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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금리로 쥐꼬리 이자, 서민 소액예금자는 '찬밥'신세

500만원의 여유자금을 쥐게 된 회사원 최영동(35ㆍ가명)씨. 정기예금에 넣어둘까도 생각했지만 연 5%대 초반으로 추락한 금리와 얼마되지 않은 액수를 감안해서 그냥 자유롭게 입출금할 수 있는 자유저축예금에 가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은행을 찾은 최씨가 가입한 상품은 자유저축예금이 아닌 저축예금. 은행측이 예치기간에 따라 연 2~4%의 이자를 주는 자유저축예금을 폐지하고 연 2%의 고정금리를 지급하는 저축예금으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자소득세(16.5%)까지 떼고나니 최씨는 사실상 무이자 통장을 개설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잦은 소액 입출금의 이자 계산을 위한 전산비용 부담 때문”이라는 것이 은행들의 자유저축예금 폐지 이유다.


소액엔 무이자, 수수료는 갈수로 올라

사상 초유의 저금리에 서민들의 시름이 더욱 깊어졌다. 이자생활자가 비상이 걸렸다든지, 목돈 굴릴 곳이 없다든지 하는 얘기는 ‘진짜 서민’들에게는 한낱 사치스러운 얘기처럼 들린다.

반찬값까지 절약해가며 쥐꼬리만한 돈을 은행에 꼬박꼬박 넣어 간신히 목돈을 만들어봐야 치솟는 물가를 감안하면 오히려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만다. 게다가 수익성을 모토로 내건 은행들의 소액예금자에 대한 푸대접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연 2%라도 보장하는 저축예금은 그나마 나은 편. 아예 쥐꼬리만한 이자마저 주지않는 통장도 갈수록 늘고 있다.

한빛은행은 3월부터 당일 잔액이 50만원 이하일 경우, 서울은행은 3개월 평균 잔액이 20만원 이하인 경우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무이자 통장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제일은행은 1월부터 보통예금 등 4개 예금의 월평균 잔액 합계가 10만원에 못 미치면 매달 2,000원의 계좌유지 수수료까지 물리고 있다.

‘20대 80’의 경제 논리를 앞세워 각종 거래 수수료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은행 수익에 도움이 되는 20%의 고객들에게는 각종 혜택을 부여하되 오히려 손실을 초래하는 나머지 80%의 고객들에게는 비용 보전을 받겠다는 취지다.

농협이 6월부터 가계 및 당좌수표교부수수료를 권당 2,000원에서 3,000원으로 인상했고, 기업은행은 지난달부터 텔레뱅킹서비스 이용시 상담원을 통할 경우 수수료 300원씩을 부과하고 있다. 주택은행도 텔레뱅킹 서비스 이용시 상담원을 거쳐 이체할 경우 당행 이체는 300원, 타행이체는 800원씩 수수료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 더욱 가속이 붙을 예정. 김정태 국민ㆍ주택 합병은행장은 최근 “1,100여개에 달하는 지점망 유지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만큼 각종 수수료를 비싸게 받겠다”며 “서민적 이미지를 탈피하고 부유층을 공략하는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은행권 소매금융 정책을 주도할 것으로 보이는 합병은행이 수수료를 높게 책정할 경우 다른 은행들도 동참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서민 대출금리 인하엔 인색

회사원 김동현(40ㆍ가명)씨는 신용대출 금리를 1.75%포인트 내렸다는 광고를 보고 은행을 찾았지만 허탕을 쳤다.

“손님의 경우 0.25%포인트 밖에 할인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광고와 다르지 않느냐”고 항의했지만 “그건 우량등급 고객에게 해당되는 금리”라는 쌀쌀맞은 답변만 돌아왔다.

저금리 시대에 서민들을 더욱 옥죄는 것은 대출금리다. 저금리로 인해 가계 금융부담이 크게 줄어들지 않을까 하던 기대도 잠시. 대출금리가 연 6%대까지 떨어졌다는 등 은행들의 홍보는 요란하지만 실제 서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별반 없기 떄문이다.

주택 한 채라도 있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시중금리와 연동돼 하락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서민들이 많이 애용하는 마이너스통장,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신용대출 금리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마이너스 대출금리는 연 10~12.5%에 이르고,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이자는 아직도 24~25% 수준이다. 연 9.5~9.75% 사이에서 꿈쩍도 않는 은행 우대금리(프라임레이트)로 인해 이전에 고금리로 대출을 받았던 서민들은 초유의 저금리 시대를 살면서도 매달 연 10%를 훨씬 상회하는 이자를 물어야 하는 실정이다.

사채로부터 개인들을 보호해준다는 명목 아래 금융기관들이 앞다퉈 도입하고 있는 급전대출은 더욱 가관이다.

현대 스위스금고의 경우 연40%짜리 대출상품을 내놓더니 급기야는 연 60%로 업그레이드된 상품을 추가로 출시했고, 심지어 한 신용금고는 귀금속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전당포대출까지 선보였다.

사채시장의 일수대출 방식을 도입한 전북은행을 필두로 은행권에도 급전대출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제도권 금융기관이 아예 ‘준 사채기관’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최근 1~2년 사이 은행들이 앞다퉈 도입한 개인신용평점시스템(CSS)도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가중시키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CSS란 대출 신청인이 돈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 빌려준다면 얼마를 어떤 이자로 빌려주는 게 타당한지를 컴퓨터를 통해 판단하는 시스템. 언뜻보면 합리적인 것 같지만 문제는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고객 정보가 직업, 연간소득, 재산보유현황 등에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전문직 종사자나 상장기업임직원 등은 상당한 혜택을 부여받는데 반해 서민들은 오히려 높아진 은행 문턱만 뼈저리게 실감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최근 CSS 평가 기준을 강화하면서 기존 대출고객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모의실험을 해 본 결과 약20%가 대출불가 판정을 받았다”며 “대출불가 판정을 받은 사람들의 대다수는 저소득 계층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은행만 배불리는 저금리정책

이에 따라 최근의 저금리가 결국 은행만 살찌우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자금 선순환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해야할 은행들이 수신금리만 앞다퉈 내리고 서민 대출 등에 대한 금리 인하는 생색만 내면서 ‘저금리 효과’를 크게 퇴색시키고 있다는 것.

‘콜금리 인하 → 금융기관 여ㆍ수신 금리 하락 → 실물부문 자금 공급 확대’의 선순환을 기대했지만 금융기관이 저금리 혜택을 독점하면서 실물 부문으로의 자금 공급을 차단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신규취급액을 기준으로 한 은행 대출평균금리는 지난해 12월 8.41%에서 6월 7.89%로 0.52%포인트 하락하는데 그친 반면, 수신금리는 같은 기간 5.95%에서 5.06%로 무려 0.89%포인트나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은행들이 저금리 환경을 틈 타 서민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내 은행의 수익을 보존하고 있는 셈.

상당수 금융 전문가들은 다양한 수익원 발굴, 위험 회피 등의 노력 없이 손 쉽게 수익을 보전하려는 것은 전형적인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라고 지적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전효찬 수석연구원은 “시장의 요구와 괴리된 금리 정책을 은행들이 오래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조만간 우대금리 인하, 시중금리 연동대출 상품 확대 등의 방식으로 대출금리 인하도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연구원 고성수 연구위원도 “저금리 체제에 들어서면서 서민들을 위한 금융 정책이 거의 실종됐다”며 “적정한 예대마진 확보도 중요하지만 서민들에게도 저금리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게 하는 것이 저금리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이영태 경제부기자 ytlee@hk.co.kr

입력시간 2001/08/22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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