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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상사 대변신, 핵심사업 역량 집중 '탈 계열화'

현대종합상사 모바일사업 팀장인 이혁(33)대리는 요즘 휴대폰 등 무선인터넷을 이용한 모바일(Mobile) 서비스 아이템을 찾으러 강남 테헤란로 IT밸리 일대를 발이 부르트도록 누비고 다닌다.

휴대폰으로 7자리 숫자를 눌러 신문에 안 나는 기사와 광고 정보를 알 수 있는 M-코드(Code) 서비스 계약을 따내기 위해 언론사와 잡지사광고사 문턱도 수도 없이 드나든다.

게임, 오락, 운세보기, 만화, 공연예매 등 무선 인터넷 컨텐츠와 이들 컨텐츠 구축에 필요한 솔루션 공급업체를 찾아 이들의 상품을 국내외 정보통신 업체에 공급하는 것이 이 대리의 주된 업무다.

이 대리는 “종합상사에 근무하고 있지만 요즘은 상사맨인지 벤처기업가인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이 대리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현장을 돌며 발품을 팔 필요가 별로 없었다. 수출품목이라고 해야 대부분 현대 그룹 계열사 제품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 들어 인터넷과 모바일 팀을 새로 맡으면서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수출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중소기업들의 수출대행이 크게 줄고 계열사들도 더 이상 물량을 맡기려 하지 않는다.

이 대리는 “종합상사가 과거엔 해외 바이어만 많이 확보하면 됐지만 이젠 수출품목(공급자)을 발굴해 바이어를 찾고 제품판매까지 책임지는 ‘만물박사’가 되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세계 시장을 누비며 ‘수출입국’을 일군 종합상사들이 요즘 ‘대 변신’을 하고 있다. 그동안 재벌 소속계열사들의 수출을 대행하던 외형 위주의 ‘만물상(萬物商)’체제에서 탈피해 핵심 수익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는 홀로서기 행보다.

현대상사 삼성물산 LG상사 SK글로벌 대우인터내셔널 등 종합상사들은 수출부진에다 반도체 등 주력 업종의 장기 불황으로 계열사 수출 물량이 줄어들자 성장성과 안정성이 입증된 사업에 인력과 자본을 집중하면서 ‘탈(脫) 계열화’에나서고 있다.

일본의 종합상사 처럼 내수 소비재 판매 등 안방장사에도 눈을 돌렸다.


수출부진으로 대행물량 감소

종합상사들의 변신은 입지축소에서 출발한다. 수출감소세가 예년같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이 20% 감소한 올 7월 중 국내종합상사들의 수출물량은 40억3,800만 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39.3%나 줄어들었다.

종합상사들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998년에는 51.9%에 달했으나 점차 비중이 축소돼 올 상반기에는 38.5%로 뚝 떨어졌다. 수입 비중도 91년 13.3%까지 달했으나 올해는 8.6%에 그쳤다.

종합상사의 수출은 계열사 수출대행 물량 감소와 반도체 등 대기업 주력 품목의 수출단가 하락에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여기에 종합상사가 속한 그룹 계열사 외에 수출을 맡기던 중소기업과 벤처기업도 점차 수출능력이 확대돼 자체 수출에 나서면서, 종합상사에 수출대행을 의뢰하는 업체수가 95년 5,710개에서 지난해 4,025개로 29.5%나 감소했다.

5대 종합상사의 올해 계열사 수출 대행률은 작년에 비해 5~20% 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전통적으로 계열사 의존도가 높은 현대종합상사는 작년 말 93.2%에서 올 6월 현재 8 9.6%로 줄었다.

대우인터내셔널(옛 대우)은 97년 70%에서 99년 48%, 2000년 33%, 올해 17%로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이는 대기업 구조조정에 따라 재벌 계열사간 독립경영 체제가강화되면서 계열사 의존도가 낮아지고, 수출기업들이 계열 종합상사에 수출을 맡기지 않고 직접 해외 마케팅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

이에 따라 종합상사들은 계열사 수출대행 사업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신종사업 발굴에 적극 나서는 한편 경비절감을 위한 구조조정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자동차가 계열 분리되자 대우차 관련 납품·협력업체를 활용, 자동차 부품수출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이란에서 열린 자동차부품 로드쇼를 통해 3,000만달러어치의 수출계약을 따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자동차부품만으로 올 한해 6억4,000만달러의 수출을 예상하고 있으며, 2005년까지는 최소한 20억달러의 수출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작년 말 이후 해외지사를 70개에서 49개로 줄이고 해외투자법인을 122개에서 70개로 정리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또 글로벌 정보 네트워크와 다양한 금융기법을 활용해 제3국에서 물건을 조달, 다른 나라에 파는 ‘3국간 거래’로 사업구조를 바꾸고 있다. 곡물 원유 원면 철강 등을 대상으로 작년 한 해 대우의 전체 수출 물량 중에서 12%를 차지한 3국간 무역은 올해는 20%에 육박할 전망이다.

삼성물산도 저수익 사업을 대폭 정리하는 구조조정을 추진중이다. 올 초 직물영업팀을 분사시켰고 인터넷 경매사업도 포기했다.

또 재무구조 개선 차원에서 로스앤젤레스 칼레이도스코프 빌딩과 경기 기흥의 건설연수원을 각각 372억원과 460억원에 매각했다.

삼성물산은 내년 3월 25년간의 ‘광화문 시대’를 마감하고 본사를 분당으로 옮길 계획이다. 한푼이라도 사무실 임대료를 아끼기 위해서다. 사업구조도 앙골라 종합개발 프로젝트 등 서부 아프리카와 동유럽을 중심으로 컨트리 마케팅을 확대하고 해외지점의 역할을 단순‘교역’에서‘사업’중심으로 바꿔 수익구조를 고도화하기로 했다.


사업다각화로 생존 몸부림

올해 초 국내 종합상사 가운데 유일하게 모바일 비즈니스 팀을 구성한 현대종합상사는 일본 대만 독일 등 국내외 30여개 무선 컨텐츠 업체와 제휴해 각종 게임 등 50여개 무선 컨텐츠 서비스 및 솔루션을 수출입할 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개인 휴대폰을 이용한 M-코드 사업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또 일본 치요다 산업과 손잡고 일본에 인터넷 전화국을 설립한데 이어 미국 유럽 중남미지역으로 인터넷 전화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현대종합상사관계자는 “최근 무선 인터넷을 할 수 있는 휴대폰 등 단말기 보급 확대에 따라 올들어 모바일로만 3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합상사들의 이 같은 생존 몸부림은몇 년전부터 예견돼 왔다. 70년대 중반 정부 주도 아래 현대 삼성 대우 등 재벌들이 참여해 앞다퉈 설치했던 종합상사는 한 때 해외시장에서 수출한국의 얼굴이었다.

종합상사는 대졸 취업자들의 최고 선망의 직장이었고 상사맨은 미혼여성들에게 최고 신랑감으로 꼽힐 정도로‘인기 캡’이었다.

그러나 경제의 국경이 없어진 세계화, 인터넷 및 전자상거래의 보급, 기업구조조정 등 안팍에서 몰아친 경제환경의 변화는 단순 수출입 창구 기능에 매달렸던 종합상사를 구시대의 유물로 만들어 버렸다.

적어도 중개수수료 수입을 목적으로 하는 트레이딩 중심의 종합 상사는 이미 수명을 다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온다. 주력 사업의 재편, 사업 다각화 등 상사들의 치열한 자기 변신 노력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종합상사는 당초 경공업 시대 즉 산업화 초기에 해외 시장개척 능력이 없는 제조업체들 을 위한수출 창구로 탄생됐다.1975년 ‘종합상사 지정 등에 관한 요령’에 따라 정부가 전략적으로 만들어 낸 한국적 특수업종이었던 것.

그러나 80년대 들어 제조업체 들의 덩치가 커지면서 자체 마케팅 및 영업 능력을 보유, 수출업무를직접 수행하면서 종합상사의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했고 90년대초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로 해외 지사망을 통한 외국정보의 독점이라는 종합상사 특유의 경쟁력은 크게 약화됐다.

80년대말을 기점으로 날로 떨어진 종합상사의 효용성은 IMF사태를 전후한 90년대말에 이르러 경제환경의 변화로 더욱 가속화됐다.

공간제약 없이 실시간 정보유통이 가능한 인터넷의 보급은 종합상사의 해외 정보력의 가치를 한층 떨어뜨렸고 전자 상거래는 종합상사의 수출입 대행 기능의강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수출액에 비례해 정부가 싼 이자로 지원해 준 정책 금융도 점차 사라지게 됐다. 천문학적 숫자의 수출실적을 신용삼아 가능했던 대규모 해외 금융도 금융시장 개방과 국내 금리 인하로 효용가치가 급락했다.


높아진 내수사업 비중

동구권 붕괴와 함께 한때 신천지로 여겨졌던 동유럽 지역 개발사업에 종합상사들이 너나없이 뛰어든것은 90년대 중반 이었다.

공단, 테마파크, 주상복합빌딩 등의 건설과 분양 및 운영을 맡으려고 삼성물산, ㈜대우, LG상사 등이 일제히 진출했다.

그러나 이 또한 IMF사태로 상 당수 사업이 빛을 보지 못한 채 중도 하차하는 비운을 맛봤다. 여기에 현 정부 출범 이후 재벌 지배구조개선과 기업 구조조정이 강도높게 진행되면서 대기업 계열 종합상사들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나서게 됐다.

그 중 하나가 이른바 ‘안방 시장’이라는 내수 사업. 해외 네트워크가 취약한 후발 종합상사일수록 내수사업 비중을 더욱 높이고 있고, 현대 삼성 대우 등 대형 종합상사들도 올들어 국내 사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SK글로벌은 올 상반기부터 사업구조가 내수부문 매출이 수출을 훨씬 뛰어넘는 형태로 정착됐다.

상반기 실적 9조577억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56%) 5조860억원을 기름과 휴대폰 판매 등 내수에서 벌어들여 처음으로 수출을 초과했다.

올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낸 LG종합상사도 수출물량은 오히려 감소한 반면 의류 패션사업과 할인매장 등 내수부문 실적은 크게 호전됐다. 삼성물산도 건설 주택 유통 인터넷 전자상거래 등 내수부문 매출이 2조4,600억원으로 전체매출(17조3,000억원)의 14.2%를 차지, 지난해(12.2%)보다 2% 늘었다.

“사실상 본래 의미의 종합상사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이름만 종합상사일 뿐 특정 품목에 집중된 전문 상사를 표방하거나 아예 상사로선 어울리지 않는 사업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죠.”한 종합상사의 팀장은 “종합상사의 고민은 고유의 업무를 상실했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확실하게 돈이 되는 사업을 찾지 못한 데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미개척된 신흥시장은 무궁무진하다. 아프리카 53개국중 우리나라 상사들이 들어간 곳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러시아나 동구권도 여전히 파고들 여지가많다. 개도국이나 오지 개척에 상사맨만큼 유능한 인력도 없다. 종합상사 위기론에 묻혀 이런 잠재력이 사장된다면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라는 게 상사맨들의 한결 같은 안타까움이다.

김호섭 경제부기자 dream@hk.co.kr

입력시간 2001/08/22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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