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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일본(73)] 고고로시(子殺し)

[재미있는 일본(73)] 고고로시(子殺し)

영장류 연구에서 일본 학계의 중요한 공헌의 하나는 수유기의 새끼를 죽이는 동물사회의 '고고로시'(子殺し)행동을 확인한 것이었다.

62년 6월 교토(京都)대학 영장류 연구소의 스기야마 유키마루(杉山幸丸)교수는 영장류 가운데서는 처음으로 인도의 긴꼬리원숭이 무리에서 고고로시 행동을 발견해 보고했다.

이어 67년에는 같은 연구소의 스즈키 아키라(鈴木晃) 연구원은 탄자니아에서 침팬지 무리에서 비슷한 행동을 확인했다. 나중에 다이언 포시(Dian Fossey)나 제인 구덜(Jane Goodall) 등에 의해 정착된 '유아 살해'(Infanticide)현상이다.

영장류 뿐만 아니라 사자 무리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새끼 죽이기는 생식 본능이 가장 큰 동기로 이해되고 있다. 수유기간에 암컷은 억제 호르몬의 분비로 발정을 하지 않는다. 수유 행위가 배란을 억제하는 포유류 일반의 자연피임 현상이다.

침팬지나 고릴라, 긴꼬리원숭이 등 모계 사회에서 투쟁 끝에 암컷들을 차지한 수컷은 새로운 지배자에게 밀려나기 전에 서둘러 자신의 유전자를 남겨야 한다. 다른 수컷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가 젖떼기를 기다리는 대신 죽여서 암컷의 발정을 앞당긴다.

영장류 가운데 이런 행동을 회피한 대표적인 존재가 피그미침팬지와 인간이다. 피그미침팬지의 암컷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수유기간에 배란이 억제되는데도 발정을 계속, 수컷을 속여 넘길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진화사는 흔히 새끼를 지키려는 여성의 투쟁사로 여겨지기도 한다. 인간은 사회발전의 결과 이런 생물학적 속임수와 함께 도덕률이라는 장치까지 마련했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 잇따르고 있는 '갸쿠타이시'(虐待死)의 실상은 고고로시를 잣대로 한 인간 진화사 자체를 의심스럽게 한다.

새끼 죽이기가 성행하는 긴꼬리원숭이 사회에서도 어미는 새끼를 지켜려고 애쓰다가 나중에야 포기한다.

더욱이 다른 수컷의 새끼로 오해하는 예를 빼고 수컷조차도 제 새끼를 죽이지는 않는다. 동서고금에 수없이 전해지는 의붓 아비나 의붓 어미의 학대 이야기도 모성·부성 본능을 근본적으로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친어머니나 친아버지가 적극적으로 학대에 가담, 제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 넣는 최근의 사건은 모성·부성본능 조차 교육과 문화 전승의 결과일 뿐 유전자에 각인된 진정한 의미의 본능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운다.

7월 효고(兵庫)현 아마가사키(尼崎)시의 운하에서 대형 쓰레기 봉투에 담긴 초등학교 1학년 사내 아이의 시체가 발견됐다. 범인은 숨진 아이의 친엄마(24)와 계부(24)였다.

숨진 아이는 아버지가 다른 동생이 태어난 이후 엄마의 모진 학대를 받았다. 머리에는 땅바닥 등에 강하게 부딪친 상처가 깊게 남았고 사법해부 결과 속이 텅 비어 며칠간 아무 것도 먹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 결과 친엄마가 훨씬 적극적으로 아이를 학대했고 죽음을 부른 심한 구타도 친엄마의 행위였다.

정신감정 결과 특별한 이상도 없었다.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새남편과의 생활에 방해가 될 뿐이라는 강한 인식이 수사진을 놀라게 했다.

어린 나이에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쉽게 헤어진 후 새 남자를 만난 과거만이 흐릿한 배경으로 떠 올랐다. 친엄마와 계부는 모두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신세대였다.

이런 예가 일본에서 크게 늘고 있다. 민간단체인 '어린이 학대 방지 네트워크'가 올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95~2000년 일본 전국에서는 563명의 어린이가 가정내 학대로 숨졌다.

벌을 준다고 마구 때리거나 먹을 것을 주지 않고 며칠간 베란다 기둥등에 묶어 두어 숨지게 한 이른바 '셋칸시'(折檻死)가 대부분이며 가해자는 친엄마가 289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 때문에 지난해 11월에는 주위에서 아동 학대를 발견하면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폭행·살인죄 이상의 가중처벌을 하도록 한 아동학대 방지법이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아동 학대는 올들어서도 50% 이상의 꾸준한 증가를 보이고 있다.

친부모가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 넣은 예도 더러는 있다. 지난해에는 고등학생 아들의 상습적인 폭행에 견디다 못한 지식인 부부가 함께 잠든 아들의 목을 졸라 죽인 사건도 있었다. 이런 특수한 예를 빼고 어린 아이를 학대에 죽이는 대부분의 경우는 이혼이나 재혼 등 결혼 생활의 변화후에 일어났다.

새로운 짝짓기 행위가 어린 새끼들의 죽음을 부르는 동물사회의 현상이 연상되지만 내용은 그보다도 훨씬 심각하다. 일본의 가족 붕괴에서 이보다 더한 예가 있을까.

황영식 도쿄특파원 yshwang@hk.co.kr

입력시간 2001/08/28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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