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신사참배와 일본의 오욕

지난 6월에 나온 햄프톤 사이드스의 논픽션 ‘고스트 솔져즈(Ghost Sodiers)- 잊어버렸던 2차대전 중 가장 극적인 임무’는 뉴욕타임스가 집계한 이번주 베스트셀러에서 2위로 올라섰다.

10주 가량 10위안에 머물렀던 이 책이 요즈음 세계적인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사자머리의 59세 나이에 168㎝ 60kg의 왜소한 체격을 가진 고이즈미 총리의 인기(?) 덕에 8ㆍ15 대(對) 일본 승전일을 앞두고 순위가 올라 갔는지 모른다.

그러나 딱히 그런 것 같지 않다. 작가 사이드스는 잡지 ‘아웃사이드’, ‘뉴 리퍼브릭’ 등의 외부 기고가로 꽤나 알려져 있다.

그가 이번에 쓴 1945년 1월28~31일 필리핀 루손 섬에 상륙한 미 제6군 제6 레인저 대대 120여명이 펼치는 미군 500여명에 대한 구출 작전은 여느 전쟁 서적과 다르다. 3년째 일본 포로 생활을 하던 이들 500여명은 학살직전에 내몰려 있었다.

저자는 애국심을 과장하거나 부추기지 않는다. 다만 ‘죽음 행군 900km’를 걸어 1942년 4월 일본 14군에 항복한 미군 2만여명중 생존자 500명과 이들을 구출하려는 미국 특수 경보병부대인 레인저, 필리핀 게릴라 80여명를 세밀하고 냉정하게, 인간적인 눈길을 갖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이를 증명 하듯 이책 317쪽 마지막 5줄에 사이드스는 담담하게 이 책을 낸 이유를 썼다. 미 육군 바탄 주둔 31연대 3대대 군의관인 랄프힙브스 대위(아이오와 의대 졸. 2000년 6월 사망)는 1942년 4월 9일 일본군 포로가 된 이후 미국의 성조기를 1945년 1월 31일 필리핀 중부 갑비아 시 외곽에서 처음 볼 수 있었다.

성조기는 탱크의 포탑 위에서 조그맣게 휘날리고 있었다. 힙브스 대위는 순간 가슴이 멈추는 듯했다. 그와 함께 트럭에 탔던 포로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일어나 탱크 위 성조기를 향해 경례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모두 엉엉 울었다. 어떤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으면서…”

맥아더 장군은 1945년 2월 이들 포로들이 수용된 병원을 방문해 바탄 시대의 의무참모(힙브스 대위)가 오랜 포로 생활에서 생환한 것을 보고 장군 답지않게 눈물을 흘렸다. “너무 시간이 오래걸렸네.”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5년 샌프란시스코에 귀환한 200여명의 포로들에게 직접 사인한 편지를 보냈다.

“여러분들은 외국 땅에서 용감히 싸웠다. 그리고 너무많은 고통을 겪었소. 신이 여러분에게 행복을 주고 빨리 건강을 회복하길 바라오”

이런 성조기에 미군은 승자 였기에, 포로에서 구출되었기에 눈물을 흘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포로를 구출한 레인저들은 “당신들은 미군이기에 구출 되어야 한다”고 그들의 목숨을 바쳤다.

일본의 작가 오오오카 쇼오헤이(1909~1988년)는 필리핀 레이더 섬에서 사병생활을 했고 1945년 12월 미군 포로가 되었다가 귀환했다.

그는 전쟁 전에도 소설을 썼으며 전후에는 천황을 ‘안스럽다’ ‘가엾다’고 보고 일본이 패전에서 ‘오욕’을 느끼고 패배를 자성할 때 전범을 제외한 300여만명 일본군 영령이 제대로 야스쿠니에 안치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본토 점령군이 된 미군은 ‘미트볼’ 로, 일본군의 포로였던 미군들은 ‘당나귀 똥구멍’이라고 불렀던 일장기, 히노마루에 대해 색다른 이해를 갖고 있었다.

“자위대 간부 따위로 출세한 원래 직업군인이 신성한 히노마루 아래서 미국식으로 꿰어맞춘 군사 대열 같은 것을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부아가 치민다. 창피 한 줄 몰라도 분수가 있지.

포로수용소에서는 국기를 만드는 것이 금지 되어 있었다. 귀환 일이 되어 배를 타기 위해 뗏목에 실려 갔더니 우리가 타게 되어 있는 배는 귀환선으로 전락한 ‘시나노마루’였다. 선미에 히노마루가 걸려 있었다.

바닷바람에 더럽혀져 꾀죄죄한 히노마루였다. 내가 사랑하는 히노마루는 이런 더럽혀진 히노마루지,‘건국기념일, 부활촉진 국민대회’ 같은 곳에서 흔들어 대는 장난감 히노마루 같은 것은 똥이나 처먹으란 뜻에 불과하다.”

필리핀에서 사병 생활을 한 오오오카는 6년 동안의 집필작업을 거쳐 마침내1971년 ‘레이더 전기(戰記)’를 완성했다.

이 책은 수많은 병사 이름, 부대명 등이 기록되어 있고 이 같은 이름 등을 문고판으로 정리한 색인만 해도 70쪽에 달한다. 이 때문인지 일본 정부는 그에게 예술원 회원과 문화훈장을 수여하려 했지만 그는 수상을 거절했다.

“나의 경력에는 전시중포로였다는 부끄러운 ‘오점’이 있습니다”면서.

메이지 대학 교수며 문학 비평가인 가토오 노리히로는 1997년 나온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오오오카의 이 ‘오점’에서 출발해야 일본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한국과 중국 등과의 관계도 원만해 진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사이드스와 가토오의 책을 꼭 읽었으면 한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1/08/1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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