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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름] 서울 용산구 용산동(龍山洞;해방촌)

광복과 더불어 해외에서 돌아온 동포들과 6ㆍ25동란 전후하여 북한에서 월남한 동포들이 모여살면서 이뤄진 동네, 광복 뒤에 생긴 동네라는 뜻으로 해방촌이라 불리던 마을.

그 해방촌을 1946년 5월 8일, 다시 용산구에 딸린 마을이라 하여 용산동으로 고친 것이 남산기슭 서남쪽에 자리한 오늘의 땅이름.

그 용산동(해방촌)에는 해방촌 답지 않게 ‘서울속의 미국땅’으로 불리는 미8군 사령부가 있다.

7세기 중엽, 당나라가 백제의 옛땅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한 이래 오늘의 주한 미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 주둔한 외국군대의 지배사를 천착한 책 ‘한반도의 외국군 주둔사’(이재범저)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근세들어 외국군대가 이땅에 주둔하기 시작한 것은 1882년 6월 임오군란으로 쫓겨난 명성황후가 권력을 되찾기 위해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이면서 부터다. 이후 이 땅에는 일본, 청국, 러시아, 미국 등 한반도 주변 열강의 군대가 돌아가며 주둔해왔다.

특히 남한 땅에는 그 이후로 현재까지 외국군대가 주둔하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외국군대의 주둔을 부끄럽게 여기기는 커녕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외국군에 매달리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는 점이다.

1884년 청국이 베트남 종주권을 둘러싸고 프랑스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임오군란 이후 조선에 주둔시키던 병력 4,000명 가운데 절반을 철수시키려 하자 당시 민씨 척족의 우두머리였던 민영준은 청나라 군문을 문턱이 닿도록 들락거리며 철군 보류를 애걸했다.

또, ‘을사조약’ 체결 후 법무대신 이하영은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에게‘조선의 치안이 인정되기 전에는 절대로 일본군을 철수시키면 안된다’고 매달렸다.

이처럼 이 땅을 거쳐간 수많은 외국군 가운데 상당수는 극소수 지배집단이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애걸해서 불러들인 반민족적사리의욕의 결과였다. 그 때도 그들은 외국군을 끌어들이는 명분으로 ‘안보(安保)’를 내세웠다.

그러나 그 ‘안보’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안보’라기보다는 그들의 부도덕한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안보’였음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한편 외국군대의 주둔은정치, 군사적 측면과는 별개로 우리 문화와 풍속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TV사극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마마’나 임금님의 밥상을 뜻하는 ‘수라’, 궁녀를 뜻하는 ‘무수리’가 몽고 지배의 찌꺼기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몽고지배 아래서 고려의 상류층은 고려식 이름이외에 대부분 몽고식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보기가 이자춘(이성계 아버지)으로 그의 몽고식 이름은 우루티무르 였다. 개항기 이래 이 땅은 외세의 각축장, 더러는 외세의 전쟁터가 되기도 했다”라고 쓰고 있다.

해방촌! 광복(해방) 전 이곳에는 일본군의 총독부격인 조선군사령부가 있었다. 광복(해방)되자 이곳은 일본군에서 미군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1906년 일제가 이곳에 군사기지를 만든 이래 1세기 가까이 이곳은 해방된 땅이 되어본적이 없다.

어떤 명분으로도 외국군대를 이땅에 들여놓고 자주와 독립, 국가적 자존을 운위할수 없는 노릇이 아닐까.

해방을 희구하면서…, 해방촌!

이홍환 한국땅이름학회 이사장

입력시간 2001/08/2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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