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선생께 사이버 바람을…"

남영협회 임민수 회장

7월 15일, 그의 추모 작업이 업 그레이드됐다. 정보통신부가 펼치고 있는 ‘나만의 우표’ 사업을 통해, 그의 영웅 조식의 영정이 담긴 우표 200장을 만든 것. 덕천에 있는 표준 영정 사진이 정갈한 분홍 카네이션과 함께 도안된 소박한 우표에는 선생을 기리는 마음이 가득하다. 자비 36만원이 소요됐던 별난 추모식이었다.

“연구원이나 학회 등 기존의 남명 관련 사업은 전문가에서 시작하고, 그들만의 일로 끝나기 일쑤였습니다.”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남명협회 회원들 간에 친목을 다져나가자는 목적이었다.

지난 4월에는 홈페이지(www.nammyung.pe.kr)까지 개설, 정신적 스승에 사이버의 신선한 공기를 쐬어 주고 있는 임민수씨. “이 시대, 실제 생활에서 남명은 과연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남명 추모 열기 과열과 관련, 인터넷상에 한 회원이 띄웠던 질문에 답했던 글 하나. “남명에 대한 존경이 마치 유교 숭상으로 치부돼서는 앞으로 스승의 자리가 그다지 밝지 못합니다. 새로운 접근이 필요합니다.”

“애국을 자기 이름 빛내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이 시대, 남명은 더욱 빛나는 스승입니다.”

‘우국위민(憂國爲民), 위기지학(爲己之學), 실천궁행(實踐窮行) 그가 이해하는 남명 사상의 본질이다. 성리학자이지만, 불교와 노장까지 통달한 남명의 폭넓은 세계가 그에게는 인간적 매력으로 다가왔다.

“남명은 18세기 후반에 생긴 실학의원조라고도 할 수 있죠. 병법을 공부하고 스스로 패도를 차고 다닐 정도였으니까요. 또 관념론적인 퇴계학파를 야단친 편지도 이렇게 있잖아요.”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성진구조안전기술단 강남설계센터 대표이사로 재직중인 건축사(서울공대 건축과 66학번)에다 카톨릭 신자. 외형적 이력에서는 시골 거유(巨儒)와의 관련을 찾을수 없다. 그런 그가 남명 추종자가 된 것은 소박한 의기 때문이었다.

한국전쟁전까지 그는 남명의 생가 담벼락에서 놀며, 산천제의 열기 등 선생을 기리는 특유의 지역 정서에 흠뻑 빠져 커 왔다. 사회가 혼탁할 때마다-‘남명집’(이론과 실천 펴냄) 등 남명에 대한 서적도 틈틈이 접했다. 동시대 학자 퇴계가 모두 27권의 전집으로 사상과 삶이 집약돼 있는 사실이 곤혹스러웠다.

남명협회의 현재 회원수는 80명, 이메일 검색은 하루 평균 50여명 수준.

특히 지난 6월에는 학생의 참여가 부쩍 늘어 100명까지 올라갔던 적도 있다. 남명연구원 등 공식 연구기관 홈페이지의 새글에는 하루 5~6명이 조회하는 현실과 극명히 대조된다. 생활하며 느끼는 소소한 감정, 남명은 물론 성리학에 대해 갖는 소박한 질문 등 공식적으로는 꺼내 볼 엄두도 못 낼 사연까지 포용하는 덕택이다.

임씨는 곰살맞은 경남 사투리로 협회를 열심히 소개했다. 그러던 그의 목소리가 특히 올라가는 대목이 있다.

홈페이지에 등재돼 있는 유적지 사진 30장이 그것. 여타 남명 연구 기관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생생한 장면이다. “제가 매년 지리산 갈 때마다 챙겨 둔 것들이지요. 이 사진들만은 어느 연구단체나 행정 기관보다 월등하다고 자신합니다.”

그러나 어찌 사진뿐이랴. “기회가 닿는다면 사이버 공간을 뛰쳐나가, 남명 선생을 생활속으로 모셔오겠습니다.” 절 20여곳, 정자 30여곳, 산ㆍ계곡 20여곳등 남명이 즐겨 찾던 유적지에 대한 탐방부터 펼쳐나갈 계획이다.

입력시간 2001/08/23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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