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버지니아 주말의 결혼식

미국의 버지니아주는 포토맥강을 경계로 하여 메릴랜드주와 북으로 접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아팔라치아 산맥을 경계로 웨스트버지니아와 연결되어 있다.

이 아팔라치아 산맥을 가로질러서 나있는 것이 바로 아팔라치안 트레일(철로)이다. 이 트레일은 멀리 남쪽의 조오지아주에서부터 시작되어 북쪽의 메인주까지 뻗어있으며, 총연장은 2,160마일로 아팔라치아 산맥의 능선을 따라 죽 연결되어 있다.

미국은 동부의 아팔라치아산맥과 서부의 록키 산맥을 제외하고는 그리 큰 산들이 없이 가운데 넓은 평원지역이 펼쳐져 있기 때문에 아팔라치아 산맥은 바로 미국 동부지역의 산사람들이 주로 즐겨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 아팔라치아 산맥의 일부로 버지니아주에는 블루리지 산맥이 있다. 바로이 블루리지 산맥이 가까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Charlottesville이라는조그마한 도시가 있다. 버지니아 주립 대학이 있는 이 도시는 미국의 대부분의 대학도시가 그러하듯이 캠퍼스를 중심으로 세워진 아주 조용하고 정갈한 곳이다.

그뿐만 아니라 Charlottesville은 미국 헌법을 기초한 토마스제퍼슨이 살았던 곳으로 유서깊은 도시다. 따라서 주변을 둘러보면 미국 초기 역사를 알게 해주는 여러 가지유적들이 많이 있다.

특히 토마스 제퍼슨이 직접 설계하고 지어 살았던 집 Monticello는미국 5센트 짜리 동전의 뒷면에 새겨져 있을 정도이며 관광객들의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도 차일피일 미루면서 가보지 못했던 이곳을 지난주말에야 가보게 되었다. 주변에 가까이 지내는 분의 딸 결혼식에 초청을 받아 내려가게 된 것이다. 신랑이 Charlottesville에서 오래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집안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은 여느 미국 결혼식처럼 University of Virginia대학 내의 교회에서 간략하게 예배를 보며 성직자 앞에서 두 사람의 백년해로를 서약하며 반지를 주고받는 것으로 끝났다. 가까운 가족들과 친지들만 모여서 행하여진 예식은 진정으로 새 인생을 출발하는 신랑과 신부를 위한 행사라는 느낌을 주었다.

특히 재혼한 신랑의 아버지가 신랑 신부를 따라 현재의 부인과 함께 퇴장한 후 다시 들어와 신랑의 생모인 전부인과 팔짱을 끼고 또 한번 퇴장하는 모습은 새롭게 탄생한 한 쌍의 부부에게 보내는 온 가족의 축복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결혼식 후의 피로연은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신랑의 아버지 집에서 열렸는데, 전형적인 남부의 플랜테이션 저택이었다. 작은 자갈이 깔린 진입로 좌우에는 아름드리나무들이 서 있었고 넓은 뒷마당은 아이들이 축구하고 놀기에도 충분하였다.

정원의 한쪽 구석에는 가족들의 묘지가 정갈스럽게 모셔져 있기도 했다.

집안을 들어가 보니 마루 바닥이 그 집의 연륜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손님들을 맞는 곳인 듯한 리빙 룸에는 그 집안 사람들의 사진과 초상화가 죽 걸려 있어 집안의 내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1865년 4월자로 쓰여진 편지인데 남북 전쟁 당시 남군으로 나갔다가 북군의 포로가 되어 집에 있는 어머니에게 보낸 안부 편지가 조그마한 액자에 넣어져 보존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는 남북 전쟁 당시 조상들이 남군에 가입하면서 Lee 장군으로부터 받은 임명장 등이 자랑스럽게 걸려 있었다.

그것을 보니 필자가 결혼했을 때 예전 것에 취미가 많으셨던 지금은 돌아가신 빙부께서 모아두었던 옛날 선비들의 소품들을 보여주시며 흐뭇해하셨던 모습이 떠올랐다.

신랑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그 집은 1820년대에 지어진 것이며, 처음에는 부엌이 다른 부속 건물로 지어져 있었는데 허물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 벽돌로 다시 본 건물에 잇대어 새 부엌을 늘렸는데 그때가 1906년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오래된 건물을 잘 보존하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에 감탄하자, 아시아 국가의 건물들은 수백년이 된 것들이 있지 않느냐며 자신의 집은 그에 견줄 것이 못된다고 애써 겸양하였다.

우리 나라에는 그렇게 오래된 건물에 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며 짧은 역사지만 가꾸고 보존하는 정신과 어디서 왔는지를 막론하고 항상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개방성이야 말로 바로 오늘의 미국을 있게 한 밑거름 중의 하나가 아니었던가 생각해 보았다.

입력시간 2001/08/0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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