 날려 버릴 무대 ‘제 2회 열대야 페스티벌’이 기다린다. 이같은 가족용 행사보다 톡톡 튀는, 때로는 엽기적이기까지 한 무대가 입맛에 맞는 사람이라면 ‘퓨전 앙상블’쪽으로 가자. 또 어린이 국악팬을 위해서는 악ㆍ가ㆍ무가 어우러진 특별 무대까지 준비돼 있다.

국립극장의여름 대공세가 펼쳐진다.


해오름극장 앞마당에서의 '이한치열'

이열치열 정도로 만족할 수 없다. 올 여름 국립극장의 목표는 보다 확실한 납량, 이한치열(以寒治熱)이다. 후텁지근함을 진짜 얼음의 냉기로 날려버리자. 앞마당에다 설치해 둔 길이 8㎙ㆍ폭 2㎙의 얼음길 위를 맨발로 걸어 보자. 한여름속의 겨울은 발바닥에서부터 온다.

얼음뿐 아니다. 진짜눈이 있다. 스키장 등에서 쓰이는 제설기를 동원, 오솔길에 한여름 함박눈의 경이를 연출하는 것. 관객들은 또 원한다면 퍼붓는 눈을 배경으로 산타클로스, 드라큘라, 도깨비와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이색 복장을 한 진행 요원들과 기념 촬영도 하는 포토 제닉 시간이다. 이번 행사의 부제, ‘눈 내리는 여름밤’이란 말에는 그래서 전혀 과장이 없다.

페스티벌의 꽃은 역시무대. 매일 오후 7시 30분~8시 30분에 펼쳐지는1부(콘서트), 밤 9시~11시까지의 2부(영화)로 나뉘어 전개되는 마당이 그것이다.

3일은 여행스케치ㆍ조규찬ㆍ이은미ㆍ크라잉넛등 전성기를 구가하는 가수가 펼치는 가요 한마당이다. 발라드, 블루스, 록, 메탈 등 현재 대중 가요판의 스펙트럼을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

4일(토) 쉬고 쭉 이어지는 무대는 더 화려하다. 5일 강산에와 리아가 남녀 로커를 대표해 향연을 펼치면, 6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특별한 음악여행’, 7일 로커 윤도현의 카리스마. 8일 타악 퍼포먼스 ‘도깨비 스톰’ 등 잇달아 펼쳐지는 무대의 열기에 한여름은 자리를 내줘야 할 판.

22현 가야금ㆍ10현대(大)아쟁ㆍ모듬북 등 개량 국악기가 한꺼번에 선보일 ‘음악 여행’, 도리깨ㆍ절구ㆍ떡매ㆍ채 등 전통 주방 용기들이 사물 뺨칠 ‘도깨비 스톰’ 등은 전통의 변용을 모범적으로 성취한 예로서 국악에 관심 있는 젊은이에게 소중한 자리가 될 것이다. 매일 밤마다 영화가 함께 하니, 금상첨화란 이를두고 한 말.

전래 동화 ‘별주부전’을 애니메이션으로 각색한 ‘별주부 해로’가 3일밤의 영화다. 월트 디즈니사 계열의 브에나비스타 인터내셔널이 배급을 결정, 세계 무대에서의 흥행성을 이미 보장받은 작품이다. 이번 상영은 8월 11일 개봉을 앞 둔 시사회이기도 하다(김덕호 감독).

5일은 성인 첩보영화 007을 가족 오락용으로 재창조한 ‘스파이 키드’. 귀여운 악동들과 최첨단 장치가 볼거리(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 아름다운 영상과 서정적음악이 함께 하는 우리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가 6일 밤을 장식한다. 이병헌ㆍ이은주가 첫사랑의 설렘을 연기하는, 한 편 소설 같은 영화다(김대승감독).

광산촌 가난한 소년의 성장 과정에 카메라의 시선을 밀착시킨 7일의 영국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는 또 다른 감동이 기다린다. 1984년 영국 총파업시기를 배경으로 가족의 중요성을 그렸다(스티븐 달드리 감독). 대미는 최근 우리 영화가 거둔 개가 ‘JSA’(박찬욱 감독).

기다리는 시간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1부와 2부의 사이 30분 동안에 진행자 간단한 레크리에이션 덕택이다. 또 행사 기간 중 대극장앞 문화 광장에는 간단한 한국 음식, 각종 칵테일, 맥주 등을 준비, 국립극장은 아예 한판 마을 굿터장으로 거듭난다.

방송도 빠지지 않았다.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제작진이 장비를 들고 건너 와, 첫날 무대를 공개 방송으로 내보낸다. 이 같은 실황 중계는 청소년에서 중장년층까지, 모처럼 세대와 세대의 벽을 뛰어넘는 이번 마당의 뜻을 더욱 빛낸다. 국립극장에서 공개 방송이 치러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처음 펼쳤던 이 행사는 닷새 동안 하루 평균 5,000여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는 등 큰 인기를 모았다. 공연ㆍ영화ㆍ이벤트를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무대의 관람은 무료(02)2264-8448.


달오름, 별오름 극장의 새로운 모색

해오름극장앞 마당의 행사만 보고 간다면 큰 손해다. 달오름극장, 별오름극장 등 두 소극장도 질 수 없다.

달오름극장이 8월 12~14일 마련하는 ‘해설이 있는 무대-여름방학을 남산국립극장에서’는 좀 더 진지하다. 국악을 주제로, 지금 국악은 어떤 변화를 겪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 남을 것인가를 전망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영화‘서편제’의 대성공에 이어 올해부터 음악 교과 과정의 40%이상이 국악으로 편성되는 등 최근 일고 있는 국악붐에 국립극장이 호응한 결과다. 산하 3개 국악 공연단의 공연에 해설이 곁들여 진다. 하일라이트 감상에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여지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12일 ‘알고 보면 재미 있는 우리춤’. 화관무, 태평무, 승무, 살풀이, 부채춤, 강강술래, 장고춤, 탈춤, 동래학춤 등 모두 9종의 전통춤이 고갱이만 골라 상연된다.

전통춤과 창작춤의 차이, 무용에서의 음악의 의미와 역할, 우리 예술의 바람직한 세계화 등 흥미로운 테마에 대해서도 해설이 곁들여 진다(국립무용단 이송 해설).

13일은 ‘심청전으로 보는 창극 이야기’.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부터 ‘심봉사와 뱅덕이네의 만남’, ‘떼 봉사 등장’, ‘눈뜨는 대목’ 등 눈대목(하일라이트) 9곳을 자상히 설명한다. 국악과 판소리, 창극의 비교 등 관련 강의도 준비돼 있다(국립창극단 단장 최종민 해설).

14일의 주제는 국악의 현대화. ‘가자, 월드컵’ㆍ‘신(新)뱃노래’ 등 창작곡, ‘퐁당퐁당’ㆍ‘아기공룡 둘리’ 등 동요를 국악기로 연주한다.

뿐만 아니라 ‘첨밀밀’ㆍ‘고래사냥’ 등 인기 가요까지 근엄한 국악기로 흘러 나와, 진귀한 경험을 제공한다(국립국악관현악단 악장 김규형 해설). 이상 공연은 각각 80분 안팎으로 펼쳐진다. 8월 12~14일, 오후 4시.

이에앞서 7월 17일부터 펼쳐지고 있는 ‘퓨전 앙상블’은 이미 도발적 열기가 한창이다. 연극ㆍ무용ㆍ마임ㆍ음악ㆍ비디오 아트 등 25개 부문에서 대학 강사급 젊은 예술인 100여명이 모였다. 근엄하게 폼 잡기 일쑤인 전통적 장르 구분이란 기껏해야 거추장스런 편가르기일 뿐이라고 이들은 외친다.

댄스-뮤직-비디오, 모던 록 잼 콘서트, 아방가르드 댄스, 쇼 코미디 극 무용, 납량 특선 페인팅 무브먼트, 퍼포먼스 퓨전 국악 콘서트, 마임 무용 앙상블…. 8월 12일까지 별오름극장에서 펼쳐질 반란의 제목들이다.

7월31~8월 2일 마임과 댄스의 앙상블 ‘바다와 나비, 그리고 나’가 8월을 연다. 창작 무용 어법의 세계화ㆍ현대화를 목표로 하는 무용그룹 루트, 설치미술과 국악 등 인근 장르와의 연계를 구준히모색해 온 마임이스트 이태건이 함께 펼치는 무대다.

이어 8월 4~5일은 창작춤집단 ‘가관’과 국내 재즈 밴드 ‘레이지 먼데이’가 함께 꾸미는 무용 콘서트 ‘외계신호수신장치. 항상 주류 무용 어법의 전복을 꿈꾸는 무용단체(가관), 펑와 그루브감 등흑인적 어법을 중시하는 밴드(레이지 먼데이)가 빚어 올릴 반역의 무대다. 이 시대 젊은 감각들과 어느 정도의 감응을 이룰까.

7~9일은 댄스-뮤직-비디오 등 세 장르가 함께 빚어 올리는 퍼포먼스 ‘구라 구라’ㆍ‘여인들의 돈 이야기’. 제 2회 미래춤 비엔날레에서 안무상을 수상한 현대무용가 노정식, 무용ㆍ음악ㆍ영상을 결합한 퓨전적 비디오 작품을 선보여 온 창작 집단 ‘십만원 비디오’, 재즈ㆍ국악 등 각종 즉흥 음악을 반주로 신선한 작품을 펼쳐 보인 한국창작무용가 류경아 등이 함께 만든 실험적 작품이다.

마지막무대 ‘정중동(精中動)’이 11~12일을 기다린다. 신비로운 음률속에서 극히 절제된 움직임을 보여 준다. 김백기ㆍ오윤 등 한국실험예술정신(KOPAS) 소속 예술가와 퓨전 국악 그룹 ‘실크로드21’가 빚어 올리는 정중동의 무대다.

분명, 퓨전 앙상블에는 ‘열대야 페스티벌’이나 ‘해설이 있는…’ 같은 식의 낯익은 풍경은 없다. 어쩌면 열광도, 박수도 거기엔 없을 지 모른다.

그러나 대중이 열광하고 환호하는 무대만이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인가, 적어도 예술이라 한다면 뭔가 다른 자극-반응 양식이 있지 않을까, 우리 시대의 아방가르드란 어떤 것일까, 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퓨전 앙상블은 이 시대에 던지고 있다.

행사기간에 별오름극장 야외에서는 노천 카페와 아트 숍 등이 운영된다. 관객과 참여 작가 간의 대화가 가능하며, 대안 문화를 주제로 한 도서와 CD등 관련 상품도 판매된다(02)2274-1173.

장병욱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08/02 16:48


장병욱 주간한국부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