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화, 세계 속으로 대 도약

2001 서울국제만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시대의 성감대다. 단 한 컷의 그림 속에 촌철살인의 풍자가, 세계의 급소가 숨어 있다. 위선을 조롱하고 통념을 뒤집는다. 만화 정신은 그래서 시대의 통풍구다.

이 시대 세계 만화의 걸작이 서울에 모인다. 12~14일 코엑스 3층 컨퍼런스 센터에서 열리는 ‘2001 서울국제만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 2001:SeoulInternational Cartoon & Animation Festival)’.

기성 작가 작품의 전시, 아마추어 행사, 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는 물론 지원 행사와 투자 마켓까지 함께 펼쳐진다.

가장 큰 목적은 ‘애니메이션’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고 있는 갖가지 문화 현상을 한 데 집약, 펼쳐 보이는 허브(hub)를 조성하는 데 있다. 허브란 본디 컴퓨터와 컴퓨터를 유기적으로 연결, 인터넷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을 뜻하는 말. 이번 행사의 총체적 특성을 압축하고 있다.


명랑만화 주제로 다양한 이벤트 펼쳐져

SICAF는 한국 만화의 전통과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 1995년부터 펼쳐 오고 있는 대회. 첫회인 1995년에는 한국 만화의 역사, 96년은 인기 작가별 집중 탐구, 97년은 순정 만화, 99년은 SF 만화 등의 주제로 우리 만화를 조망해 오고 있다. 올해의 주제는 명랑 만화.

이른바 ‘명랑’으로 대표되는 만화적 이미지가 우리에게는 어떤 식으로 수용돼 왔는가를 보여 줄 자리다.

강영민, 구성규, 노재운, 박활민, 이발소 포르노(신일섭), 심대섭, 이동기, 조습, 최웅규, 졸라맨(김득헌),삼류천사 등 요즘 잘 나가는 신진 작가들의 걸작이 두르륵 꿰어진다. 신일섭의 만화 음악 퍼포먼스, All Lies Band 등의 엽기발랄한 볼거리가 탄성을 자아낸다.

이밖에 명랑 사진관과 만화방, 명랑뮤직 비디오, 명랑 캐릭터 미니어처 모형 등 각종 전시회는 물론, 명랑한 사진관과 만화방 등 퍼포먼스를 방불케 하는 갖가지 행사가 관객의 의식을 습격한다.

이상은 11~19일 코엑스 1층 태평양관에서 펼쳐지는 본행사다. 이밖에 여러 기획전들이 아쉬움을 달래준다.

‘반갑습니다! 북한 만화전’. 북한 만화그림책 49권, 애니메이션 90편등 북한의 만화가 총공개된다. ‘개미와 곰’ㆍ‘두 장군 이야기’ㆍ‘바우와 은별 소녀’ 등 일반적 우화뿐 아니라 ‘충성동이’ㆍ‘아음파의 비밀’ 등 김일성을 찬양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작품까지 선보여 더욱 호기심을 자아낸다.

독특한 웃음 구조를 가진 유럽 만화가 빠질 수 없다. 현재 유럽의 대표적 만화가로 부상한 신예 애니메이터 마이클 비트, 쉬테판 쉬플러 등의 단편 애니메이션 모음전이다. ‘아빠와 딸’, ‘샌드맨’, ‘스톤스’ 등 그들의 유쾌한 감성이 한눈에 드러나는 만화 또한 동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특별 기획된 성인용 애니메이션 작품은 마니아들의 관심을 더욱 고조시킨다. 일본 작가 우메즈 야스오미(梅津泰臣)의 최신작 ‘KITE’와 ‘메조포르테’는 일본의 발달한 하드코어 애니메이션의 실상을 똑똑히 확인케 한다.

영국 작가 필 멀로이의 ‘편견(Intolerance)’은 성기가 얼굴이고 얼굴이 성기인 사람들이 보여주는 해괴망칙한 생활상을 보여준다.

만화가 보여주는 그 같은 엽기적 상상력의 극치는 미국서 활동중인 러시아 애미메이터 이고르 코바요프의 ‘수탉! 그의 아내’. 교통 사고로 얼굴의 절반이 흉측하게 일그러진 한 남자가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 아내의 얼굴을 자기처럼 흉측하게 만들어버린다는 섬찟한 이야기다.

이밖에 어린 시절, 억압적이었던 어머니로 부터 받은 심리적 상처를 그린 이스라엘 작가 길 알카베츠의 ‘양크에일’, 사이버 세계가 얼마나 잔인할 수 있나를 보여주는 일본 작가 모리모토 코지의 ‘엑스트라’ 등은 아예 납량 특집 영화 뺨친다.


만화적 상상력의 극치 선보여

이번 SICAF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분야는 경쟁 부문. 영국 43편, 미국 16편, 호주 8편, 프랑스 10편을 비롯, 이탈리아 독일멕시코 에스토니아 스페인 브라질 스위스 헝가리 등 21개국에서 출품된 285편의 작품 가운데 걸러진 38편이다.

‘별주부 해로’ㆍ‘더 킹’ 등 국내 작품 21편을 비롯, 덴마크의 ‘헬프! 아임 어 피쉬’ 등 해외의 걸작이 나란히 선보인다.

특히 경쟁 부문 단편에 선정된 작품은 만화라는 매체가 포스트모던 시대의 삶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표현해 줄 도구인가를 확인케 할 기회다.

피아노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독일의 ‘상어와 피아노’,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의 비극을 그린 일본의 ‘유동적 세계의 이야기’, 비행중 새 열 마리를 만난 군용 정보기 조종사를 그린 한국 작가 하목전의 ‘오토’ 등은 그들이 펼치는 상상의 세계가 얼마나 다채로운지를 웅변한다.

아더왕의 전설을 소재로 마법 세계를 그린 프랑스의 ‘엑스칼리버’ 등은 판타지 소설의 광대무변한 상상력이 만화와 제대로 만났을 때펼쳐질 신비를 웅변하고도 남는다.

이번 대회는 직접 참관할 수 없는 만화팬을 위해 인터넷 상의 온라인 영화제도 마련했다. 현재 최고의 재패니메이션(일본 애니메이션)TV 시리즈로 각광받고 있는 ‘카우보이 비밥’ㆍ‘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등 200여편을 감상할 기회다.

또 현재 세계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거장을 초대, 강연을 펼치는 자리도 마련했다. 10~12일은 ‘메트로폴리스’의 감독 시게유키 하야시, 13~18일은 ‘아리테히메’의 감독 수나오 가타부치가 강사로 나선다. 물론 관객과의 대화도 마련돼 있다.

행사를 실제 시장과 긴밀하게 연결짓는 SPP(애니메이션 프리마켓)는 5회째를 맞아 처음 실시, 이번 대회의 위상을 새삼 과시한다. 정부기관, 제작 및 기획자, 투자자, 배급사 등 관련 기관을 모두 한자리에 연계하는 일종의 종합적 네트워크다.


애니메이션 활성화 주제 토론회도

굵직한 애니메이션업체가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토론회도 빠질 수 없다.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 업체인 한신 코퍼레이션, 일본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삐에로, 독일의 MDM-Mittel사, 미국의 CGI 등애니메이션 관련 업체가 한자리에 모여 애니메이션의 활성화를 주제로 의사를 교환한다.

이번 행사는 무엇보다, 한국 만화의 심기일전을 다짐하는 자리다. 그를 위해 SICAF는 한국 만화 파워 20인을 선정했다.

‘둘리’ 캐릭터를 개발해 만화를 산업화시킨 김수정 작가, 국내 애니메이션을 방송과 연계시키는 데 앞장서온 민영문 PD가 맨 선두로 선정됐다.

이현세, 양경일, 이두호, 허영만, 황미나, 박재동, 천계영, 양영순, 양재현,조신희 등 인기 작가가 그 뒤를 잇는다. 이 같은 결과는 SICAF가 만화 관련 종사자, 산업체, 협회, 단체, 학회 등 모두 838명의 전문인을 상대로 7월 6~28일까자 벌였던 설문 조사로 나왔다.

한국 만화는 이제 당당한 문화이며 황금알을 낳는 산업이다.

장병욱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8/07 19:41


장병욱 주간한국부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