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여는 사람들](11)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홍효정 박사(上)

생쥐 단일클론항체의 인간화에 도전

"가장 가능성이 높은 새로운 암 치료약은 안티안지오제네시스(antiangiogenesis)제다. 이미 합성된 모노클론(단일클론)항체와 같이 세포의 혈액공급을 막는 이 화합물들은 암세포만 공격한다고 해서 '요술 탄환'이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중략), 암 종양도 정상세포와 마찬가지로 성장하기 위해 산소와 영양분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정상적인 조직에 길을 내고 필요한 물질을 받아들일 장치를 만든다. 마치 석유회사가 안정적인 원유 추출을 위해 지하에 관을 묻듯이, 암 종양은 스스로 캡슐형 관을 만들어 산소와 영양분을 계속 흡수한다. 종양이 생존을 위한 길을 낼 때 이를 막는 물질을 찾아내면 암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막을 수 있다."('타임'에서)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5월 '암정복, 새로운 희망'이라는 의학 기사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베일을 벗은 게놈 정보와 유전공학을 이용한 새 방식으로 암을 퇴치하는 치료제가 속속 개발되고 있으며, 일부는 임상실험에서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는 게 기사의 요지였다.

그중에서도 인체에 부작용이 가장 적으면서 치료 확률은 높은 방법이 인체내의 면역체계, 즉 항체의 작용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썼다. 바로 안티안지오제네시스제다. 이러한 연구가 타임지 보도처럼 서방에서만 이뤄지고 있을까? 아니다. 국내에서도 연구가 활발하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항체연구와 면역치료제 개발을 맡고 있는 홍효정(46)박사가 대표적이다. 연구원에서 단백질공학실과 항체공학실을 거쳐 1999년부터항체공학실험실 실장을 맡고 있는 여성과학자다.


인체내 면역체계 이용한 치료제 개발

홍 박사의 연구실도 연구원내 다른 연구실과 다를 바 없다. 좁은 공간 탓으로 많은 고가 장비를 복도에까지 내다놓았고, 본인은 손바닥만큼 남은 자유로운 공간에서 사람을 만나고 자료 정리를 하고 컴퓨터 작업을 한다.

어딘가 모르게 가냘퍼 보이는 체구와 수줍어하는 듯한 표정은 우리네 전통 어머니상을 연상케 하지만, 일에 대한 열정과 능력에서는 이미 세계적 수준에 올라섰다고 한다. 나직하고 조용조용한 목소리속에서도 언뜻언뜻 자신감이 내비친다.


- 인체의 면역체계를 이용한 치료제를 찾아낸다면 가장 인간화한 약이 되는셈인데요

"그렇지요. 모든 생물은 자연 치유능력을 갖고 있어요. 체내에면역체계가 형성돼 있거든요. 항체가 체내로 침투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붙어 이들을 죽이는 역할을 맡지요. 그래서 과학자들은 이 항체를 밖에서 대량생산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 꿈이 1975년 영국에서 이뤄졌습니다. 생쥐를 이용해 한 종류에 대한 항체(단일클론항체)를 대량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 그렇다면 어떤 바이러스는 인공적으로 대량 생산된 항체로 퇴치가 가능하겠군요.

"이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항체는 생쥐에서 만들어진 것이기때문에 인체에 주사하면 우리 몸 안에서는 이 항체들을 오히려 침입자로 간주해 공격합니다. 그 결과 부작용이 나타나고, 효능도 사라지지요."

홍 박사가 매달리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다. 유전공학기술을 이용해 생쥐의 단일클론항체를 '인간화'시키는 것이다.

생쥐 항체에서 바이러스와 직접 결합하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모두 사람 항체의 게놈(유전자염기)서열로 바꿔 체내에서 생성된 항체와 가장 비슷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항체는 우리 몸 속을 떠돌아 다니다가 어떤바이러스가 침입하면 그 바이러스에 달라 붙지요. 그리고는 세포를 성장시키는 성장인자를 막아, 그세포(바이러스)가 더 이상 살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건데, 인체 면역체계라는 게 바로 이런거지요"

이론적으로야 간단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바이러스는 각기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구조를 알아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또 특정 바이러스를 만날 때 가장 빨리, 그리고 쉽게 결합하도록 만들고, 인간화하는 작업도 거쳐야 한다. 각단계마다 처음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들이 시시각각으로 나타난다.

홍 박사가 녹십자에 넘긴 B형간염 항체는 이런 단계를 다 거친 것이다. 녹십자측은 이 항체를 치료제로 만드는 중이다. 조만간 B형간염 바이러스를 인체내 면역체계를 이용해 퇴치하는 치료제가 나올 것이다.

홍 박사팀은 또 LG측과는 관절염 치료제가 되는 항체를 찾아내 인간화하는 과정에 들어갔고, 암중에서도 가장 구조가 특이하다는 대장암에 대해서는 항원(바이러스)구조를 밝히고 있는 중이다.


B형 간염 항체연구 10년

그녀는 B형간염 연구에만 10년 세월을 쏟아부었다. 미국 연수(위스콘신대학)중 B형 간염 연구에 처음 손을 댔으니 그때부터 따지면 12~13년은 족히 된다. 면역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 피츠버그 대학 유학시절이지만 대학(서울대 미생물학)을 마치고 미국으로 떠나면서 운명적인 만남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처음부터 연구생활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과학자이기 전에 여성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유학중이던 피츠버그대학에서 3년만에 돌아온 것만 해도 그렇다. 남편(조규형 KAIST교수)과 가정을 위해 자신의 연구를 포기하고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 말았다.

그러나 중간에 그만둔 게 못내 아쉬워 KAIST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만학의 열정' 정도로 만족해도 될만한 상황이었으나 그녀는 만족하지 않았다.

"뒤늦게 다시 시작한 게 전화위복이 된 것인 지도 모르지요. KAIST에서 3년만에 분자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그때 '하나만' 제대로 하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 '하나만' 때문에 박사학위 취득후 홍 박사는 지방대학의 교수자리를 마다하고,1988년 KIST 유전공학센터에 포스트닥(박사후 연구원생)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1년후 미국으로 연수를 떠나면서 B형 간염연구에 눈을 돌릴 수 있었다.

한국인들에게 유독 많이나타나는 B형간염의 항체연구에 한번 도전해 보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홍 박사는 90년 3월 생명공학연구원으로 되돌아오면서 외롭고 긴 '간염 여행'을 떠나게 된다. <계속>

이진희 사회부 차장

입력시간 2001/08/0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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