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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반도체, 죽 쑤는 경제

IT산업 침체로 가격폭락, 경기회복의 가장 큰 변수

“반도체 가격이 바닥에 다다르고 있다. 최악은 지난 것으로 보인다.”(메릴린치수석 애널리스트 조 오샤)

“시장이 나아지고 있다는 징후는 없다. D램 경기침체는 지속되고 있다.”(UBS워버그증권)

“반도체 경기는 하반기부터 완만하게 회복될 것이다. 나아가 향후 10~15년간 연평균 10% 이상의 안정적 성장을 계속할 것으로 본다.”(세계 최대의 비메모리 반도체 수탁업체인 대만 TSMC사의 모리스 창사장)

“세계반도체 시장침체는 2005년까지 계속될 수도 있다.”(시장조사기관IDC)

일기예보와 경기전망의 공통점은 누구도 내일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것. 그래도 일기는 현재 시점의 날씨는 흐린 지 맑은 지 알 수 있지만, 경기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지조차 분간할 수가 없고 그저 몇 달이 지난 뒤 사후적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

현재의 반도체 경기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나아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더 나빠지고 있는 것인지 누구도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진단과 전망도 십인십색(十人十色)이다.


반도체ㅇ에 목 맨 한국경제, 타격 심각

반도체 경기는 무차별 동시불황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세계경기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야 정보기술(IT)산업이 회생하고, IT 경기가 회생해야 세계경기가 반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의 장래는 칩을 생산하지 않는 국가나 기업에게도 초미의 관심사일수 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반도체의 의미는 남다르다. 반도체 가격의 회복여부와 그 시기는 두가지 차원에서 한국경제의 향후 진로에 가장 큰 변수가 되고 있다.

첫째는 반도체의 막대한 국민경제적 영향력이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은 260억달러로 전체 수출의 15%를 차지했다. 단일 수출품목으론 가장 큰 비중이다.

하지만 올해는 세계 IT경기침체에 따른 가격폭락으로 200억달러나 겨우 넘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가 뒷걸음질치는 한 5개월째 감소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수출의 플러스 반전은 기대할 수 없으며, 국내총생산(GDP)의 45%를 차지하는 수출부문의 부진이 지속될 경우 전반적 경기상승은 요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손톱 크기의 실리콘 칩 위에 한국경제 전체가 얹혀져 있다해도 과언은 아니다.

둘째는 하이닉스 반도체의 문제다. 하이닉스는 한국경제의 아킬레스건이자, 구조개혁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기업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회사채 신속인수제도와 대규모 외자유치, 자산매각을 통해 지금까지는 정상가동되고 있지만, 하이닉스가 부실을 털고 정상화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만에 하나 하이닉스가 침몰한다면 기력을 상실한 한국경제는 그 충격을 감당하기 어렵다.

하이닉스의 장래를 결정하는 것은 정부ㆍ채권단의 지원도, 자구계획 이행도 아닌, 반도체 가격의 조기회복이다. 세계시장의 17%를 점유한 D램 반도체 월드랭킹 3위의 하이닉스가 궁극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제반도체 가격이 회복되는 것이다.

올2ㆍ4분기 반도체를 1,000원 어치 팔 때마다 229원씩 적자를 내는 심각한 수익구조악화를 기록한 하이닉스로선 회사채 신속인수제가 종료되는 내년초까지는 어떻게든 반도체값이 올라 독자적 수익모델을 창출해야만 한다.

이는 하이닉스나 채권단 뿐 아니라, 한국경제 전체를 위해서도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반도체 가격이 바닥권에 진입한 것은 어느 정도 확실해 보인다. 지난해 8월 개당 8달러에서 1년만에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 1.3달러까지 떨어진 128메가 SD램 가격(주력품목)은 7월이후 추가 하락없이 한달 이상 횡보하고 있다.

아무리 업체들이 출혈경쟁을 한다해도 생산원가를 감안할 때 더 이상 떨어지기는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그러나 문제는 반등시기다. 바로 치고 올라가는 V자형을 그릴 것인가, 아니면 시차를 두고 완만하게 서서히 회복되는 U자형이 될 것인가, 혹은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장기간 침체국면이 지속되는 L자형을 띨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지만, 현재까지 분명한 것은 가장 바람직한 V자형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는 점이다. 장기불황으로 가거나, 아니면 감질나는 회복곡선을 그리거나, 둘 중 하나다.


감산 모험 하이닉스 정상화 여부가 관건

기대를 걸었던 감산에 의한 반도체 가격회복는 이미 물거품이 된 상태다. 하이닉스를 비롯, 도시바 NEC 등반도체 메이커들의 감산발표가 잇따랐지만 시장반응은 아주 냉담했다. 원인은 메이저 업체들이 동참하지 않는, 소수업체들의 ‘나홀로 감산’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1위 삼성전자, 2위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3위 하이닉스 반도체, 4위 인피니온등 4강 체제로 짜여져있다.

비록 하이닉스가 감산에 들어갔지만, 삼성전자와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인피니온 등 나머지 대형업체들은 꼼작도 않고 있다.

더구나 하이닉스의 감산품목은 사실상 한물간 64메가 SD램이어서, 128메가 및 256메가 SD램이 주도하는 반도체 주력시장엔 전혀 영향을 주지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감산을 통해 반도체 값이 오른다면 삼성전자도,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도, 인피니온도 모두 수익이 개선될 수 있다. 그럼에도 메이저 업체들이 감산 대신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까닭은 이번 불황을 시장지배력 강화의 계기로 삼겠다는 전략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고부가 가치제품인 256메가 D램이나 램버스 D램에서 비교우위를 확보했기 때문에 아쉬울 것이 없다는 입장이며, 하이닉스와 제품구조가 유사한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차제에 하이닉스를 완전히 따돌리고, 세계반도체 시장을 삼성전자와 2강 구도로 끌고가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인피니온 역시 하이닉스를 제치고 3위로 올라서겠다는 구상이다. 현 반도체 시장은 모두가 자금난에 허덕이는 하이닉스를 공격하는 살벌한 정글과도 같다.

반도체는 한번 시장지배력을 상실하면 다시 복원하기 힘든 독특한 산업이다.

때문에 ‘공조감산’에 대한 확신없이 주력품목에 대한 감산은 ‘자살행위’가 될 위험이 높다. 하이닉스로선 마이크론과 인피니온의 협공에 밀리지 않기 위해 출혈생산을 계속할 수 밖에 없고, 결국 공급과잉에 의한 가격침체는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 경쟁구도하에서 감산은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PC수요 제자리, 회복기미 안보여

공급축소(감산)의 효과 만큼 수요회복의 기미도 아직은 요원하다.

반도체값이 뛰려면 무엇보다 PC수요가 늘어나야 하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하에서 새로운 PC를 사는 쪽은 많지 않다.

신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윈도우프로그램이 출시되고, 연말연시 선물수요가 몰리면 하반기부터는반도체 생산이 활기를 되찾을 것이란 관측도 있지만, 획기적 반전가능성은 여전히 희미해 보인다. 하반기 한국경제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것도 바로이 때문이다.

이성철경제부기자 sclee@hk.co.kr

입력시간 2001/08/1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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