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동 총리, 움직이나?" "이 총리 거취와 정계개편 *

당 복귀설 등 거취관련 '설'분분, 여권 당정쇄신과 맞물려

“이총리가 JP께 ‘휴가 잘 다녀오셨느냐’고 인사차 만난 거예요. 만나서도 당정 쇄신 등 정치 얘기는 전혀 없었고, 두 분이 수해걱정만 했어요.”

이한동 총리가 지난달 31일 낮 서울 신라호텔에서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와 오찬을 함께 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자들이 정부종합청사 9층 총리 비서실장 방으로 몰려갔을 때, 이택석 비서실장이 한 말이다.

그러나 기자들은 믿기지 않는 듯 “총리의 당 복귀설은 사실이냐”, “10ㆍ25 재 ㆍ보선 대책은 거론됐느냐”, “ 8월 임시국회에서 여권 공조방안에 관한 얘기는 나왔느냐”는 등 질문을 계속했다.

이 비서실장은 ‘아니오’를 연발했지만, 이 총리의 당 복귀설에 대해서는 “ JP도 총리교체 등은 생각하지 않고 있더라”며 이를 잠재우려 애썼다.

소문나지 않게 자주 만나는 두 사람의 이날 회동이 특히 관심을 모은 이유는 이 총리의 거취와 관련된 모종의 얘기가 오갔을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정가에서는 8ㆍ15를 전후해서나, 9월 정기국회 직전 여권이 당정쇄신을 단행, 진용을 재정비할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JP가 부산에서 6일간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터여서 이날 회동에서 ‘JP 부산 구상’의 일단이 드러나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이 총리와 JP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은 끝내 공개되지 않았다.


‘결단설’ ‘총리 고수론’등 엇갈린 주장

사실 총리 주변에서는 이달중 거취를 정리한다는 ‘결단설’부터 ‘총리직 고수론’까지 엇갈린 주장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우선 이 총리가 이 달 말께 총리직에서 물러나 당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결단설은 1년2개월간 재임하면서 행정총리로서 역량을 발휘한 만큼 이제는 대권행보를 가속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근거한다.

즉 대중적 인기가 취약한 상황에서 치밀한 ‘대권쟁취 플랜’에 따라 세불리기에 나서야 내년 대선정국을 기약해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여기에는 한나라당이 정기국회를 ‘이회창 대세론’ 확산의 계기로 삼으려 하고, 민주당도 대권 주자들이 연대론을 들고 나오는 상황에서 뒷짐지고 있다가는 대권 후보군에서 탈락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깔려있다.

또 10ㆍ25 재ㆍ보선을 앞두고 김종호 총재 권한 대행의 건강문제로 느슨해진 자민련의 구심력 강화를 위해 이 총리가 당으로 돌아가 직접 챙겨야 할 필요성도 크다는 것이다.

이총리를 따르는 외곽 인사들 가운데 일부는 이 총리가 실질적인 오너인 신당의 창당 문제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다소 실현성이 희박한 주장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민주당에서 후보 연대론 등이 나오는 등 이미 대선국면이 시작된 느낌”이라며“이 총리도 자신의 ‘왕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이달 중에는 뭔가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릴 것으로 안다”고말했다.

그러나 당분간 총리직을 고수할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결단설이 주로 외곽에 있는 이 총리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얘기라면, 총리직 고수론은 대개 이택석 비서실장등 총리를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총리실 측근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이 총리의 8월 또는 9월초 당 복귀설은 한목소리로 강력하게 부인한다. 우선 지금 당장 당으로 돌아가 봐야 몸집을 불릴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극한 대결로 치닫는 정치 구도에서 민주당과 공조하는 자민련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고, 당의 오너인 JP가 당을 직접 챙기고 있어, 이한동의 칼러를 보여주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이 총리의 직무수행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평가가 좋아 이 총리를 경질하는 당정 개편은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권 레이스가 본격화할 연말 이후 거취를 결정해도 충분하다는 게 이들의 기본적인 시각이다.

이택석 비서실장은 “정기국회를 코앞에 두고 인사 청문회 등의 절차를 거쳐야하는 총리 교체는 없을 것”이라며 “부산에서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JP도 총리교체를 생각하지않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측근은 “연말이후에야 어느 정도 대선정국의 가닥이 잡힐 것”이라며 “그 때까지 이 총리가 쉽사리 움직일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 총리가 결단을 내릴 타이밍은 민주당과 자민련의 합당, 여권 단일 후보 옹립 등 정계개편의 분위기가 무르익는 시점이고, 그 때까지는 총리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측근은 “어려운 경제 살리기에 매진해도 모자랄 판에 조기에 대권 레이스에 뛰어드는 것은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DJ휴가구상, 재ㆍ보선 대책 등이 변수

결단론이든, 총리직 고수론이든이 총리의 자유 의지를 강조한 것이지만 이 총리가 계속 총리직을 수행할 지 여부는 여권의 10ㆍ25 재ㆍ보선 대책과 이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당정쇄신 결단에 달려있다는 게 중론이다.

즉 5일 휴가에서 돌아 오는 김 대통령의 구상에 해답이 들어 있을 것이다.

현재 여권에서 제기되는 당정개편론은 10ㆍ25 재ㆍ 보선때 수도권에서 패배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되고 있다.

재ㆍ보선에서 참패할 경우 김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속화하는것은 물론 내년 지방 선거와 대선 패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전열 재정비를 통한 정면 돌파론이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김중권 민주당대표가 대표직을 사임하고 재보선에 나가거나, 경기 침체에 따른 경제 부총리 등 일부 부처의 장관을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바꿀 여지도 있어, 당정개편 가능성은 상존한다.

또 7월 한달 동안 실시된 사정당국의 장ㆍ차관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 결과 일부 인사들에게서 사생활 등 문제점이 포착됐다는 소문도 있어 당정 개편은 의외로 조기에 현실화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당정 쇄신 방안에 대해 희망 사항과 사실관계를 뒤섞은 각종 설과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다.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를 포함한 일부 부처의 장관을 먼저 교체한 뒤 당대표와 대통령 비서실장을 교체한다거나, 총리와 당대표, 대통령 비서실장의 일괄 교체가 고려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일각에서는 한화갑 최고위원을 민주당대표로 발탁하고, 여권의 또다른 대선 주자를 총리로 내세우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시나리오도 그럴듯하게 포장돼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대통령이“이대로는 안된다”는 판단에서 8월이나 9월초 조기 당정 개편을 단행할지, 아니면 정기 국회 및 10ㆍ25 재ㆍ보선 이후 연말로 미룰지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그 가능성을 반반으로 보고 있다.


대권 출사표 시기 저울질

따라서 이 총리도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배가하고 대권 도전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8월 또는 9월초, 연말, 내년 지방선거 2개월전(3월) 가운데 어느 때가 유리할지 시기를 저울질할 것으로 보인다.

이 총리의 행보나 주변 정황으로 보아 총리는 연말 이후를 자신이 출사표를 던질 적기로 판단할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이달중이나 내달 초에 당으로 복귀할 결심이 섰다면 지금 쯤을 정치적 행보를 본격 재개할 때인데, 그런 징후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총리로서는 대중적 지지도가 1%대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이 확고하지만, 합당 등 정계 개편이 이뤄져야만 대권도전의 문이 열릴 수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6~9일 휴가에서 이 총리가 어떤 구상을 가다듬고 돌아올지 주목된다.

박진용 정치부기자

입력시간 2001/08/08 15:27


박진용 정치부 hub@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