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항공시대를 여는 주역들] FX사업과 공군

차세대 전투기 선정은 성능·기술이전·가격+a

“차세대 전투기는 한국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4개 기종 중 하나가 선택되는 것이다.”

기종선택을 놓고 저울질중인 차세대전투기(FX) 사업을 놓고 국방부 관계자가 한 이야기다. 한국측에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업체의 기종이 선택된다는 의미다.

현재 FX사업에서 경합중인 기종은 미국 F-15K와 프랑스 라팔, 영국ㆍ독일ㆍ이탈리아ㆍ스페인 컨소시엄사의 유로파이터-2000, 러시아 SU-35. 4개 기종이 모두 공군의 작전요구성능(ROC)을 충족한 상황에서 ‘보따리를 확 풀어놓고’ 조건을 제시하는 업체가 유리할 것은 물론이다.

현재 FX사업은 대통령의 최종 재가를 포함한 총 7단계 중 3단계에 와 있다. 3단계는 가격을 제외한 각종 조건을 협상하는 단계. 1단계 시험평가, 2단계 기술검토를 거친 FX사업은 3단계를 지나면 4단계 가격협상, 5단계 비용 대 효과 분석, 6단계 기종결정, 7단계 사업승인 건의 및 대통령의 재가 순으로 진행된다.


4개 기종 작전요구성능은 충족

3단계는 기술이전과 부품 국내생산물량, 항공기 창정비 능력 제공에 대한 각사의 조건에 대해 개별 협상하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 한국은 각사가 제시하는 이전 기술의 내용을 식별ㆍ평가하고, 각사는 한국측의 반응을 봐가며 추가적인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 8년에 걸쳐 4조원 이상을 투입할 FX사업은 40대의 전투기를 직구매할 예정이다.

한국측의 조립분과 면허생산분이 배제된직구매 조건 하에서 3단계 협상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이 FX사업에서 2가지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두가지 목적은 공군 전력증강과 함께 장차 독자기술 전투기 생산을 위한 기술축적이다.

후자를 위해서는 협상에서 최대한의 기술이전 조건을 끌어내야 한다. 한국측은 전량 직구매하는 대신 총비용의 70%에 달하는 2조8,000억원 상당을 기술이전과 국내 부품생산 등 형태로 환수하기로 했다. 이른바 ‘절충교역’ 이다.

3단계 협상중인 한국측 입장은 확고하다. 국방부 관계자는 “제시하는 기술의 종류가 아무리많더라도 전투기 제작을 위한 핵심기술이 빠져 있으면 해당 업체는 탈락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연내 계약이 목표지만 조건이 안맞으면 더 늦출수도 있다”며 기술이전과 가격 조건에 대한 결의를 밝혔다. 3단계 협상에서 4개사는 제시해야 할 기술이전 조건 등을 놓고 서로간에 치열한 눈치ㆍ정보싸움을 벌이고 있다.

국방부의 이 같은 협상전략에도 불구하고군 안팎에서는 FX사업 진행에 상당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기종선정 과정과 기종선정 시점에 외부요인이 고려될 가능성 때문이다. 기종선정에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작전성능과 기술이전 및 가격조건이다.

우선 가격은 4개 기종 중 SU-35가 가장 싸고, 이어 F-15K, 라팔, 유로파이터 순이다. 기술인도 조건은 현재 협상이 진행되고 있어 마지막으로 뚜껑이 열리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문제는 작전성능이다. 국방부 시험평가단이 이미 평가를 끝낸 4개 기종의 작전성능 평가는 보안에 부쳐지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전투기의 기동성과 무장력, 디지털 기능 등에 대한 평가단원들의 개인적 선호가 달라 기종간 우열을 못박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일부 조종사들은 F-15K가 무난하기는 하지만 한 번은 유럽기종을 선택함으로써 군수획득의 다변성과 대미협상력을 높일 필요도 있다는 견해를 보이기도 한다.


성능과 정치적 고려 사이에서 고민

이 같은 상황은 정치적인 고려와 맞물려 국방부 당국자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 고려란 햇볕정책과 관련한 미국의 지지 여부와 기종선정이 함수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에 대한 ‘선물’의 형태로 기종이 선정됐을 경우 군 안팎 여론 설득이 간단치 않다는 점에서 국방부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사평론가 김종대(37) 씨는 “F-15K로 선정될 경우 후속군수체제에 상당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차세대전투기는 30년을 운용기간으로 하고 있지만 현재 F-15K의 상황으로 볼 때 후속군수지원은 길어야 20년밖에 되지않는다는 분석이다

. 마지막 10년간은 대책이 없기 때문에 중요부품의 경우 ‘동류전환’이 불가피해진다는 우려다. 동류전환은 같은 기종을 해체해 부품을 조달하는 방법이다.

김씨는 “미국이 과거에도 F-16 전투기와 M-48 전차 등을 팔면서 후속군수지원을 약속해놓고 지키지 않은 전례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유로파이터와 라팔은 초도 생산기이기 때문에 후속군수지원은 원칙적으로 문제가 없다.

이와 함께 기종선정이 내년으로 연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김정일의 답방을 추진중인 정부가 답방 전 기종선정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연내 기종선정과 계약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업지연은 물론이고 물가상승으로 인한 사업비 증가와 대외 신인도 하락 등의 부담이 따른다. 이 대목에서 공군의 걱정은 상당하다.

공군의 우려는 기존 전투기 노후화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현재 운용중인 공군세력 중 F-16을 제외한 F-5 제공호와 F-4 팬텀이 노후해 늦어도 2010년까지 도태시켜야 하기때문이다.

2000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보유 전투기는 540여대. 이중 사용연한에 다다른 F-5와 F-4를 도태시키면 공군전력은 현재보다 대폭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전력공백 우려는 FX사업지연과 규모축소에 기인한 바 크다. FX사업은 1988년 합참이 최초 소요제기했을 때 180대를 도입하는 것으로 구상됐다.

하지만 1998년까지 10년간 3차례의 조정을 거치면서 40대 수준으로 축소됐다. FX사업이 개시돼 차세대전투기가 도입된다 하더라도 전체 공군 규모는 줄게 된다. 국방부가 뒤늦게 F-5 전투기 수명연장을 추진중인 것은 이 때문이다.


전력공백 우려, 조기추진 불가피

공군의 전력공백 핑계를 FX사업축소와 지연에서만 찾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견해도 있다. 김종대씨는 “군이 성능개량을 통해 기존 전투기를 오래 운용하기보다는 새로운 소요제기에만 열을 올려왔다”고 지적했다.

전투기 성능개량은 기체와 무기체계 개선을 통해 수명을 늘리고 전투력을 보강하는 것을 말한다.

군의 이 같은 행태는 1994년 착수단계에서 취소돼버린 F-4 성능개량사업이 대표적이다. 당시 군당국은 F-16 도입으로 구세대 F-4 성능개량이 불필요하다며 사업을 취소해버렸다.

이에 대해 공군측은 “포니를 그랜저로 업그레이드 시킬수는 없다”는 논리로 반박하고 있다. 성능개량의 한계점까지 와있는 기종을 아무리 보강한다하더라도 작전능력은 제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유가 어떻든 FX사업 조기추진은 결과적으로 불가피하게 되고 말았다. 기존 전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대체전력까지 강구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직무유기이기 때문이다.

한국 무기획득체제의 고질적 악습은 명백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FX사업의 뒷맛을 개운치 않게 만든다. 후속군수체제에 대한 면밀한 고려없이 추진할 경우 차세대 전투기도 또다시 ‘돈 값’을 못하고 조기 퇴출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8/14 18:44


배연해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