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만 관계개선 방법 많다"

인터뷰/ 리중루(李宗儒)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 대표

남북한 관계와 중국-대만 관계(양안관계)는 유사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갖고 있다. 세계 양대 분단지역으로서 동북아의 잠재적 분쟁지역이란 점에서 닮았다. 양안관계가 중국대륙의 개혁ㆍ개방으로 상호교류의 시대를 연 반면, 남북한간 교류는 아직 초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다르다.

20여년간의 비정치적 교류를 통해 ‘경제 통합체’ 형성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양안관계는 한반도에도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양안관계는 아울러 이 지역에 중요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한국에 상당한 외교적 부담을 안겨주고 있기도 하다.

양안관계는 최근 중국 우위로 힘이 쏠리는 양상이 더욱 급격해졌다. 2008년 올림픽 유치와 연말로 예정된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중국이 양날개를 단 반면, 대만은 경제불황으로 운신의 공간이 좁아지는 느낌이다.

6월 부임한 리중루(李宗儒ㆍ56) 주서울 타이베이 대표부 대표를 만나 양안관계와 한국-대만관계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리 대표는 1969년 대만(중화민국) 외교부에 몸담은 후 호주 대표와 잠비아 대사, 그리스 대표 등을 역임한 직업외교관으로 한국 근무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국익과 관련된 문제엔 적극성 띄어야”

리 대표는 상호 국적기 취항 재개(복항)를 비롯한 한국과 대만의 현안 문제에 대해 외교관적 수사를 사용해 해결방안과 전망을 밝혔다.

그는 한국이 중국과 국교를 맺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과 대만이 정부간 관계를 강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대만과 비공식적 관계를 갖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의 예를 들면서 한국이 국익과 관계된 문제에서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한국과 대만은 현재 전체 관계를 100%로 볼 때 관광, 경제, 투자, 문화, 유학생 교류 등 비정부 관계가 70%를 차지한다.

정부간 관계인 나머지 30%는 두 개 층위로 나눌수 있다. 상위 15%는 국서교환이나 고위 공직자 방문을 포함한 순수 외교적 관계다. 이 관계는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맺고 있는 상황에서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비자발급이나 통항, 관세협정 등을 포괄하는 하위 15% 분야는 비록 정부간 관계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국교가 없는 상황에서도 충분히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

하위 15% 외교관계는 70%에 달하는 양국의 비공식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정부가 필연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분야다.”

리 대표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남북한관계에서 중국이 행사하는 영향력을 인식해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한-대만 관계 발전에 반대하는것을 잘 알고 있다. 비공식적 관계 발전까지 반대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한-대만의 상위 15% 관계를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위 15% 관계에도 당연히 항의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하위 15% 관계에 대한 중국의 항의를 ‘가짜 항의’라고 본다. 대만의 국제적 고립을 위해 의례적으로 개진하는 항의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한국은 대만과의 비공식 교류 증진을 위한 외교관계를 추진할 권리가 있고, 여기에 대한 중국의 항의에 대해서는 중국을 설득시켜야 한다.”

리 대표는 복항과 관련, 한-대만단교 과정을 지적하며 대만의 체면을 살려주는 한국의 성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복항을 위한 절차적인 걸림돌은 없다. 다만 1992년 한국의 급작스런 단교조치에 대한 대만인의 감정이 적잖게 남아있는 것이 문제다. 한국이 대만인의 감정을 달래고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의 묘는 많다고 본다.

정부 고위관리의 비공식적 대만방문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중국이 반대하겠지만, 한국 경제단체 등 민간의 초청연설 형태를 빌리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은 모두 이런 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중국의 변화와 북한을 비교하며 “남북통일은 먼 미래의 일”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은 20여년의 개혁ㆍ개방 정책을 통해 경제적 자유화가 상당히 진전됐지만, 정치적으로 여전히 1당독재를 고수하고 있다. 정치적 자유화없이 양안이 평화적으로 통일되기는 어렵다. 남북한도 마찬가지 견지에서 볼 수 있다.

북한이 당장 개방을 한다 하더라도 남한과의 통일을 위한 경제통합의 기반을 조성하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양광정책(陽光政策ㆍ햇볕정책)이 방향은 옳지만 세월이 필요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중국과 대만사이에서 국익을 위한 독자적입장을 세웠으면 한다.”


- 중국의 2008년 올림픽 유치에 대한 대만의 입장은.

“정부든 민간이든 모두 환영하고 있다. 한국이 88올림픽을 통해 국가적으로 진일보한 것과 같이, 중국도 올림픽 개최로 모든 면에서 발전하기를 바란다. 중국이 발전하면 대만에도 좋다. 아울러 올림픽 개최 때까지 중국이 양안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 중국과 대만이 동시, 또는 잇따라 WTO에 가입할 가능성이 높다. WTO 가입이 양안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WTO는 ‘경제연합국’이다. WTO 가입은 무역에 의존하는 대만에 매우 중요하다. WTO에 가입하면 대만과 중국은 국제적 룰에 따라 움직이고, 무역상 분쟁을 해결할 것이기 때문에 양안관계에 긍정적이다.

WTO 가입은 양안관계 가속화는 물론이고, 3통(양안 직교류를 의미하는 통상ㆍ통항ㆍ통우)에도 유리할 것이다.”


- (야당시절 독립노선을 내세웠던)천쉐이비엔(陳水扁) 총통의 대륙정책은 무엇인가.

“대만 정부는 실질적이고 점진적인 통일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올 해 초 시작된 대만 도서지역과 대륙간 소(小)3통도 이런 견지에서 나왔다. 대륙인의 대만방문 개방과 대륙에 대한 대만 은행의 분사 설치도 고려되고 있으며 조만간 허용될 것이다.”


- 대만이 경제침체를 겪는 반면, 중국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어 양안관계에서 대만의 입지가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대만 경기침체에는 전세계적 불황의 영향이 크다. 아울러 현 정부가 집권경험이 없는데다 원내 소수세력인데서 오는 정치적 제약도 작용했다. 난국타개를 위해 현 정부는 공공투자 확대 등 경기부양을 추진중이다.

양안관계에서 대만의 입지가 약화되고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대륙의 성장속도가 빠르지만 아직 대만과는 차이가 크다. 지난해 대만 1인당 국민총생산(GDP)은 1만3000달러가 넘지만 대륙은 800달러에 불과하다.

우리는 대륙을 직접적인 비교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대만 기업의 대륙투자로 대만의 산업공동화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산업공동화를 피하기 위해 고기술ㆍ고난도 기술에 특화하는 산업구조로 바꿔 나가고 있다. 대만이 대륙과의 교역에서 계속 흑자를 보는 것은 핵심기술이 대만에 있기 때문이다.”


- 대만이 대규모 미제무기를 구매함에 따라 양안 군비경쟁과 대만 군사정책의 대미종속에 대한 우려가 있다.

“우리는 미국 뿐 아니라 프랑스 등 각국 무기를 수입하기 때문에 군사정책이 미국에 종속될 우려는 없다.

물론 과거에는 미제무기 수입이 압도적이었지만, 이는 미국의 ‘대만관계법’에 따른 것이었다. 미국의 대만관계법은 대만 방위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무기수입으로 군비경쟁을 초래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우리는 순수히 방위적 차원에서 무기를 들여오고 있다.”


- 중국의 발전에 따라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 통일방안에 대한 대만인의 지지가 늘고 있는데.

“압도적인 수의 대만인은 일국양제에 반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일국양제에 대한 찬성은 ‘부도덕’한 것으로 본다. 일국양제 찬성은 대륙의 13억 인구가 비민주적 일당독제체제에서 통치받는 현실을 추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대만은 자유민주국가이고 대륙은 독재국가라는 것은 분명하며, 이런 점에서 대만은 체제 우월성을 갖고 있다. 현재 대만과 중국은 동등한 국가로서 계속적으로 통일문제를 논의하는 관계에 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8/08 18:35


배연해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