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피라미드 사기] 고소득 유혹… 넘어가면 말아먹는다

현실성 없는 수익구조, 청소년·주부 등 피해사례 급증

윤구성(23ㆍ가명)씨는 두 달전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분이 가시지 않는다. 전문대를 나와 중소기업 전산실에서 근무하던 윤씨는 올해초 e메일을 검색하던 중 정OO라는 여성 이름으로 들어온 메일 한 통을 발견했다.

‘허락 없이 글을 올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평생의 행운이 될 것 입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이 메일에는 가입비 30만원에 매달 2만원씩 내면 6개월 뒤부터 매달 500만원, 1년 뒤에는 월 3,000만원 이상 벌게 해주겠다는 내용의 글이 실려 있었다. 하루 걸러 야근을 하면서도 월 150만원이 안 되는 급여를 받던 윤씨는 귀가 솔직해졌다.

윤씨는 곧바로 은행현금서비스에서 돈을 인출해 해당 회사 계좌로 송금한 뒤 사업을 시작했다. 윤씨는 친구와 친척들의 e메일 주소를 알아내 가입을 권유하는 글을 보냈다.

그리고 각종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들어가 글을 남기고, 또 그 사이트에 들어온 네티즌들에게 권유 메일을 보냈다. 가입 초기 피치를 올려야 한다는 회사측 조언에 따라 회사에 5일간 휴가까지 얻어 작업을 했다.

이렇게 한 달여를 매달렸지만 그 달 윤씨에게 돌아온 수당은 겨우 10만원 정도. 일정 수준의 누적포인트가 쌓이지 않을 경우 하부라인의 확장 인센티브를 받을 수 없다는 회사측 규정에 따라 상당부분을 받지 못했다.

윤씨는 ‘다운 라인의 ‘알까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면 최소 3개월은 해야 한다’는 회사의 말에 따라 두 달을더 이 일에 매달렸다.

하지만 윤씨의 통장으로 들어오는 수입은 늘 그 수준을 넘지 못했다. 반면 많은 것을 잃어야했다. 금전적으로도 투자한 원금을 돌려 받는 정도에 그쳤고, 회사 동료들과 친구, 친지들에게 가입을 권유하는 바람에 관계가 어색해 진 것이다.

결국 윤씨는 3개월여를 넘기면서 본래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 뒀다. 그런데 공교롭게 이 인터넷 회사가 어느날 갑자기 자취를 감춰 버린 것이다.

그간 쌓아두었던 적립 포인트를 몽땅 날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피라미드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돼 ‘요주의 인물’이 돼 버렸다. 윤씨는 아직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기간에 큰 돈" 스펨메일에 현혹

인터넷을 이용한 피라미드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인터넷은 개인간 커뮤니케이션과 네트워크에 혁신을 몰고 와 월드 와이드한 공동체 실현을 가능케 한 21세기 정보 통신의 총아다.

하지만 이처럼 막강한 네트워크와 익명성 보장이라는 인터넷의 장점이 일부 부도덕한 사람들에 의해 오용되면서 적잖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사이버 피라미드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예외없이 ‘단기간에 큰 돈을 버는 방법’을 알려주는 스팸 메일을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뭔가 의심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아직도 이런 그럴싸한 유혹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상에서 특별한 노동을 제공함 없이 거금을 벌 수 있다는 이들의 유혹에 ‘한번 속는 셈치고 해 보자’ 는 충동에 빠지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장기적인경기 침체와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늘면서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개인 사무실에 다니는 소영선(22ㆍ가명)씨는 최근 자신의 e메일에 들어온 ‘월 4,600만원의 고소득을 벌게 해준다’는 글을 받아 보곤 망설임 끝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매달 2만원 가량의 회비를 낸 뒤 하부 라인을 모집하면 정기적으로 큰 돈을 분배해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오래 전부터 외국유학을 꿈꿨던 소씨에겐 눈이 번쩍 뜨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회사의 주장에 따르면 이 사이트 가입 회원들은 상위 라인 2명 이상의 다운은 하위 라인으로 자동 배정되는 ‘2*15 매트릭스’라는 강제 스필오버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빨리 가입만하면하부 회원이 급속도로 늘어 수입이 급증한다는 것이다.

총회원 월회비의 100%, 총회원 수입의 96%를 회원들에게 돌려주기 때문에 기존의 피라미드 방식보다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유혹한다.

여기에 총회원 수입의 4%, 개인적 모집 다운당 6,500원,톱 모집인 총수입의 3%를 추가 보너스로 지급하고, 추가로 총수입의 1%를 경품 추첨으로 준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2*15 구조가 완성되면 월 4,600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별한 수익모델 없는 전형적 사기수법

하지만 이 내용을 자세히 들여 다보면 현실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이들이 주장하는 ‘2*15 구조 완성’이란 자신부터 시작해 한 라인당 2명씩 총15개 단계의 하부라인이 구성되는 것, 즉 다시 말해 2의 15제곱인 총 3만2,798명이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는 구조를 말한다.

강제 스필오버시스템이란 늘어나는 인원을 수평이 아닌 하부 수직 구조쪽으로 강제 배정해 상부 라인에게 더 큰 이익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입회수당을 받는 것 외에 다른 수입 모델이 없어 3만명의 인원을 모집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더구나 총수입의 96%를 배분하고 거기에 추가 보너스로 수입의 나머지 4%외에 개인적 모집 수당과 톱 모집인 수당, 경품까지 준다고 선전하고 있는데 이는 수입액 보다 지출이 더 많은 수입 구조다.

벌어들인것 보다 더 많은 금액을 회원들에게 주겠다는 것으로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바로 인터넷 피라미드 사기의 전형적인 수법의 하나인 체인 메일과 기업형 쇼핑몰 수법을 합친 형태라 할 수 있다.

인터넷 피라미드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청소년과 연관이 돼 있다는 점이다. 사이버 세계는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개방돼 있다. 바로 이런 인터넷의 특성을 악용한 일부 악덕 상혼에 의해 아직판단력이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이 상처를 받고 있는 것이다.

광주 모고교의 박모(45) 교사는 얼마 전 학교 인터넷 홈페이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매달 300만원을 버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OO사이트에 접속해 쇼핑 난을 클릭하거나 회원을 확보하면 사례금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박 교사가 이 글을 발견하기 전에 이미 50명이 넘는 학생들이 다녀 간 사실을 알았다.

전주 모여고 홈페이지 게시판에는‘다른 사람의 추천하면 1인당 5,000원씩을 통장에 현금으로 입금시켜 준다’는 인터넷 피라미드 공고와 함께 60여명을 추천해 30만원을 벌었다는 체험담까지 실려 있다.

이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3초에 1만2,500원’이라는 식의 컴퓨터 화면에 배너 광고를 띄워 시간당 돈벌기나 특정사이트에 접속해 아이콘을 클릭해서 돈 받기, 받은 e메일을 열어보고 건당 돈 벌기 등의 광고로 뒤덮여 있다.

경기도 모고교 2학년인L(16)군은 “인터넷 추천 사이트를 통해번 돈으로 중고 오토바이를 구입했다는 소문이 나면서 학교에서 한 때 돈 벌기 사이트에 가입하기 붐이 일었다”며 “중ㆍ고생등 중에 이런 메일의 유혹을 받지 않은 학생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독교 윤리실천운동이 올 4월 서울ㆍ경기지역 초ㆍ중ㆍ고 110개교를 대상으로 홈페이지 관리 실태를 모니터한 결과 25개교 게시판에서 청소년에 유해한 내용의 게시판이 올라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업자들이 학교 게시판에 무차별적으로 광고 기사를 띄우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며 “학교 게시판은 삭제할 수가 있지만 학생 개인 메일로 가는 것은 막을 도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말뿐인 쇼핑몰, 수입 대부분 회원 가입비

사이버 피라미드 사기가 끊임없이 발흥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런 사이트를 만든 회사나 초기 가입자들은 큰 투자 없이 상당한 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피라미드업체들이 주로 사용하는 인터넷 쇼핑몰이나 개인 메일 서비스 정도의 것들은 웬만한 웹 디자이너면 쉽게 만들 수 있다. 최근에는 개인 PC의 성능도좋아져 고가의 별도 서버를 임대하지 않고도 운용이 가능하다. 이렇게 해서 사이트를 운영한 초기 사업자들의 경우 실제로 수십억에서 수백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챙기도 했다. 이런 소문이 퍼지면서 유사 사이트들이 잇달아 등장했다.

인터넷 쇼핑몰인 I사의 대표K(30)씨는 실제 가치가 없는 쇼핑몰을 분양하는 수법으로 1년여간 3만3,000명으로부터 무려 350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K씨는 지난해 3월부터 인터넷 쇼핑몰을 일반 개인들에게 99만~165만원을 받고 분양하는 다단계 판매를 실시했다. K씨는 쇼핑몰 1개 분양시 상위 8단계까지 2만원씩 16만원을 지급하고, 직책별로 6만2,500원을 나누어 차등 지급하는 식의 인센티브 제도 도입, 회원 수를 불려 나갔다.

하지만 이 회사가 개인에 분양해준 쇼핑몰은 실제로 I사 쇼핑몰에 회원 이름만 걸어둔 형태로 모든 회원의 쇼핑몰 판매 물품이 똑같아 실제 가치는 거의 없는 무용지물이었다. 파는 물건도 한정 된데다 가격도 시중과 비슷해 쇼핑몰로서의 기능은 상실하고 수입은 거의 회원 가입비만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발생 매출의 3%를 수당으로 지급했는데,입회비 165만원을 회수하기 위해선 무려 5,500만원의 물품을 구입해야 됐다.

‘상품’이 아닌 ‘사람’을 파는 전형적인 피라미드 영업이었다. 이 사기 사건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인터넷 전자상거래에 무지한 40대 주부들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 회사의 사장들은 성공한 벤처사업가 행세를 하면 지역 방송의 다큐멘터리 주인공으로 나섰는가 하면 일부 회사는 회원들을 상대로 자사 주식을 판매하기도 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 대응센터 수사팀의 장윤식씨는 “미국에서는 이미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사이버 피라미드가 국내에서는 지난해부터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특히 최근 단속이 심해지자 법률상 처벌이 곤란한 추천 방식으로 전환해 교묘히 단속 망을 빠져나가고 있어 무엇보다 개개인의 각별한 주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08/22 11:49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