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미국의 여인들

요사이같이 불볕 더위가 계속되는 날에는 시원한 물 속에 풍덩 빠져서 아이들과 물장난이나 하였으면 하는 생각이 누구에게나 먼저 들 것이다. 연일 수은주가 화씨 100도를 가리키며 습도마저 90%가 넘은 최근의 날씨는 소위 불교에서 말하는 화탕지옥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이 든다.

아울러 건국 초기에 미합중국의 수도 워싱턴 D.C.로 부임하는 유럽 외교관들에게 오지 수당을 주는 이유를 십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포토맥 강 주변의 늪지가 정리되고 오늘날 같은 수도 워싱턴 D.C.의 모습이 갖추어진 것이 20세기 초반이니 19세기 중반까지의 워싱턴 D.C.는 한여름의 무더위와 모기에 시달리는 고통은 아프리카 어느 도시와 별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링컨 대통령도 한여름에는 백악관을 떠나 근처의 시원한 언덕 배기에 집을 얻어 임시 집무실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더운 여름 기후이니 만큼 동네의 수영장은 항상 만원이다. 카운티에서 운영하는 실내 수영장은 물론이려니와, 클럽이나 아파트, 타운하우스 등의 대형 주택단지에 있는 수영장에는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부터 은퇴한 노인네들에 이르기까지 남녀 노소를 가리지 않고 물장구를 치며 더위를 식히고 있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다.

인종의 용광로라고 하는 미국이다 보니, 더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있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워싱턴 D.C. 지역이어서 수영장에 가보면 온갖 인종의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다.

우리 같은 아시아인들부터 시작해서 남미출신의 히스패닉, 인도인, 아랍인들이 유럽계 및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워싱턴포스트지에 재미있는 기사가 났다. 워싱턴 근교의 한동네 실내 수영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일단의 종업원들이 하얀 커튼을 테이프로 이어 붙여 만든 장막으로 수영장 안을 밖에서 들여다 볼 수 있는 창문은 모두 가려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수영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내보냈다. 그 다음에 들어온 사람들은 바로 차도르로 얼굴을 가린 정통 회교도 여인들이었다. 그들은 물론 원피스로 된 수영복을 입고 그 위에 다시 무릎까지 내려오는 바지를 입었다.

여자는 노소를 불문하고 어느 경우에도 배꼽부터 무릎까지는 가려야 한다고 하는 회교의 율법에 따라 수영복위에 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교도들의 율법에 따르면 이성간에 같이 수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이처럼 동네 수영장을 통째로 빌려 동네 아이들과 같이 수영장에 가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성화를 못 견디는 어머니들의 부담을 덜어준다고 한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이 상당히 이루어진 곳이다.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캘리포니아주 같은 곳에서는 각주마다 두 명씩 뽑는 연방 상원의원이 모두 여성들에게 돌아갔다. 미국에서 분쟁의 최종 해결자라고 할 수 있는 연방 대법원판사 9명 중 2명이 여성이다.

이미 미국의 유수한 법과 대학에는 여학생들의 수가 남학생들을 압도한지 10여 년이 지났다. 휴렛 팩커드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의 최고경영자도 여성이 차지하게 되었다. 여성들을 소수 족으로 취급하여 우대하는 정책도 영향이컸지만, 미국의 여인네들은 남성과 달리 취급받는 것을 거부하며 모든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 사회에서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함부로 수영장에도 못 가는 여인네들도 있었으니 신문에 날만도 했다. 최근에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여러 가지문화적 충돌이 많이 일어난다. 그 중에서 특히 여자들에 대한 문화적 차이 때문에 가족들간에, 예를 들어 아버지와 딸 사이에 일어나는 많은 갈등이 종종 언론에 보도되곤 한다.

어릴때부터 자유롭게 이성간의 교제가 허용되는 미국 사회로부터 자신의 전통 관습이나 종교의 잣대에 비추어 자식을, 더 나아가 가족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의지는 경우에 따라서는 비극적인종말을 가져오기도 한다.

비키니로 대표되는 노출의 최신 유행을 좇으며 자라나 전문직으로 사회에 진출해 성공해 나가는 여성들과 한여름에도 얼굴을 가리며 수영장도 마음대로 못 가는 여인네들.

이것이 바로 요지경 미국의 현주소이며 미래가 아닌가 한다.

입력시간 2001/08/22 20:37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