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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일본(71)] 하이쿠(俳句)

일본 문학사의 거봉으로 한국 현대문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년)의 문학 여정은 일본 전통의 정형시인 '하이쿠'(俳句)에서 시작됐다.

어린 시절 한문과 한시에 심취했던 그는 도쿄(東京)대학 교양학부의 전신인 제1고등학교시절동갑내기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와의 친교로 하이쿠에 눈떴다. 마사오카는 오늘날의 하이쿠를 있게 한 하이쿠 혁신운동의 기수였다.

대표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등의 풍자소설도 하이쿠 동인지인 '호토토기스'(杜鵑·子規·不如歸)를 통해 발표됐다. 그의 소설은 지금도 당시의 일본어를 가장 정확하게 담았고, 소설 문체로는 보기 드물게 축약된 언어로 명징한 이미지를 드러낸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가 소설가이기 이전에 하이쿠 시인, 즉 '하이진'(俳人)이었기 때문이다.

5·7·5의 17음절로 이뤄지는 하이쿠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형식이다. '가능한 한 의미를 가득 충전한 언어야말로 위대한 문예'라며 시를 최고의 문학으로 친 에즈라 파운드의 말을 빌자면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시중의 시'인 셈이다.

짧은 정형시를 위해 언어 다듬기를 반복했던 나쓰메 소세키의 몸에 밴 버릇이 나중에 소설에도 그대로 적용됐다고 볼 수 있다. 그는 '萩に置く, 露の重さに病む身かな'라는 하이쿠를 남겼다.

그대로 읽으면 '하기니오쿠(5)쓰유노오모사니(7)야무미카나(5)'이다.'싸리에 얹힌 이슬의 무게에 병드는 몸일까'로 직역되지만 '싸릿닢에 맺힌 이슬처럼 짧은 삶일까'란 뜻이 된다. 그냥 '이슬'이 아니라 '이슬의 무게'라는 표현은 '병드는 몸'의 어둡고 무거운 이미지와 닿아 있다.

또 '야(病)무'는 발음이 같은 '그치다, 멈추다'를 뜻하는 '야(止)무'와이어져 '이슬처럼 끝나는 삶', 또는 '이슬의 무게에 지나지 않는 삶'을 떠올리게 한다.

짧은 시에 의미를 담아 내려면 이런 이미지의 복합을 피하기 어렵다. 다만 이런 중의나 이미지 덧붙이기에는 어느정도 보편성을 획득한 시어가 선택된다는 점에서 이해와 공감에 커다란 어려움이 없다.

오늘날 일본에서 하이쿠를 짓고 크고 작은 시모임인 '구카이'(句會)에 나오는 사람은 500만~1,000만명으로추정된다. 그만큼 하이쿠는 대중적 문학이다. 순간적으로 이미지를 포착, 눈앞에 보듯 펼쳐야 하는 쉽지 않은 작업에 이만한 인구가 나설 수 있는것은 정착된 기본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5·7·5의 음율은 일본인들의 입과 귀에 익숙하다.

또 하이쿠의 필수 요소인 '기레지'(切字)와 '기고'(季語)도결과적으로 쓰기와 이해를 돕는다. 기레지는 의미 단락과 호흡을 끊어주는 글자이다. 기레지는 과거 18종류가 지정되기도 했지만 현대의 하이쿠에서는 특별히 구애를 받지 않는다.

다만 짧은 시인만큼 같은 글자의 중복은 금기로 하고 있다. 위의 하이쿠에서는 5음절째의 '쿠'가 기레지에 해당한다.'싸리에 얹힌' 하고 잠시 호흡을 멈춤으로써 가녀린 싸리나무의 모습을 연상시킨 후에 시를 이어간다.

한편 계절을 나타내는 기고의 역할도 비슷하다. 예로 든 하이쿠에서는 '이슬'이 기고이다. 이슬은 언제든 맺힐수 있지만 가을을 나타낸다. 계절 감각이 들어 있는 포함된 '봄바람' 등의 기고도 있지만 그냥 '개구리'는 봄, 그냥 '달'은 가을, 그냥 '꽃'은 봄을 나타낸다.

하이쿠의 오랜 약속이다. 봄비인 '하루사메'(春雨)나 장마비인 '사미다레'(五月雨), 초겨울비인 '시구레'(時雨) 등은 계절 감각은 물론 특정의 이미지에 한정돼 있다.

가늘게 내려 촉촉하게 젖어드는 감미로운 봄비, 치적치적 어둡게 내리는 장마비, 짧고 차갑게 내리는 겨울비 등의 이미지가 굳어져 있어 '봄비여'로 시작되는 하이쿠에서 생명의 부활을 재촉하는 역동적인 이미지나 이별의 고통을 파고 드는 설움을 떠 올리는 것은 시상의 낭비이다. 정착된 이미지를 따라 가면서 작고도 깔끔한 시상의 변화와 반전을 즐기면 그만이다.

하이쿠는 에도시대에 서민들 사이에까지 크게 성행했지만 그 명칭은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에 일반화했다. 그때까지는'홋쿠'(發口)라고 불렸다.

5·7·5 음율의 장구와 7·7 음율의 단구를 2명 이상이 번갈아 주고 받으며 36수나 100수에서 끝내는 '렌쿠'(連句),'렌카'(連歌)의 첫 구절의 이름이었다.

렌쿠, 렌카 가운데 정통에서 벗어나 골계(滑稽), 즉 풍자와 익살을 담은 것을 '하이카이'(俳稽)라고불렀다.

하이쿠는 '하이카이'의 '홋쿠'가 독립한 시형식이다. 서민의 풍자·익살이 무성했을 터이나 지금은 차분한 정서를 주로 담아 내고 있다. 대신 서양 외래어를 자유롭게 차용하는 등 대중성을 얻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입력시간 2001/08/1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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