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부시의 선택 '줄기세포 연구 지원'

윤리적 논쟁 속 '연방정부서 재정지원' 결정

대통령이 프라임 타임에 연설을 한다면 그 내용은 십중팔구 국내ㆍ외 적을 겨냥한 선전포고이다. 가난과의 전쟁, 범죄와의 전쟁, 마약과의 전쟁 등 다양한 선전포고의 문구들은 영토를 수호하고 선량한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대통령의 직무와 찰떡궁합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처음으로 행한 TV 연설에서 전쟁이나 복지, 무기 시스템 같은 이슈가 아니라 생명윤리를 화두로 삼았을 때 시대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부시는 이런 새로운 화제를 통해 대통령 선거전 내내 단 한번도 제기된 적이 없는 새로운 이슈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도 함께 드러냈다.

그 이슈는 너무 사안이 복잡해서 슬로건만으로는 전달이 불가능하고 한 문단을 거쳐 설명해야 이해가 될 정도로 어려운 것이다. 백악관이 연설의 내용을 확실히 전달하도록 노심초사한 이유도 바로 이때문이다.

지난 주까지 부시는 공식적으로 정견을 발표하는 것을 피해왔다. 그는 말하는 인간형이 아니라 행동하는 인간형으로 활동해 왔고, 그의 아버지가 그래왔던 것처럼 영적인 가치 추구에 중점을 두어 왔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송 연설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데 총력을 기울이며 국민들을 자신의 생각 구석구석까지 안내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부시 대통령은 그럴만한 기회를 가급적 피했다.


NIH "인간복제 연구는 불임치료 위한 것" 보고

그러나 지난 주 부시는 자신의 행동 철학을 조금 수정, 국민 앞에 나서 볼륨을 높였다.

부시는 자신이 복잡한 사고 능력이 있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릴 줄 알고, 옳고 그른 것도 구별할 수 있는 인간임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부시는 줄기 세포 연구에 대한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을 전쟁에 군대를 파병하는 결정과 비교했다. 생명윤리와 인간복제 문제는 성격상 논쟁이 끝없이 꼬리를 무는 핫이슈이다.

그래서 부시는 우리 시대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도덕적이고 지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미숙한 신병처럼 부상을 입을 것처럼보였다.

그러나 부시는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이런 복잡한 문제를 회피하기는 커녕 백악관이 오히려 나서서 강도 높게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백악관은 국민에게 대통령이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된 힘든 결정을 내렸을뿐 아니라 동시에 참신한 결정까지 내렸다는 인상을 심으려 하고 있다.

부시는 이 같은 결정을 내리기까지 고심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올들어 한 동안 의회 지도자, 과학자 대표, 학부모 대표 등 접견한 사람들 모두에게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의견을 구한 것 같다.

백악관의 카렌 휴즈 공보비서관은 “부시 대통령은 거의 모든 백악관 식구에게도 의견을 구했다”며“그는 자신의 합리적인 논리를 정립하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의견을 구한 뒤 왜 그렇게 결론을 내렸는지 되묻곤 했다”고 전했다.

수 많은 의견 가운데서도 부시 대통령에게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의사와 과학자들이 8월2일 그에게 해 준 자문이었다. 그는 몇 주전 NIH에 인간복제 연구 현황 등에 대해 전세계적으로조사해 의견을 제시하도록 지시를 해두었다.

NIH는 이날 보고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간복제 연구는 신생아를 탄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불임치료를 위해 것이라고 보고했다.

또 줄기세포는 신체 부위로 성장해 치매나 파킨슨병, 당뇨 등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원료’로사용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시는 대선 캠페인 당시만 해도 “국민의 혈세가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연구에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물론 이 같은 인간복제 연구에 대한대선 후보의 입장은 교육개혁방안과 세금감면을 둘러싼 거센 논쟁에 묻혀 부각되지 않았다.

그가 대통령의 입장에서 이 문제에 보다 진지하게 접근하기 시작한 것은 3개월 전인 5월께로 추정된다. 부시는 5월8일 인간복제 연구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던 복지부의 톰슨 장관과 오찬을 함께 했다.

백악관은 이전부터 정치담당 보좌관인 칼 로브가 이끄는 팀이 인간복제와 관련된 다양한 쟁점들을 입체적으로 점검하고 있었다.

인간복제에 대해 대통령이 대선캠페인 당시와 비슷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단하고 있던 톰슨은 이날 깜짝 놀랐다. 대통령이 인간복제의 전면금지와 전면허용의 중간 점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톰슨 장관은 줄기세포 연구의 선구자인 위스콘신 대학의 제임스 톰슨 교수와 긴밀하게 연락을 하고 있었다.

타임지가 뽑은 ‘미국의 최고(과학분야)’로 선정돼 이번 호 타임지의 표지인물로 등장한 톰슨 교수는 몇몇 줄기세포 연구가 난치병 치료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톰슨 장관을 비롯한 미국의 주요한 오피니언 메이커들에게 심어준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줄기세포 관련 연구는 계속 진행하되, 신중하게 연구를 해야 한다는 그의 결정은 이렇게 나왔다. 이미 수확이 끝난 줄기 세포에 대한 연구에 한해 연방 지원을 함으로써 그는 수정란을 파괴하는 연구를 촉진시키지 않겠다는 공약을 공고하게 지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지원 더 늘려야" 입력 가중 예상

그러나 의회나 과학계, 심지어 부시 자신의 줄기세포 복제연구에 대한 연방정부차원의 지원 논리가 상승작용을 일으켜 대통령의 결정을 앞지를지도 모른다.

부시의 지원결정은 생명복제라는 새로운 과학분야가 넘어서는 안 되는 연구의 경계선을 분명하게 명시한 것이 아닌 만큼 복제연구에 대한 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는 압력이 가중될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구에 대해서만 재정지원을 허용한 부분을 보면 부시는 경영대학원의 강의에서 무수히 등장하는 수익비용의 원칙에 충실한 것 같다.

그러나 비용보다 더 많은 액수의 수익이 창출되는 일이나 사업을 해야 한다는 이 원칙은 이익에 너무 집착해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일을 중단시키는 등 폐해가 많은 것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수익이 있을 법한 연구는 허용하고, 그렇지 못한 연구를 차단하는 것으로 정부의 소임을 다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윤리적인 논쟁은 계속되겠지만 부시는 상처를 거의 입지 않고 찬반 양론이 분분한 이 문제에서 일단 빠져 나왔다는 점에서 ‘승점’을 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지지 세력인 공화당은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에 대해 여전히 찬반 양론으로 갈려져 있다.

부시의 목적은 여러가지 였겠지만 가장 큰 목적은 대통령 선거 당시 그를 신임(지지)하지 않았던 수 많은 미국인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이번 연설에서 “매우 신중하게 고심한 끝에 이같이(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재정지원) 결정했습니다. 내가 내린 결정이 올바른 것이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 문제의 이해 당사자인 성직자나 과학자에게 전적으로 맡길 수 없다. 우리가 대통령이란 자리를 둔 이유가 바로 이런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또 현명한 대통령이 왜 필요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어쨌든 부시 대통령은 이번 TV연설을 통해 지난해 12월 합격한 일자리(대통령)에 대한 대(對) 국민오디션을 뒤늦게 받은 셈이다.

정리 김경철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08/22 16:02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