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피라미드 사기] 엉성한 법망, '한탕'에 멍드는 사회

외국 사이트 이옹한 다단계판매 사기, 막대한 외화유출

인터넷은 지역적 한계를 뛰어 넘는다.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와도 온라인상에서 정보를 교환하고 커뮤니티를 구축할 수 있다.

전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돼 가고 있는 것도 사이버 기술이 가져온 결실이다. 하지만 이런 사이버 세계의 장점이 다른 한편에서 범죄 행위의 수단이 되고있다. 다수와 동시에 접촉할 수 있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사이버 세계가 가진 특징이 신종 사기와 범죄의 또 다른 빌미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올해3월 외국계 인터넷 다단계회사의 국내 조직책으로 활동하며 부당 이득을 취한 이모(58)씨 등 판매조직원 10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미국에 소재를 둔 인터넷 홈페이지 분양 다단계회사인 W사와 국내 파트너십 계약을 한 뒤 다단계 인터넷 피라미드 수법으로 국내 회원을 모집, 분양대금을 챙긴 혐의다.

이들은 다단계판매조직 등록도 하지 않은 채 불법으로 가입 회원 1인당 130달러(약 16만9,000원)에서 199달러(약25만8,700원)을 미국 W사에 신용카드로 결제토록 하고 그 대가로 1만9,000여달러(약 2,470만원)의 수당을 챙겼다.

이들이 가입시킨국내 회원 4,800여명은 저질의 홈페이지를 분양 받은 대가로 미국 W사에 무려 80만달러(약 10억원)가 넘는 비용을 지불했다. 국내 포털 사이트에서 무료 제공되는 홈페이지 보다 서비스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홈페이지를 받으며 무려 10억여원의 국부를 해외로 유출시킨 것이다.

경찰은 이씨 외에도 미국 S사, E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같은 수법으로 국부를 유출시킨 최모(47)씨 등 3명을 함께 검거했는데 이들로 인해 해외로 불법 유출된 외화는 무려 200만달러(약 26억원)가 넘었다.

더욱 어이가 없는 것은 이런 막대한 달러를 외국회사에 넘기고 국내 업자들이 받은 수당은 총액의 5%도 안되는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국내 업자들은 본사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금액의 일정 비율을 수당을 받기로 돼 있었으나 쇼핑몰 자체가 너무 부실해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바람에 수입은 전적으로 회원 가입비 뿐이었다. 전형적인 인터넷 피라미드 판매 수법인 셈이다.


외국계 회사와 국내파트너십 계약 뒤 사기

국내 업자들이 이처럼 막대한 외화를 유출해 가면서도 피라미드 사기를 벌인 이유는 사이트의 신뢰도와 법 망을 피해가기 위해서 였다. 이런 인터넷 쇼핑몰 분양 수법은 3~4년전 미국에서 한창 유행했던 사업이다.

따라서 이 분야에 노하우가 있는 미국 인터넷 업체들의 판매 기법을 배우기 위해 국내 업자들이 외국사들과 제휴, 사업을 벌였다. 더구나 국내 사이트 명의로 사업을 했을 경우 신뢰도가 떨어져 회원 가입이 어렵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외국 사이트를 이용했다.

또 다른 이유는 국내 법 체계의 허점을 이용하기 위한 것이다. 현행 법체계상 인터넷 피라미드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7년 이하 징역, 2억원이하 벌금)과 사기죄다.

현행 방판법은 주로 미등록 다단계 판매행위를 근거로 처벌하는데 미국 같이 해외에 근거를 둔 외국회사의 사이트를 포스트로 이용했을 경우 처벌 근거가 애매해 진다.

실제로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가 검거한 위의 3개 조직 13명에 대한 구속 영장도 검찰에서 기각돼 현재 보강 수사 중에 있다.

검찰의 기각 사유는 방판법에 있는 미등록 다단계 판매행위 위반은 사이트를 처음 개설한 외국회사에 해당되는 것이지, 이들과 파트너십을 맺은 국내 대리 업자들을 이 조항으로 적용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내 대리인들을 사이트 개설ㆍ운영ㆍ관리의 주체로보기 어렵기 때문에 처벌이 힘들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경찰측의 불만은 매우 크다. 경찰측 한 관계자는 “외국 본사와 파트너십을 맺은 국내 업자들은 사무실과 교육장을 차려 놓고 회원들을 모집해 판매 교육까지 실시하는 등 사실상 지사 영업을 했는데 그것을 개설ㆍ관리ㆍ운영으로보지 않는다면 앞으로 발생할 막대한 국내 피해자를 막을 길이 없다”며 “검찰과 법원이 적극적으로 법적용을 하거나, 아니면 법 자체를 바꿔야 억울한 국내 피해자를 줄이고 국부 유출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실한 법체계로 피해자 속출

검찰측도 신종 사이버 피라미드에 수법에 대한 처리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이 사건을 담당한 검사는 “아직 법적 검토를 하고 있는 중이라 뭐라고 말하기 곤란하지만 현재의 법 체계로는 국내 중개ㆍ대리인에 대한 처벌이 애매하다”며 “개인적으로는 입법 차원에서 법적 보강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법기관이 피라미드 사업자 처벌에 이처럼 혼란을 빚게 된 것은 1995년과 1999년 두 차례에 걸친 방판법 개정이 결정적인 이유다.

당시 개정된 방판법은 3단계 이상 등급을 두지못하고 사람들을 모집해 교육할 수 없도록 한 당초 조항을 삭제하고 ‘판매원 동기 부여’나 ‘후원 수당’을 줄 수 있도록 대폭 완화했다.

이 개정안으로 판매원들을 단기간에 대거 모집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 됐다. 게다가 올해 4월 국회에서 발의한 방판법 개정안은 후원수당 지급 기준을 아예 없애고 상품 가격 제한 규정마저 폐지해 사실상 다단계 판매업체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했다.

이 조치로 안티피라미드(www.antipyraid.org) 등 시민 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다.

서울 YMCA의 관계자는 “최근 오프라인 상에서 급성장하는 거대 다단계 기업들의 영향으로 방판법이 다소 후퇴하는 경향이 있다”며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사이버 피라미드에 대한 별도의 법적인 보강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인구 세계 4위(2,200만명)’, ‘인터넷 사용시간 세계 1위’,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 세계 1위(100명당9.2명)’ 등 인터넷분야에서는 세계 선진국 대열에 들어 있다.

하지만 아직 인터넷 전자상거래의 특수성을 감안한 법적 장치나 세제상 규정은 걸음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더욱 성장해갈 사이버 세상에 발맞춰 국내에서도 효율적인 제도적 뒷받침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8/22 14:02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